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 애써 모른 척하는 마음의 신호
오랜만에 모임이 잡혔다. 단체 메시지 방에 알림이 울리고, 저마다의 이모티콘과 함께 약속이 확정되던 때부터 심정 한구석이 조금은 들떴던 것 같다. 각자의 일상에 밀려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람들. 스마트폰 액정 너머로만 안부를 묻던 사이가 아닌, 실제로 눈을 맞추고 웃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먼저였다. 그러면서도 이런 자리를 앞두면 어김없이 비슷한 감정이 양가적으로 따라온다. 오랜만이라 어색하면 어쩌나, 혹시 나만 겉도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막상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예전처럼 편안해질 거라는 기대가 교차한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에도 그런 복잡한 설렘과 약간의 긴장이 섞여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자리를 메워가자, 문을 열고 들어설 때 어깨에 살짝 힘이 들어갔던 것도 잠시, 어색함은 거짓말처럼 눈 녹듯 금세 걷혔다. 왁자지껄한 목소리들, 변함없는 웃음소리. 늘 가던 곳의 편안한 소음, 늘 보던 사람들의 익숙한 표정.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싶기도 하고. 나도 그 흐름 속으로 살며시, 하지만 기꺼이 스며들었다.
누군가는 익숙한 손길로 술잔을 채우고, 또 다른 이는 시원하게 음료수 병뚜껑을 땄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컵을 그저 가만히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유리잔의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술을 잘 못하는, 혹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떠들썩한 자리에서 유난히 자기 앞의 잔을 만지작거리곤 한다. 일종의 무의식적인 방어기제일까, 아니면 그저 어색함을 달래는 사소한 몸짓일까. 왁자한 대화와 가벼운 농담, 경쾌하게 잔 부딪히는 소리가 테이블 위를 빈틈없이 채웠다. 모두 함께 웃고 떠들고 있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내면 한쪽엔 잔잔한, 하지만 분명한 긴장이 파문처럼 머물렀다. 마치 물 위에 살짝 뜬 기름방울처럼, 완벽히 섞이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시끌벅적한 자리에 앉으면, 문득 나 혼자만 다른 주파수에 맞춰진 듯한 감각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러면서 가끔 스쳐가는, 혹은 집요하게 따라붙는 의문이 있다. ‘나는 지금 이 공간, 이 시간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는 걸까.’ 겉으로 어울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타이밍에 맞춰 웃고, 간간이 추임새를 넣는 것 정도는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그 표면적인 어울림을 넘어, 진심까지 온전히 이 분위기에 녹아드는 건 늘 한 걸음, 아니 몇 걸음은 늦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함께 웃고 있을 때에도, 나 혼자만 그 웃음의 의미를 곱씹고 있을 때가 그랬다.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어 분위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중, 누군가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말이 화살처럼 날아와 가슴에 와 박혔다. 아마 그 말을 한 사람은 필시 아무런 특별한 뜻은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를 겨냥한 말도 아니었을 수 있다. 그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혹은 습관적인 농담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테이블에 앉은 모두가 큰 소리로 웃었고, 나도 군중심리처럼, 혹은 조건반사처럼 따라서 웃었다. 어색한 침묵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괜히 혼자 심각한 사람으로 비쳐 즐거운 흐름을 깨고 싶지 않아 애써 입꼬리를 올렸지만, 그 웃음은 공허하게 입가에만 머물렀다. 그때부터, 아주 짧은 사이였지만, 심중 한구석이 미세하지만 분명하게 고요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마치 잔잔한 호수 표면에 조약돌 하나가 떨어진 것처럼, 파문이 점점 커져갔다. ‘신경 쓰지 말자, 별거 아니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한번 일렁인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누구나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번쯤은, 아니 어쩌면 여러 번 겪어봤을 것이다. 참으로 별것 아닌 사소한 말 한마디, 무심코 지나간 표정 하나가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밤새도록 이불을 뒤척이게 만들거나, 며칠이고 곱씹으며 스스로를 어지럽히는 그런 경우 말이다. ‘내가 너무 속이 좁은 건가?’, ‘왜 나만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스스로를 다독이고 합리화해 보려 애쓰지만, 그럴수록 심리적으로는 이미 상황으로부터 한 걸음, 두 걸음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대화에 참여하는 척했지만, 내면에서는 이미 보이지 않는 문이 극히 느리게, 감쪽같이 소리 없이 닫히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없이, 그래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즐거웠던 모임이 파하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시간,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다정했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대화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그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심리적 거리가 한 뼘씩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의식적으로 말수를 줄였고, 오가는 대화의 흐름 속으로 다시금 스며들기를 주저하고 망설였다. 어쩌면 누군가 나의 이런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고 먼저 다가와 주길 바랐던, 실낱같은 기대감마저도 어느새 스르르 접혀 의식 저편으로 숨어버렸다. 몸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저만치 몇 걸음 뒤로 물러나 투명한 유리벽을 세우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텅 빈 방 안, 불도 켜지 않은 채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그날의 모임 장면들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렸다. ‘그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사소한 일인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오래도록 이 감정을 붙잡고 있는 걸까.’ 머릿속에서는 마치 고장 난 영사기처럼 몇 번이고 문제의 그 장면, 그 대화가 되감겼다. 그때 그 사람의 미묘했던 말투 하나, 무심하게 스쳐간 다른 이의 표정 하나, 그리고 그 모든 것 앞에서 어색하게 굳어버렸던 나의 억지웃음까지. 각 장면이 불필요할 정도로 또렷하게 기억났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이 불편함은 결코 그날 하루, 그 찰나에 단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꽤 오래전부터, 비슷한 상황들 속에서 느꼈던 사소한 실망감, 알아주지 않는다는 서운함, 나만 예민한 것 같다는 자책감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마치 먼지처럼 미미하게나마 내면 어느 구석에 쌓여 오다가, 그날의 그 말 한마디를 계기로 드디어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묵묵히 터를 잡고 있었던 셈이다.
그때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명료해서 오히려 더 답답했다. 혹시라도 ‘그런 것 가지고 뭘 그래?’ 하는 반응이 돌아올까 봐,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나 때문에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불편해할까 봐. 그 모든 예상되는 어색함과 민망함의 무게가 너무 커서, 차라리 입을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이 당장은 훨씬 더 편하다고, 안전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비슷한 이유로, 유사한 고비에, 스스로의 진솔한 감정을 몇 번이고 꾹꾹 눌러 담으며 괜찮은 척 웃어넘겨 왔을 것이다. 그 편함이 사실은 더 큰 불편함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소통의 문이 한 뼘, 또 한 뼘 점차 안으로 닫히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관계의 온도 역시 서서히, 하지만 분명하게 변해간다. 예전에는 밤새도록 이어지던 깊은 대화는 어느새 일상적인 안부나 가벼운 농담 정도로 얕아지고, 함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의 밀도도 줄어들고, 심지어 함께 터뜨리던 웃음마저도 어딘가 예전처럼 가볍고 후련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 하나가 명백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마치 마른땅이 갈라지듯 관계 사이에 은밀히 보이지 않는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극히 미미하게, 누구도 감지하지 못할 만큼 더디게, 흔적 없이. 그래서 더 무섭게.
며칠 뒤, 뜻밖에 또 한 번의 소규모 모임이 있었다. 지난번보다는 사람 수도 훨씬 적었고,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분위기도 한결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어쩌면 이런 편안한 자리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전부터 가슴 한구석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그 돌덩이 같은 무거움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그대로였다. 모두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소소한 이야기는 따뜻한 김처럼 가볍게 공간을 채우며 오갔지만, 나는 그 투명한 공기 속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먼저 무언가를 이야기하기엔 어딘가 목소리가 잠겨버린 듯 머뭇거려졌고, 혹시나 누군가 나의 이런 어색함을 눈치채고 조금이라도 심정을 헤아려주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는커녕 말문은 좀처럼 트이지 않았다. 그저 입가에 힘없는 옅은 미소만 겨우 띤 채, 대화의 흐름에 맞춰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투명한 벽 안에 갇힌 사람처럼.
바로 그때였다. 이런 나의 부자연스러움을 눈치챘는지, 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뭇 차분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 잔을 내밀며, 참으로 담백하고 온화한 어조로 말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묻는 건 아니지만, 요즘 좀 지쳐 보인다. 이거 마시고 조금이라도 힘내."
그 짧디 짧은 한마디, 아니 어쩌면 그 말에 담긴 진심 어린 눈빛과 온기가 내 가슴 깊이 아주 느리게, 그러나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았다. 다만 그저 ‘나는 네가 조금 힘들어 보인다는 것을 알아챘고, 신경 쓰고 있다’는 그 순수한 헤아리려는 진심만이 고스란히, 그리고 온전히 전해졌다. 지난 며칠간 나도 모르게 겹겹이 걸어 잠가두었던 심리적 빗장이, 미세하게, 극히 일부지만 삐걱이며 옆으로 밀리는 듯한 그런 감각이었다. 마치 얼어붙었던 땅이 봄눈 녹듯 살며시 풀리는 찰나처럼.
아마 이러한 경험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백 마디의 화려한 위로나 거창한 조언보다, 때로는 아무런 말이 많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건네는 누군가의 고요한 다정함, 진심 어린 눈빛 하나가 얼마나 크고 깊은 위로가 되는지. 그때 나는 새삼 깨달았다.
어쩌면 인간관계라는 것은 대부분 이런 예측 불가능한 흐름과 미묘한 심리적 파동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상대방이 던진 가시 돋친 말이나 행동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내 안의 여과기가 상처를 몇 배로 더 크게 키우기도 하고, 반대로 지극히 미미한 배려나 관심 하나가 구구절절 긴 설명이나 해명보다 훨씬 더 빠르고 따뜻하게 얼어붙은 심장에 위로로 찾아온다. 결국 시간이 지나고 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정확히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느냐는 사실보다, 그때 내가 어떤 심적 상태로 그 상황을 받아들였고, 어떤 기분을 경험했느냐가 훨씬 더 오래도록, 그리고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는 법이다. 그러니 어쩌면 모든 서운함과 속상함을 일일이 다 상대방에게 털어놓거나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그 감정의 응어리들을 해소하지 못한 채 혼자 끌어안고 끙끙 앓으며 내면의 문을 굳게 잠가두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이전과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내면을 보살피려 노력한다. 어떤 특정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또다시 심리적 문이 스르르 닫히려 하거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생각이 들 때면, 일단 그 파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차분히, 그리고 부드럽게 질문을 던져본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격정은 과연 저 사람의 말 때문에 생긴 순수한 서운함일까, 아니면 혹시 그동안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눌러두었던 어떤 종류의 외로움이나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드는 것일까? 어쩌면 과거의 어떤 기억과 비슷한 패턴으로 연결되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스스로에게 차분히 묻고 답을 찾아가려 애쓰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어떤 날은 꽉 막혔던 응어리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리는 듯한 체험을 한다. 딱딱하게 쌓아 올렸다고 생각했던 심정의 벽이 매우 더디지만 뚜렷하게, 한 겹씩 허물어지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치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던 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래, 모든 걸 전부 다 말로 표현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때로는 침묵이 더 많은 것을 전달하기도 하고, 모든 심정을 타인에게 이해시켜야 할 의무도 없다. 대신, 그 어떤 상념이든 너무 오랫동안 혼자 끌어안고 끙끙 앓다가 교감의 통로를 완전히 잠가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생각보다 우리의 심성은 연약하면서도 강해서, 누군가가 건네는 짤막한 안부 한마디, 예기치 못한 때에 받은 따뜻한 차 한 잔의 온기, 혹은 그저 찰나의 마주침에서 비롯된 다정한 눈빛 하나에도 얼음장 같던 심경이 극히 더디게, 흔적 없이 녹아내리며 다시금 부드럽게 풀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이젠, 예전처럼 심경이 또다시 경직되려 하는 그 위태로운 지경이 찾아올 때마다, 상당히 의식적으로 그 두꺼운 벽 어딘가에 자그마한 숨구멍 하나쯤은 남겨두려고 노력한다. 그 조그만 틈으로 혹시 모를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이나 온기가 스며들 수 있도록, 혹은 내가 먼저 내밀 여린 손짓이 건너갈 수 있도록. 그렇게 조심스럽게 열어둔 그 고요한 틈새로 잔잔하게 스며드는 온기는, 때로는 길고 복잡하게 늘어놓는 그 어떤 말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도록 가슴에 머물며 잔잔한 위로를 준다. 어쩌면 이렇게 애써 남겨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한 그 틈 하나가, 이미 멀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던 단절된 관계 사이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금 따뜻한 다리를 놓아주는 소중한 시작점이 되어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미약한 가능성 하나만으로도, 다시 한번 용기를 내볼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마음의 거리》, 다음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