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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매만지는 나날들

by 정성균

창밖 풍경이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는 것을 보면, 문득 내 안의 속도는 어떠한가 헤아려보게 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저도 모르게 심적인 결이 흐트러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어제 스친 사소한 언사가 오늘의 저를 붙잡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작은 사건 하나가 온종일 머릿속을 맴돌기도 하죠. 굳건하다고 믿었던 부분이 실은 미풍에도 흔들릴 수 있음을 알아차리는 시점입니다. 그럴 때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호흡을 고릅니다. 빨라진 맥박을 진정시키고, 흐릿해진 시야를 닦아내듯 주변을 찬찬히 둘러봅니다. 이 글은 어쩌면, 저처럼 자주 기우뚱거리고, 그럴 때마다 조용히 자신을 추스르며 한 뼘씩 나아가려는 이들을 위한 것일지 모릅니다. 커다란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장하기보다, 홀로 있는 여유 속에서 내면과 대화하며 속을 채워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함이라기보다, 제 스스로 상념을 정돈하며 남기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간혹 그런 분을 만납니다. 특별한 언행 없이 그저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 평온을 주는 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가만히 미소 짓고, 타인의 이야기에 잠잠히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어떤 깊이를 발견하곤 합니다. 억지로 연출하지 않은 담담함, 오랜 세월 다져진 듯한 차분함이 그 인물의 분위기 속에 스며 있습니다. 아마 그분들도 수없이 많은 내면의 파고를 겪으며 자신만의 중심을 잡는 방식을 익혔겠지요. 하지만 제 심상은 여전히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방향을 잃곤 합니다. 상대방의 표정 하나, 어조 하나에 온갖 추측을 덧붙이며 홀로 힘겨워하기도 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제 모습이 참 불완전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아, 지금 내 상태가 이렇구나' 하고 알아주려고 합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져 파문이 이는 것을 당연하게 응시하듯, 내 속에서 일어나는 정서의 움직임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수용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내면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합니다.


지나온 궤적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아프고 고됐던 기억들이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저를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에는 정말이지 세상이 끝나는 것 같았던 시련들, 밤새 뒤척이며 눈물짓던 날들이 어째서인지 현재의 저를 조금 더 깊이 있는 존재로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강가에 놓인 수석이 오랜 물살에 마모되어 둥글고 매끄러워지듯, 인생에서 겪는 여러 고비들이 우리 안의 불필요한 각들을 조금씩 닳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좌절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그리고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를 가만히 되새겨보는 태도입니다. 넘어진 곳에서 너무 오래 자책하기보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기는 작은 용기. 서툴고 더딜지라도, 겪은 일 속에서 나만이 건져 올릴 수 있는 소중한 의미들을 발견하려는 마음가짐이, 우리를 점진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부가 견고한 사람은 굳이 자신을 포장하거나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오히려 삶의 무게를 묵묵히 감당하며, 정적 속에서 자신만의 기둥을 지키려 합니다. 그들의 힘은 겉으로 드러나는 강함이라기보다,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평온을 잃지 않는 내적인 질서 같은 것에서 비롯되는 듯합니다. 언젠가, 번잡한 대합실 한편에서 낡은 서적을 읽고 있던 어느 분의 모습이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습니다. 주위의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고요하게 책의 세계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책장을 넘기는 느긋한 손길. 어떤 꾸밈이나 의도도 없어 보이는 그 형상이 제게는 어떤 위안처럼 다가왔습니다.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의 작은 안식을 지켜내는 태도. 어쩌면 우리가 일상의 매 순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불편 앞에서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나의 자세를 정돈하는 것. 그런 미미한 노력들이 모여 한 인물의 품격을 형성하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참으로 빠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잠시만 멈춰 서면 금세 뒤처질 듯한 불안, 더 신속히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초조함에 시달릴 때가 많습니다. 바라는 결과가 즉시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고 단념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인생에는 저마다의 보폭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아무리 서두른다고 해서 계절의 운행을 바꿀 수 없듯이, 모든 일에는 자연스러운 시기와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안간힘을 쓰며 물결을 거스르기보다, 잠시 힘을 풀고 그 리듬에 몸을 맡기는 편이 더 현명할 수 있다는 사유에 이릅니다. 조급함은 오히려 우리의 관점을 좁히고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들 뿐입니다.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기보다, 조금 더 긴 호흡으로 과정을 신뢰하고 기다릴 줄 아는 자세. 마치 씨앗을 심고 매일 정성껏 돌보며 그것이 움트기를 기다리는 마음처럼요.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필요한 요소들은 자연스레 갖춰지리라 믿어봅니다.


혼자 보내는 여백을 어떻게 채우는지가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홀로 남겨지는 틈이 어색하고 불편하게 다가왔지만, 이제는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때가 되었습니다. 북적이는 관계와 세상의 요구로부터 잠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책상 앞에 앉아 김이 피어나는 찻잔을 손에 쥐고, 갈피 없이 떠오르는 상념들을 익숙한 노트 위에 끄적여 봅니다. 그날 있었던 일과, 스쳐 지나간 정서들, 마음 깊은 곳의 소망들을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얽혀 있던 심상이 조금은 명료해지는 듯합니다. 고독한 시간은 단순히 외로운 공백이 아니라, 나를 보살피고 내면의 정원을 풍요롭게 하는 때입니다. 이 고요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외부의 소음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주관을 확인하고, 내 안의 조용한 역량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다시 세상을 살아갈 작은 추동력을 줍니다.


내면을 가꾼다는 것이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일은 아닐 겁니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주고받는 미미한 온정 속에서도 정신은 자라납니다. 거창한 행동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고단한 기색이 역력한 동료에게 건네는 따뜻한 격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에게 잠시 내미는 손길, 누군가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관심. 이런 아주 사소하고 평범한 다정함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놀랍게도 베푸는 당사자의 가슴까지 부드럽게 어루만져 줍니다. 타인에게 따스한 시선을 건넬 때, 우리는 잠시 나에게 쏠려 있던 주의를 돌려 더 넓은 세상을 조망하게 됩니다. 작은 친절을 나눌 때, 우리 안의 가장 선한 부분과 접속하는 기분이 듭니다. 그것은 메마른 대지에 스며드는 단비처럼 우리를 촉촉하게 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먼저 지쳐 있을 때라도, 아주 조촐한 온기마저 잃지 않으려는 노력. 그 자세는 결국 나에게 더 큰 활력으로 돌아오는 것을 체험으로 압니다.


내면을 매만지는 일이란, 어쩌면 특별한 무언가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부에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보살피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넘어지고 비틀거릴 때마다, 그런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고 다정하게 일으켜 세워주는 법을 익히는 것. 상처 입은 부분을 가만히 들여다봐 주고, 실망한 나를 너그럽게 감싸 안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작은 격려를 건네는 일. 이런 소소한 행위들을 꾸준히 이어가며, 우리는 요란하지 않지만 속이 꽉 찬 사람으로 조금씩 여물어 갈 수 있을 겁니다. 쉽게 부러지지 않는 유연성을 지니고, 어떤 풍파에도 깊이 뿌리내린 나무처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존재. 온화하면서도 굳건한 심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도 저는 복잡한 세상의 흐름에서 잠시 비켜나, 나만의 박자로 소박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내 안에 잠재된 고요한 힘을 신뢰하며, 천천히, 조금씩. 이 글이 당신의 마음에도 잔잔한 속삭임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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