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에서 동유럽 속 동화책을 펼치다
프라하를 넘어 체스키 크룸로프를 향하다
프라하에 도착하던 날, 내가 상상한 프라하의 모습과 일치했다.
그리고 다음날 방문한 체스키 크룸로프는 내가 상상했던 ‘체코’의 모습과 동일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핸드폰과 지도에 의존하지 않고도 걸어서 동네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는 체코 남보헤미아 주의 작은 마을이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크룸로프 성, 이발사의 다리, 스보르노스티 광장 등 보기만 해도 마을의 역사가 느껴지는 건축물과 자연경관이 풍족히 담겨 있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돌길은 마치 체코의 중세시대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며 여행의 분위기를 한껏 잡아준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수호 곰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가장 압도적인 랜드마크는 단연 크룸로프 성(Český Krumlov Castle)이다. 체코에서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큰 성이며,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성 내부는 화려한 벽화와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가구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성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곰이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에는 ‘진짜 곰’들이 살고 있다. 과거 로젠베르크 가문이 자신들의 문장(가문의 상징)인 곰을 기념하기 위해 성 주변에 곰을 키우기 시작했고,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성 주변의 해자로 가면 실제로 곰이 거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성을 지키는 듯한 곰의 모습은 신비로움을 더한다.
크룸로프 성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일관적인 주황빛 지붕에 우뚝 솟아오른 시계탑과 함께 체코여행의 대표적인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곳이다.
중세에서 시간이 멈춘 블타바 강변 도시
체스키 크룸로프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디선가 잔잔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마을을 감싸듯 흐르는 블타바 강(Vltava River)은 강물이 고요하게 흐르는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해 질 무렵 강가에서 바라보는 마을 풍경은 동화 속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강변을 따라 여유롭게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이곳에서 진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보트나 카약을 타볼 수 있다. 블타바 강에서 카약이나 보트를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투어가 인기다. 맑은 물 위에서 중세 건물들을 감상하며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면, 체스키 크룸로프의 고즈넉한 매력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다.
보트에 몸을 싣고, 물살을 따라 천천히 흘러가다 보면, 한적한 강변의 카페나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온다. 중세 도시를 배경으로 체코 맥주 한 잔을 즐기며 여행의 여유를 만끽해 보자.
중간중간 워터슬라이드처럼 턱을 만들어 놓은 덕분에 스릴도 함께 챙길 수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
이 마을을 여행하며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뜨르들로(Trdelník). 한국에서는 굴뚝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체코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달콤한 길거리 간식이지만, 이곳에서 먹는 뜨르들로는 더 특별하다. 바삭하게 구워진 반죽 위로 설탕과 계피 가루가 솔솔 뿌려지고, 안에는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크림을 채울 수도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중세 분위기 속에서 한입 베어 물면, 그 달콤함이 여행의 행복을 더해준다.
또한, 체코 전통 요리인 굴라쉬(Guláš)와 체코식 오리 요리도 놓칠 수 없다. 진한 양념이 베인 소고기 스튜인 굴라쉬는 촉촉한 체코식 빵인 크네들리키(Knedlíky)와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크네들리키(Knedlíky)는 굉장히 하얗고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한 동그란 빵이다. 굴라쉬 소스와 옆에 함께 주는 크랜베리 잼을 살짝 올려 먹으면 체코의 신비로운 맛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오리는 바삭한 껍질과 부드러운 속살이 어우러져, 맥주 한 잔과 함께하면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 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별미, 바로 스마제니 시르(Smažený sýr)는 체코의 대표적인 치즈 튀김이다. 두툼한 체다 또는 에멘탈 치즈를 바삭하게 튀겨낸 요리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녹아내리는 풍미가 일품이다. 주로 타르타르 소스와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데,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한 치즈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체코인들에게는 맥주 안주로도 사랑받는 메뉴로, 맥주와 함께 곁들이면 더욱 완벽한 한 끼가 된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돌길을 따라 걷다 시장이나 작은 레스토랑에서 이 음식들을 발견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맛보기를 추천한다. 이곳에서의 음식 한 입 한 입이 중세 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깊이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진짜 체코를 만나다
체코에는 프라하 외에도 아름다운 소도시가 많지만, 체스키 크룸로프는 그중에서도 가장 ‘동화 같은’ 곳이다. 중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골목길, 성을 지키는 곰, 그리고 고요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까지. 이곳에서는 누구나 한순간 과거로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든다.
혹시 당신이 상상하는 ‘체코’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프라하를 넘어 체스키 크룸로프로 떠나보자. 이 작은 마을이 당신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