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을 보니 연둣빛 새싹이 고개를 들고, 햇살이 창가를 두드린다.
나무 가지마다 꽃망울이 맺히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안녕, 봄이구나."
이 계절은 참 묘하다. 매년 어김없이 돌아오는데도, 늘 처음 만나는 것처럼 낯설고 설렌다. 희망이 다시 뿌리내리는 계절. 이 봄에 우리는 또 어떤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따뜻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시장의 활기,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두가 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봄은 살아나는 계절
계절의 전환이라 하기엔 봄은 감각과 감정이 동시에 깨어나는 섬세한 순간이다. 봄은 '회복'과 '재생'의 언어를 품고 있다. 식물학에서는 봄을 식물의 생육기라 부른다. 겨울 동안 휴면기에 있던 나무와 꽃, 풀들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점이다. 수분을 머금은 토양에서 뿌리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광합성을 위한 잎이 펼쳐진다. 어찌 보면 봄은 '식물의 눈뜨는 순간'이다.
어느 날, 식물학을 전공한 친구가 알려준 말이 떠오른다. "모든 식물이 꽃을 피우는 건 아니야. 현화식물만 꽃을 피우지. 침엽수나 이끼, 고사리처럼 포자로 번식하는 식물은 다른 생존 전략을 택해."
그 말을 들은 순간, 봄에 피어나는 꽃들, 그저 아름답기만 했던 꽃들이 이제는 침묵 속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것은 생존의 방식이고, 번식의 전략이며, 진화의 한 형태다. 우리 눈에 비치는 화려한 꽃잎은 생존을 위한 유혹의 도구였던 것이다. 자연은 기능과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크로커스라는 꽃이 봄의 전령사로 불린다. 연보라빛 작고 단단한 이 꽃은, 눈 녹은 땅을 뚫고 고개를 내민다. 마치 겨울 끝자락의 침묵을 깨우는 신호 같다. 우리에겐 복수초가 그런 역할을 한다. 이른 봄, 눈밭 사이로 노란 꽃을 피워 올리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다.
또 하나, 봄을 떠올리면 꾀꼬리 소리도 생각난다.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특별히 귀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그저 이름뿐이던 새였지만, 실제 꾀꼬리 소리를 들은 뒤로는 그 존재가 너무나 선명해졌다. 자연의 소리는 봄을 더욱 실감하게 해주는 요소다. 봄은 단지 보는 계절이 아니라, 듣고, 맡고, 느끼는 오감의 계절이다.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표정도 달라진다. 카페 앞 야외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긴 겨울의 이야기를 나누고, 아파트 단지 놀이터엔 평소보다 많은 아이들이 나와 뛰논다. 계절은 이렇게 사람들의 일상까지 부드럽게 바꾸어 놓는다.
봄,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
봄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어린 시절의 봄은 흙냄새와 연날리기의 계절이었다. 책가방보다 연을 더 들고 싶었던 나날. 새학기의 긴장과 설렘이 뒤섞여 있던 그 시절의 봄은, 마치 세상이 나를 환영해주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겨우내 가두어두었던 에너지를 쏟아내듯 뛰놀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십 대의 봄은 조금 복잡했다. 꽃이 피면 좋긴 했지만, 시험 기간과 겹치는 탓에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즐기기엔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한 소풍, 도시락 속 계란말이, 교문 앞에서 맞은 봄바람은 그 나름의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가끔은 봄날의 교정에서 들려오는 졸업식 노래가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고, 또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기대도 함께했다.
이십 대의 봄은 불안과 기대가 공존했다. 사회로 나아가는 문턱에 서서, 봄이 주는 에너지로 자신을 밀어 올리려 애썼다. 취업 준비를 하며 맞이한 어느 해 봄, 잠깐 짬을 내어 들렀던 공원에서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던 순간이 떠오른다. 마치 실패와 두려움도 다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봄의 하루. 연애도 그 무렵의 봄과 비슷했다. 처음엔 가슴 뛰는 설렘으로 다가왔지만, 때로는 헤어짐의 아픔을 안기기도 했다. 그런 감정들까지도 봄은 고스란히 품어냈다.
삼십 대 이후의 봄은 다소 차분해졌다. 가족과 함께 봄 소풍을 계획하고, 아이와 손잡고 꽃길을 걷는다. 한때는 나만의 봄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봄이 되어주는 시간이다. 꽃을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진다. 감탄이 아니라 다정함으로, 환희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봄은 '나'의 계절에서 '우리'의 계절로 옮겨가는 변화의 과정이었다.
중년이 되면 봄은 다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건강을 챙기려 산책을 시작하거나,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잊고 있던 취미를 다시 꺼내보는 시기. 가령 봄바람이 부는 날, 아내와 손잡고 동네 뒷산을 걷는 일상의 풍경은 젊은 날의 사랑보다 더 깊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중년의 봄은 '되돌아봄'과 '정리'의 계절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예전엔 하지 않던 이야기들이 오간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기에 고마움까지도.
노년의 봄은 평화롭다. 내가 겪진 않았지만, 부모님의 봄을 보면 그렇다. 아버지는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을 나무만 바라보신다. 어머니는 봄볕 좋은 날이면 마당에 작은 화분을 내놓고 꽃을 돌보신다. 말없이 봄을 받아들이는 그 모습이 오히려 가장 깊은 감상을 전해준다. 나이가 들수록 봄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다가온다. 봄은 나이만큼 그 깊이를 더해가는 계절이다.
세계의 봄을 떠올리며
봄은 전 세계적으로 '기다림의 보상'이다. 일본의 벚꽃, 미국 워싱턴 D.C.의 벚꽃 축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에서는 '하나미'라는 풍습이 있는데, 꽃 아래에서 음식을 나누며 봄을 맞이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도쿄 우에노 공원, 교토의 철학의 길은 꽃이 절정일 때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돗자리를 펴고 하루를 보낸다.
미국은 지역마다 기후가 달라서 봄의 시작도 다르다. 하지만 워싱턴 D.C.의 벚꽃은 일본에서 기증된 벚나무로 시작된 축제로, 양국 간의 우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곳은, 봄을 기념하는 문화적 공간으로도 자리 잡았다.
네덜란드의 봄은 튤립으로 유명하다. 킬더호프 공원에서는 700만 송이 이상의 튤립이 일제히 피어난다. 마치 꽃의 행성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럽 사람들은 긴 겨울을 이겨낸 뒤, 야외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함께 봄을 만끽한다. 햇살을 마주하는 일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 되는 곳이다.
프랑스 파리의 봄도 인상 깊다. 세느강 주변을 산책하거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낭만 그 자체다. 이곳 사람들은 봄을 맞아 거리의 책방이나 플로리스트를 더 자주 찾는다. 봄은 파리의 거리마저 문학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중국 윈난성의 쿤밍은 '춘성(春城)', 즉 봄의 도시로 불린다. 사계절 내내 기온이 온화해 언제나 봄 같은 날씨를 자랑한다. 이곳에서는 봄이 특별한 시기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다. 그래서일까. 쿤밍의 봄은 '계절'이 아니라 '삶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봄을 바라보는 세계인의 시선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공통된 감정이 흐른다. 생명에 대한 경외,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일상에 스며든 소소한 행복. 계절은 다르지만 마음은 하나다.
봄을 노래한 문장들
사람들은 봄을 어떻게 말했을까. 시인과 철학자, 작가들은 오래전부터 봄에 대한 감상을 글로 남겼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말했다. "아무리 꽃을 꺾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이 문장은 봄의 불가항력성과 생명의 본성을 보여준다. 억지로 막으려 해도, 봄은 결국 오고야 만다.
러시아의 톨스토이는 "봄은 계획의 계절이다"고 했다. 봄은 정리와 결심,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기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공부를 다짐하며,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빌 게이츠는 다소 철학적인 시선으로 이렇게 말했다. "영원한 봄은 내 마음 속에 있다."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계절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제든 봄을 살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한국 작가의 에세이 속 문장도 생각난다. "봄은 괜찮아질 거라는 조용한 약속이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으며, 매년 봄을 기다리고 있다.
문학은 늘 봄을 사랑했다. 김소월의 시에서 피어난 진달래꽃, 윤동주의 글 속에서 피어나는 청춘의 고민, 박완서의 수필 속 따뜻한 봄날의 기억. 우리 문학에도 봄은 자주, 그리고 따뜻하게 등장한다.
마무리
봄은 느린 속도로 다가온다. 어느 날 갑자기 확 피어나는 법은 없다. 조금씩 기온이 오르고, 어느샌가 코끝에 꽃향기가 스며든다. 새소리가 선명해지고, 거리의 옷 색이 밝아진다. 그렇게 하루하루 봄이 완성된다.
우리도 그렇게 변하는 중이다. 단번에 모든 게 바뀌는 날은 없지만,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따뜻해진다면 우리는 잘 가고 있는 거다.
봄이란 계절을 핑계로, 사랑을 고백하고, 과거를 털어내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이들이 많아진다. 그건 이 계절이 가진 힘이다. 살아나게 하고, 움직이게 하며,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 오늘 당신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면, 그건 당신 마음에도 봄이 왔다는 뜻이다. "안녕, 봄이구나."
지금 이 계절 속에서, 우리 모두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