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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스타일이 하나의 유형이라면서?

by 정성균

아침에 눈을 떴는데 햇살이 내 얼굴에 사르르 내려앉았다. 시계는 아직 여덟 시를 가리키고, 커튼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며 레이스를 흔든다. 문득 이런 장면에서 “지브리스타일 같아…”라는 말을 떠올리는 건, 요즘 감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아니, 요즘 유형이 그렇다고 해야 할까.


인터넷엔 이런 말이 떠다닌다. “지브리스타일 유형: 갑자기 나무를 만지며 말을 거는 타입.” “비 오는 날 혼자 우산 안 쓰고 걷는 감성의 소유자.” “카페에서 책 읽는 게 아니라, 창밖만 멍하니 보는 유형.” 이런 문장을 읽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라, 이거 나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쩌다 우리 일상은 이렇게 지브리화가 되었을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현실보다 감성, 효율보다 여백, 속도보다 흐름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시작엔 지브리 감성이라는 막연하지만 강력한 기호가 있었고, 그것은 하나의 ‘유형 테스트’처럼 번져 나갔다.


지브리스타일, 그게 대체 뭐야?


지브리스타일이라고 하면 대부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린다. 바람이 불고, 낯선 세계와 인간이 연결되고, 주인공은 특별하지 않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이야기.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마녀 배달부 키키》. 이 영화들엔 공통된 정서가 있다. 조용한 풍경, 느린 호흡, 자연과 교감하는 인물, 감정이 오버되지 않는 섬세한 묘사.


현실에서는 그런 삶이 얼마나 가능할까? 매일 아침 출근 전쟁을 치르는 이들에게 ‘토토로 숲길 산책’은 판타지 그 자체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이 스타일을 닮고 싶어 한다. SNS엔 지브리스타일 카페, 지브리스타일 룸 꾸미기, 지브리스타일 도시락까지 존재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지브리 세계관 안에서 유형별로 살아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형 1: 바람과 대화하는 사람


공원에 앉아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한참 보는 사람이 있다. 휴대폰도 보지 않고,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 그냥 그 ‘흔들림’에 집중하는 유형. 이들은 말없이 자연과 대화하는 데 능숙하다. 길을 걷다가도 고양이를 발견하면 걸음을 멈춘다. 조용히 눈을 마주치고, 가끔은 인사도 건넨다. “안녕?”


이 유형은 대체로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무언가를 꼭 하지 않아도 된다. 창밖을 보다 하루가 저물어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들은 내면이 바쁘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서 소리가 자라고, 그 소리를 듣느라 하루가 짧다.


유형 2: 도시 속 숨은 마녀


누군가는 마법 같은 손재주를 가졌다. 손으로 빵을 구우면 온 동네에 향이 퍼지고, 작은 화분을 만지면 금세 싱그러워진다. 그들은 주변에 기운을 전한다. 누가 아프다 하면 따뜻한 차를 끓여 건네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싶으면 촛불 하나로 공기를 바꾼다.


이런 사람들은 흔히 ‘지브리스타일 마녀’라 불린다. 사람들에게 치유를 주고, 자기만의 루틴을 가진 사람들. 시간의 흐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듬고, 사소한 일에도 집중한다. 감자 껍질을 벗기는 순간에도 마음이 묻어난다.


유형 3: 멍의 예술가


“너, 멍 잘 때리는 스타일이지?”


이 말을 듣고 발끈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유형이다. 멍하니 있으면서도 내면의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 지하철 안, 교실 뒤 창가, 카페 구석자리가 이들의 아지트다. 세상이 주는 소리보다는 마음속 작은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은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능하다. 벽에 비친 햇살을 보고 ‘누군가의 기억 같아’라고 생각하고, 물컵에 비친 하늘을 보며 시 한 편을 떠올린다. 감성은 흘러넘치고, 현실감은 조금 부족하다. 하지만 그 결핍이 오히려 이들에게 유일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유형 4: 오지랖 천사


지브리스타일 하면 떠오르는 게 꼭 ‘고요함’만은 아니다. 마을을 오가며 도움을 주고, 웃는 얼굴로 동네 사람과 인사하는 사람. 이들은 ‘고요한 활력’을 지녔다. 나무에 걸린 연을 꺼주고, 비 맞는 고양이를 위해 우산을 씌워주는 손길. 그런 일상적인 선의가 이 유형의 특징이다.


오지랖이 넓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누구를 도울까 고민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일에 반응한다. 그래서 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따뜻하고, 한 번 본 사람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바로 그 감정이 지브리스타일의 핵심이다. ‘누군가의 하루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


반지브리 선언자들


그렇다면 모두가 지브리스타일로 살 수 있을까? 아니다. 냉정하게 말해, 현실은 지브리가 아니다. 감성으로는 월세를 낼 수 없고, 바람을 느끼는 시간보다 엑셀을 느끼는 시간이 더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선언한다. “나는 지브리 반대파야.”


이들은 빠르고, 효율적이고, 직선적이다. 스케줄러는 15분 단위로 구분되어 있고, 산책보다 러닝을, 대화보다 디지털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들조차 때때로 지브리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문득 카페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며 생각한다. ‘나도 가끔은 저렇게 살고 싶어.’


지브리스타일 테스트


당신은 어떤 지브리 유형일까? 아래 문항에 체크해보자.


고양이를 보면 말을 걸고 싶어진다. ( )


길을 걷다 나무에 손을 올린 적이 있다. ( )


조용한 카페에서 책보다 창밖을 자주 본다. ( )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걷고 싶다. ( )


냄비에 물 끓는 소리를 좋아한다. ( )


냉장고에 남은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게 즐겁다. ( )


낯선 골목길을 일부러 돌아 걷는다. ( )


체크한 개수에 따라 당신의 ‘지브리 농도’를 측정할 수 있다.


0~2개: 현실파. 단, 내면엔 작고 단단한 지브리 씨앗이 있을 수도.


3~5개: 절반 지브리. 감성과 현실을 오가며 균형을 잡는 타입.


6개 이상: 순도 90% 이상. 당신은 현실에 숨은 주인공이다.


현실 속 지브리를 위한 제안


지브리스타일은 단지 감성이 아니라, 삶을 느끼는 방식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순간을 포착하고, 평범한 사물에 애정을 담는 태도.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열광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마녀 키키처럼 빗자루를 탈 순 없지만,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품고 살 수 있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토토로가 나올 것 같은 조용한 순간을 만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오늘 하루가 어떤 ‘지브리’였는지 묻고 싶다. 바람을 느꼈는지, 고양이와 눈을 마주쳤는지, 물이 끓는 냄비 옆에서 차를 마셨는지. 그런 순간이 모여서 우리의 감성과 시간을 엮어준다.


세상이 아무리 바빠도, 마음은 가끔 멍 때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지브리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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