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 관계도 천천히 익어가는 것이다
늦은 오후였다.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던 중, 어느새 오래된 농가 마당 끝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그곳에는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머금은 장독대가 조용히 서 있었다. 저물어가는 햇살이 장독들의 둥근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 한 줄기가 살랑이며 스쳐갔다. 항아리 뚜껑 위로 소복이 내려앉은 먼지와 군데군데 벗겨진 유약 자국들이 흘러간 시간을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 장독 안에서는 지금도 된장이 천천히 익어가고 있으리라. 문득 그 오랜 과정을 따라가 본다. 잘 여문 콩을 골라 깨끗이 씻고, 밤새 물에 불린다. 부드럽게 삶아 곱게 으깨 네모반듯한 메주를 빚는다. 볕 좋은 날에는 처마 밑에 매달아 꾸덕꾸덕 말리고, 볏짚을 깔아 둔 따뜻한 방에서 다시 띄운다. 긴 시간 속에 피어나는 하얀 곰팡이와 노란 곰팡이는 발효가 잘 이어지고 있다는 반가운 신호다. 그렇게 묵묵히 기다린 끝에야 비로소 깊은 맛이 깃든다. 잘 띄운 메주를 깨끗이 씻어 장독에 차곡차곡 담고, 소금물을 부어 또 한 번의 긴 겨울을 견딘다. 그리고 마침내.
결국 된장은 시간이 빚어낸다. 조급한 손길로는 그 맛에 닿을 수 없다. 바람과 온도, 습도, 햇살의 미묘한 어긋남에도 쉽게 흔들리는 것이 장맛이다. 그래서 자주 손을 대기보다는, 오히려 무심히 놓아두는 사이 제 빛깔과 향을 찾아간다. 그렇게 내버려 둔 동안, 콩은 본래의 형체를 지운 채 전혀 다른 맛과 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또 그만큼 빠르게 소비되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런 느린 과정은 생경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다림 속에서야말로 진짜 깊이가 생겨난다. 서둘러 간만 맞춰 끓여낸 국물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된장 특유의 구수하고 그윽한 향은 오롯이 오랜 시간 쌓인 변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잠시 장독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우리네 삶도 이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때는 남보다 앞서가려 그토록 조급했던 마음이,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비로소 배운 것들이 있다. 모든 것이 그리 빨리 완성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서서히 스며드는 변화들이 결국에는 더 오래도록 남아 삶을 채운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장독대 앞에 서 있던 짧은 시간 동안,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어떤 감정들이 조용히 고개를 드는 것을 느꼈다. 콩이 된장이 되어가듯, 나도 그렇게 익어가며 여기까지 흘러왔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사람 사이의 관계 또한 이런 된장 항아리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처음부터 자연스럽고 편안한 거리는 좀처럼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오히려 어색함만 남고, 때로는 의도치 않게 서로의 거리가 더 멀어지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고,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늘 서두르곤 했다. 만나자마자 밤새 고민해 준비한 질문들을 쏟아내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상대의 취향이나 생각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채 내 이야기만 한껏 늘어놓던 부끄러운 모습들이 떠오른다. 대화 중 잠시라도 침묵이 흐르면 못 견디게 불안해져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고, 상대의 무심한 표정이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늦은 밤, 상대의 SNS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프로필 사진이며 상태 메시지 하나하나에 온갖 의미를 부여하고 혼자 속앓이 하던 날들도 적지 않았다. 답장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온갖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뒤척이다 잠 못 이루던 밤들이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서툴고 어렸다.
그런 조급함 때문에 놓쳐버린 인연들도 있었다. 상대의 마음이 아직 여물지 않았음을 알지 못하고 나 혼자 재촉했고, 그 조바심은 결국 상대에게 부담이 되어 멀어지게 만들었다. 나의 진심을 빠르게 쏟아내면 상대도 같은 온도로 응답해 주리라 믿었지만, 그것은 안타깝게도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그때 조금만 더 기다릴 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치 화분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물을 쏟아붓는 어리석은 정원사처럼, 넘치는 애정을 서둘러 표현했지만 결국 관계의 뿌리를 숨 막히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쓰린 경험을 통해, 관계에도 숨 쉴 틈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 오히려 서로를 더 깊어지게 만드는 시작일 수 있음을 아프게 배웠다.
시간은 그런 아쉬움과 후회 위에 조금씩 지혜의 조각들을 쌓아주었다. 관계에는 저마다 익어가는 속도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조급 해한들 그 시간을 앞당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 물러나 기다리는 여유가 오히려 진정한 배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아이를 키우면서 또 한 번 절실히 깨달았다.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첫걸음을 떼고, 첫 단어를 말하기 시작하는 그 모든 경이로운 순간마다, 나의 조바심은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조율되었다. 주변 아이들과 비교하며 속으로 초조해했던 내게, 아이는 늘 자신의 보폭으로 세상을 익혀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단단해지는 아이의 작은 다리처럼, 관계도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함께 깊어지는 것이라는 걸.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 조급함은 늘 어긋남을 불러왔지만,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함께 걷는 동안, 나는 관계에서도 속도를 맞춰 걷는 법을 조금씩 배워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마주 앉으면, 이제는 굳이 묻지 않아도 많은 것이 읽힌다. 밤을 새워 고민한 말들을 힘들게 꺼내지 않아도, 친구의 얼굴빛, 어깨선, 나지막한 숨결 하나에도 요즘의 마음 상태가 슬며시 비친다. 예전에는 시시콜콜 모든 것을 말해야만 깊은 우정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말없이 건네는 따뜻한 눈빛과 가만히 잡아주는 손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와 이해를 주고받는다. 긴 설명이 없어도 서로의 삶을 너끈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함께 쌓아온 시간 덕분이다. 그 시간의 갈피갈피 안에는 함께 웃고 울었던 수많은 기억들, 서로의 크고 작은 성장을 묵묵히 바라봐준 순간들이 콩알처럼 빼곡히 박혀 있을 것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는 지금, 그저 이렇게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더없이 평온해진다. 이런 관계가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더라도 어제 만난 듯 편안한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참으로 귀한 선물이다. 오래될수록 맛이 깊어지는 된장처럼, 좋은 관계도 시간이 더할수록 그 빛을 더해가는 것 같다.
예전에는 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 중심에서 대화를 이끌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이들이 멋져 보여, 나도 억지로 어설픈 유머를 짜내 분위기를 띄워보려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속은 더 공허해질 뿐이었다. 지금은 그저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꼭 필요한 순간에 담백한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 훨씬 편안하고 좋다. 애써 분위기의 온도를 끌어올리려 하지 않는 그 자연스러운 여유가 오히려 서로의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마치 잔잔한 호숫가에 앉아 있는 듯, 그런 사람들 곁에서는 내 마음도 함께 차분히 잦아들었다. 그들의 침묵은 결코 비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너그럽게 감싸 안는 넓고 깊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수많은 화려한 위로의 말보다, 그저 함께 머물러주는 조용한 눈빛 하나가 더 큰 힘이 되는 순간을 살면서 자주 경험했다. 진정한 공감이란 요란한 말이 아니라, 기꺼이 함께 있어 주는 마음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물론 살면서 어찌 서운한 순간이 없겠는가. 별것 아닌 상대의 말투 하나, 무심하게 느껴지는 짧은 메시지 한 줄에도 하루 종일 마음이 머물며 속상할 때가 있다. 예전 같으면 왜 그랬는지 따져 묻거나 밤새 뒤척이며 괴로워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불편한 감정들도 내 안에서 잠시 묵혀두는 법을 조금씩 배워간다. 된장이 항아리 속에서 외부의 공기와 직접 닿지 않고 조용히 발효되듯, 내 안에서 일어나는 소란 또한 시간의 흐름 아래에서 차분히 가라앉기를 기다려보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토록 격렬했던 감정도 어느새 잦아들고, 복잡하게 얽혔던 마음도 스르르 풀리는 것을 심심찮게 경험한다. 물론 때로는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풀어야 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감정의 문제는 시간에게 잠시 맡겨두는 편이 더 나았다. 그 기다림 속에서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도 조금씩 자라난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릴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또 다른 과정이 아닐까 싶다.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 참 다르다고 느꼈다. 나는 말이 많은 편이었고, 그는 과묵했다. 그의 긴 침묵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져 혼자 속상해한 적도 있었다. 쉴 새 없이 내 이야기를 쏟아내던 내게, 그는 그저 희미한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나는 그의 침묵 속에 머무는 깊은 배려를 알게 되었다. 감정이 격해져 어쩔 줄 몰라할 때, 그는 늘 나지막하고 조용한 한마디로 나를 차분히 가라앉혀주었다. 말이 적다고 해서 마음까지 적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의 무게감 있는 고요함이 오히려 나의 성급함과 불안함을 다독여주었다. 그의 침묵은 비난도 무관심도 아니었다. 그것은 신중한 생각과 따뜻한 이해의 또 다른 표현 방식이었다. 그의 존재는 마치 깊은 숲처럼 고요했고, 그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평온을 되찾곤 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장독대 앞에 가만히 앉아 된장 항아리를 들여다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가끔 국자로 장의 상태를 살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시던 얼굴, 햇살 좋은 날이면 항아리 뚜껑을 열어 바람을 쐬어주고 정성껏 독을 닦아내던 그 살뜰한 손길. 그것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을 넘어선, 어떤 깊은 다정함이었다. "장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들여다봐야 제대로 맛이 드는 거란다." 그때는 그저 음식에 관한 이야기려니 여겼던 어머니의 그 말씀이, 이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아련히 떠오른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직장 동료든, 심지어 이웃까지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속도로 마음을 익혀가는 중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어머니의 된장처럼, 우리의 관계에도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이 스며든다. 재촉한다고 깊어지지 않고, 서두른다고 단단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서로의 온기가 조용히 스며들어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억지로 붙잡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관계 속의 빈틈을 조급하게 메우려 들지 않으며,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렇게 자연스럽게 두터워진 관계는 쉬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마치 오래도록 변함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소용돌이치며 결국에는 넓고 깊은 바다로 향하듯, 서로의 다름 속에서도 관계는 더욱 풍요로워지고 우리가 미처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을 본다.
이제는 대화 중에 문득 찾아오는 침묵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 고요함 속에, 말없이 오가는 서로의 마음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침묵은 더 이상 관계의 단절이나 어색함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는 편안한 쉼표처럼 다가온다. 익숙한 찻잔에 따뜻한 물이 채워지는 소리, 조용히 차 한 잔을 권하는 다정한 손짓,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서로의 온기. 어쩌면 익어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 무엇.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속도로, 서로의 삶에 은은한 향기를 더하며,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함께 익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장을 보고 돌아 나오는 길, 아까 스쳐 왔던 그 된장 항아리 앞을 다시 지나며 한참 동안 눈길이 머물렀다. 항아리 뚜껑 아래 고요히 쌓여 숙성되고 있을 시간처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깊게 익어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서로의 온기를 믿고, 그저 묵묵히 천천히 함께 걸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소중한 마음의 거리였다. 그리고 그 적당한 거리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고도 얼마나 깊고 단단하게 이어질 수 있었던가.
이 조용한 오후를 가만히 보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때의 서두름도, 이루지 못한 욕심도 이제는 웃으며 내려놓고 서로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된 그 시간들이, 결국 우리를 이만큼이나 괜찮은 오늘로 데려다 놓았구나 하고.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이 고요한 믿음이, 지난날 얼마나 고맙고 단단한 힘이 되어주었는지 새삼 가슴이 따뜻해졌다. 이렇게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익어가는 관계들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유난히 소중하게 느껴지는 오후, 이 평화로운 순간들이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다. 어쩌면 삶이란, 이렇게 조용히 익어가는 시간 속에서 진짜 의미를 발견하는 여정은 아닐까.
"It is the time you have wasted for your rose that makes your rose so important."
"네가 네 장미를 위해 바친 시간이 그 장미를 특별하게 만든 거야."
(Antoine de Saint-Exupéry, 『어린 왕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