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 곁에 둘 사람, 거리를 둘 사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 그 ‘거리’라는 게 필요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된 게. 아주 어릴 적엔 세상이 참 단순했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내 편인 줄 알았고, 손만 뻗으면 저기 저 별도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맑게 웃어 보이면 온 세상이 나를 향해 같이 웃어주는 것 같았고, 마음을 준 만큼 당연히 되돌아오는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람 마음이라는 건 생각보다 훨씬 깊고 복잡해서, 가까이 있다고 언제나 좋은 것도 아니고, 거리가 멀어졌다고 해서 늘 서운한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관계는 서로에게 적당한 거리가 허락될 때 오히려 소중함이 더 선명해지고, 그 여백 덕분에 관계가 한층 단단하고 편안해진다는 걸, 수없이 부딪히고 돌아서며 천천히 배워온 것 같다.
오늘 아침, 습관처럼 커피를 내리다 말고 창밖을 한참 바라봤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매일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햇살의 각도도, 바람의 세기도,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내 시선도 매일 조금씩 달랐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마치 금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는 걸 보면서, 오늘의 마음을 가만히 다독여본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 햇살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뜨겁게 다가가면 서로를 데게 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따스한 온기가 채 닿지 못하는 것처럼.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어떤 인연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가고, 어떤 인연은 삶의 한가운데 깊이 뿌리를 내리는 나무처럼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기도 한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왠지 모르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조심스러워지는 사람도 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은 거리에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 편히 가까이 두어야 할 사람이 있고, 한두 걸음쯤 떨어져 있어야 서로에게 부담이 없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그걸 가려내는 지혜, 어쩌면 그게 어른이 되어가면서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매일같이 붙어 다니며 세상 모든 비밀을 공유했던 단짝 친구가 어른이 되어서는 일 년에 한두 번 안부나 겨우 주고받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직장 동료가 어느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관계라는 건 정말이지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고,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의미들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내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한때는 세상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야 한다고 믿었던 때가. 그게 마치 ‘좋은 사람’이라는 증표라도 되는 것처럼. 누군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내 본래 모습과는 다른 가면을 쓰기도 하고, 마음속으로는 불편했지만 차마 거절하지 못해 억지웃음을 지으며 부탁을 들어주기도 했다.
수십 명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어떻게든 소속감을 느껴보려고 억지로 대화에 끼어들기도 했다. 한때는 정말 가까웠던 친구가 새로운 관계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볼 때면,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한편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서운함을 어쩌지 못했다. 상대방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도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가슴 졸이며 내 행동을 곱씹곤 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온도를 가늠하며, 혹시나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고.
그렇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그들에게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게 관계를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종종 나를 깊은 소진감에 빠뜨렸다.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내 마음은 점점 더 희미해져 갔다.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착한 사람 콤플렉스’ 혹은 ‘좋은 사람 강박’ 속에서 속절없이 지쳐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지쳐버린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된 거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살피고, 말꼬리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더는 감당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실컷 늘어놓는 사람과의 통화가 겨우 끝난 뒤,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온몸으로 밀려오는 깊은 피로감. 그렇게 애쓴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크게 서운함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다. 나는 이만큼이나 마음을 쓰고 노력하는데, 왜 상대방은 조금도 알아주지 않는 걸까. 왜 우리의 관계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인 물음표들은 단단한 응어리가 되어 가슴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바로 그때였다.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된 게.
모든 관계를 그렇게까지 애쓰며 가까이 끌어안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사실 그럴 수도 없다는 걸 말이다. 편안함이라는 건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한쪽의 일방적인 노력과 희생으로 겨우 쌓아 올린 관계는, 아주 작은 바람에도 너무나 쉽게 무너져 내렸으니까.
참석하기 불편한 모임에 대한 초대를 받고 수없이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던 날. 알 수 없는 죄책감 너머로 찾아왔던 그 짜릿한 해방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서로의 숨결을 존중하고, 각자의 보이지 않는 공간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한 거리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 깨달음은 마치 오랫동안 내 어깨를 짓눌러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순간과 같았다. 그제야 막혔던 숨통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때로는 거리를 두는 것이 관계를 회피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을 보호하고 더 건강한 관계를 지켜나가는 자기 돌봄의 한 방법일 수 있다는 걸, 나는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거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우리가 마음 편히 가까이 둘 수 있는 사람은 함께 있을 때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굳이 예쁜 말로 포장하려 애쓰지 않아도, 조금은 서툴고 투박한 말이 불쑥 튀어나와도 ‘아, 저건 저 친구 본심이 아닐 거야’ 하고 너그럽게 알아주는 사람. 함께 있는 침묵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서 더 깊은 교감이 흐르는 듯한 사람. 그런 침묵은 참 넉넉하고 평화롭다.
내 속마음을 굳이 전부 다 꺼내 보이지 않아도 괜찮고, 구구절절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눈빛이나 짧은 한숨만으로도 내 마음을 알아채 주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이상하게도 숨이 한결 고르게 쉬어진다. 마치 오랫동안 불편한 신발을 신고 다니다가, 드디어 내 발에 꼭 맞는 편안한 신발을 찾아 신은 듯한 그런 안도감 같은 거.
그들은 나의 가장 빛나는 순간뿐만 아니라, 어둡고 그늘진 그림자까지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여 준다. 그런 존재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거친 세상의 풍랑을 헤쳐 나갈 작은 용기가 샘솟곤 한다.
어쩌면 사회 초년생 시절, 야근이 잦았던 어느 날 밤의 기억과도 비슷하다. 모두가 지쳐갈 무렵, 옆자리 동기가 건네준 따뜻한 커피 한 잔.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는 눈빛이 오갔던 것 같다. 그 작은 온기와 침묵의 격려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저 함께 그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를 끈끈함과 위로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시시콜콜 길게 묻지 않아도, 그저 마주 보고 웃으며 이런저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 요즘 살쪘냐?”, “야,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어쩜 그렇게 똑같냐.” 툭툭 던지는 장난스러운 말속에서도 따뜻한 진심이 묻어났다. 그렇게 오가는 시시껄렁한 대화 속에, 마음 한구석에 묵혀두었던 해묵은 감정들도 눈 녹듯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런 만남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런 관계야말로 팍팍한 삶 속에 주어진 진짜 축복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마치 메마른 일상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단비 같았달까.
반면에, 아무리 애를 써도 조심스럽게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더라. 함께 있을 때보다 만나고 돌아온 후에 오히려 더 깊은 피로감이 몰려오는 사람. 아무리 말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결국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게 되고, 상대방의 진심을 헤아리기보다는 자기 생각만 앞세우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종종 평행선을 달리듯 겉돌기만 하고, 아무리 다가가려 애써도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에 막히는 것처럼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런 관계를 어떻게든 가까이 끌어당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내 마음이 먼저 지쳐 나가떨어지곤 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관계까지도 어떻게든 끌어안고 가려고 안간힘을 썼겠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모든 관계가 노력만으로 좋아지지는 않는다는 걸. 때로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고, 어쩌면 상대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수도 있다는 걸.
신기하게도, 그렇게 거리를 둔 후에야 비로소 서로에게 덜 부담스러운, 오히려 더 편안한 관계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소모적이기만 하던 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니, 그동안 낭비되었던 시간과 에너지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나는 그 시간에 나를 위한 새로운 취미를 찾기도 하고, 늘 읽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책들을 마음껏 읽기도 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이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원망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내 마음을 스스로 보호하려는 것뿐이다. 서운한 감정을 마음속에 조용히 품어두기보다는, 그 관계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살며시 내려놓는 거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관계는 더 이상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편안하게 머물 수 있게 되더라. 숨결이 직접 닿지 않는 먼 거리에서도, 한때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온기는 아주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는 법이니까.
모든 관계가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뜨거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멀리서 서로의 안부를 조용히 빌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인연도 있으니까.
어떤 사람은 마치 그림자처럼, 가만히 내 마음을 지켜봐 주기도 한다.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재촉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자신의 곁을 내어준다. “힘내”라는 직접적인 말 한마디 대신 따뜻한 눈빛으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시간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거다. 내가 혹여 서툰 말을 내뱉더라도 너그럽게 덮어주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늘 변함없는 눈빛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괜스레 목이 뜨거워지고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지곤 한다.
이 넓은 세상에 온전히 내 편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건, 얼마나 크나큰 위안인지 모른다. 아마 당신 곁에도 분명 그런 사람이 있을 거다. 혹은 당신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고 있을지도 모르고.
가끔은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서둘러 다가가서 상대방을 조급하게 만들기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묵묵히 기다려줄 줄 알고, 이런저런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친구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섣부른 조언이나 충고 대신 함께 맛있는 밥을 먹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냈던 기억들. 내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가만히 다가와 내 어깨를 토닥여주던 그 따뜻한 손길.
돌이켜보면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진짜 위로였다.
언젠가 한 친구가 힘든 시기를 다 지나고 나서 내게 툭 던지듯 말했다. “그때 네가 있어서 참 좋았어. 별말 없이 그냥 옆에 있어 줘서.” 그 말이 참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아있다.
우리는 종종 말을 통해 마음을 전하려 한다. 한 마디라도 더 건네고 싶어 조심스레 단어를 고르고, 때로는 서툰 위로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꼭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날, 조용히 곁을 지키던 한 사람의 존재가 오히려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때로는 화려하고 거창한 말보다, 함께 머무는 침묵의 존재감이 훨씬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어쩌면 진정한 소통은 말의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마음은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 말을 건너뛰어 도달하는 곳에서 비로소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너무 많은 말을 하려고 애쓴다. 무언가를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채워 넣으려 한다. 그러나 침묵은 어색함이나 불편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깊은 존중과 배려일 수 있다. 말 없는 순간에도 흐르는 그 조용한 온기가 마음을 어루만지고,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가 되어준다.
어쩌면 가장 깊은 대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존재만으로 충분한 순간. 그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소통의 또 다른 얼굴일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관계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마치 강물이 큰 바위를 만나면 잠시 돌아가기도 하고,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그곳을 가득 채우고 다시 흘러가듯,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거다. 너무 오랫동안 꽉 움켜쥐려고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리고, 너무 자주 휘저으면 맑았던 물도 금세 흙탕물이 되어버린다.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놓아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위한 가장 깊은 배려일지도 모른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조금 멀리,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괜찮다. 그들 역시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 주기에 더없이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 때로는 아주 가까이서, 때로는 조금 멀리서, 우리는 그렇게 함께 이 시간의 강을 건너고 있는 것이겠지. 어쩌면 관계란 그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늘 다정하게 맞닿아 있는 채로, 오래도록 잔잔히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