사람은 다양한 형태로 기억된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지하철 안에서 내 뒤를 스쳐간 사람의 향에서 중학교 때 수학학원 선생님이 떠올랐다거나
잊고 지냈던 고등학교 친구가 방금 자기가 산 초콜릿 봉지에 그려진 그림이 나를 닮아 생각났다며 안부 연락을 줬던 적도 있다.
완전히 잊어버려 이제는 기억날 일도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지만,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들이 무의식 속에 잠들었던 인연들을 툭툭 상기시킬 때마다 기억의 신비로움을 느낀다.
그래, 잊던 인연이지 없던 인연은 아니니까.
사람은 처음 만날 때 이름을 묻는다. 그리고 대개 자신의 의지로 그 이름을 기억해 두지만, 그 외의 것들은 의도치 않게 함께 지내며 자연스럽게 흡수된다. 가끔은 그것들이 이름 보다 더 오래 남기도 한다.
나는 어떤 물건을 보다가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건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어릴 땐 돈이 없으니 생일날 친구들이 과자나 캔디를 선물로 줬는데 먹을 것은 먹어버리면 사라지니까, 먹는 순간 말고는 그 사람을 기억할 수 없으니까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이 뭐 갖고 싶냐 물으면 "아무거나 상관없으니까 먹을 건 주지 마!" 했던 적도 있었다.
이건 조금 짓궂은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선물을 기억할 수 있을만한 방법을 찾다가 다 먹은 과자 봉지와 선물 받은 캔디 중 하나만 남긴 채 상자에 보관하기로 했다. 그러다 캔디가 다 썩어 상자에 들러붙어 벌레가 꼬이면서 엄마에게 등짝 맞고 다 버리게 됐지만... 그만큼 나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게 내겐 아주 소중한 일이었다.
이런 기억도 있다. 친구가 첫 일본 여행을 가는데 갖고 싶은 거 있냐길래 마땅히 생각이 안 나서 바닷가에서 돌이나 하나 주워서 갖다 달라고 했는데, 대체 어디서 구한 건지 예쁜 하늘색 포장지에 담긴 핑크색 조약돌을 내게 건네줬었다. 지금도 선물 상자에 잘 간직하고 있는데 가끔씩 꺼내 만져보는 조약돌에서 내 요구를 난감해하면서도 잊지 않고 사다 준 그 친구의 따뜻한 온기가 여전히 느껴진다.
이런 방식으로 내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만큼 나도 누군가의 기억으로 남을만한 뭔가를 선물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를 만나지 않아도, 나를 잊었어도 방 안에 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내가 준 선물에서 나라는 사람을 떠올렸으면 하는 것. 나는 사실 그런 은근한 바람으로 선물을 주기도 한다.
대학교 때는 해외로 떠나는 친구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집과 편지를 선물했다. 타지에서 지내면 많이 외로울 테니 나 대신해서 시 한 편이 그 친구들의 곁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의미로 시집을 선물한다.
이제 만날 일 없는 사람에게는 시계를 선물했다. 함께 했던 시간을 돌려준다는 의미에서였다.
가끔씩 음악으로 기억되는 사람도 있다.
함께 자주 듣던 노래나 그 사람이 너무 좋아했던 노래, 누군가를 좋아해서 떠올리며 들었던 음악.
그래서 문득 보고 싶어지면 듣는 음악도 있고,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마음이 아려서 플레이버튼을 아직도 마음 편히 누르지 못하는 음악도 있다. 음악이란 게 때로는 감상을 넘어 멋대로 마음을 들춰버리기도 하니까.
그 외에도 함께 걷던 거리로 기억되는 사람, 마들렌으로 기억되는 사람, 더운 여름의 습한 공기로 기억되는 사람 등 내가 사람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여전히 다양하다. 아니, 이건 내 의지로 기억했다기 보단 사람들이 무심코 기억을 남기고 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나는 어떤 형태로 기억되는 사람일까?
시간이 흘러 이름과 얼굴이 희미해져 가도 누군가의 무의식 속에 오래 기억될 무언가,
나는 어떤 잔향으로 남아있을까.
언젠간 나를 만난다면, 문득 내가 생각이 난다면
늦은 밤에 전화를 걸어도 좋으니 그 이야기를 들려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