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편 – 말 없는 다정함으로 이어진다, 커뮤니티라는 이름으로
함께라는 말이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저녁이면 서로의 집 앞에 서서 "놀러 나오라"고 외치던 시간들. 그때의 '함께'는 물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경험이었다.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뛰놀고, 좁은 골목길을 나란히 걸으며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몸으로 느끼고 확인했다. 얼굴을 자주 마주치는 것이 친밀함의 증거였고, 물리적 가까움이 관계의 척도가 되었다. 관계는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깊어지는 것으로 여겨졌고, 그렇게 형성된 유대감은 단단한 끈처럼 우리를 엮어주었다. 우리는 이 방식의 공동체 속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그 무렵 우리가 알던 커뮤니티는 소속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같은 학교, 같은 직장, 같은 종교 공동체라는 말 속에는 단단한 경계와 책임이 있었다.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해진 역할과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공동체의 규칙을 따르고, 행사에 참여하며, 때로는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보살피고 지지했지만, 동시에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을 함께 느꼈다. 관계의 의무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소속감을 얻는 동시에, 그로 인해 발생하는 피로와 책임감에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다. 이제 우리는 얼굴을 보지 않고도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어색함 없이 반가움만 남는 관계가 생겨났다. 눈앞에 없어도, 단 한마디의 말 없이도 충분히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함께하는 방식 자체가 변하고 있다. 손을 잡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특정한 자리를 지키지 않아도 마음만은 머무르고 있다는 감각. 이것이 오늘날의 커뮤니티를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이다.
누군가는 매일 서로의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마음의 한쪽에서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이이지만, 온라인에 올라온 글 속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익명의 닉네임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존재들이 있다. 이 '좋아요'는 단순한 클릭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하루에 건네는 작고 단단한 위로이며, "당신의 마음을 읽었습니다"라는 무언의 응답이다. 말이 없지만, 그 작은 행동 하나로 마음이 움직이고, 조용한 연대가 시작된다. 우리는 이제 직접적인 대화가 없어도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지지를 주고받는다. 이 비물리적 연결은 과거의 공동체와 다른 새로운 친밀함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날의 커뮤니티는 기존의 개념처럼 명확한 윤곽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임의 이름도 없고, 정기적인 일정도 없으며, 출석 체크라는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는 감정의 흐름과 이해가 머무르는 공간, 조용한 연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 모여 만든 느슨한 독서 모임에서는, 같은 책을 읽으며 각자의 생각과 감상을 공유한다. 서로의 글을 묵묵히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사이에는 어떤 물리적인 약속보다 강한 유대감이 흐른다. 비슷한 시간에 글을 쓰며 하루를 여는 사람들 역시, 서로의 루틴을 응원하며 보이지 않는 리듬을 공유한다. 그 모두가 커뮤니티의 새로운 형태이자,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이다.
과거의 공동체가 규칙과 역할로 움직였다면, 지금의 커뮤니티는 자유로운 공간을 기반으로 한다. 과거에는 자리를 비우면 이유를 설명해야 했고, 약속에 늦으면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그 안에는 서로를 돌보는 따뜻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관계의 의무에서 오는 부담과 피로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커뮤니티는 다르다. 머물고 싶을 때 머물고, 조용히 물러나고 싶을 때 물러날 수 있는 관계. 거기에는 불편한 설명도, 강요된 감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자유로운 공간은 관계를 오랫동안 건강하게 지켜주는 힘이 된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느슨함 속에서, 우리는 더 솔직하고 편안하게 연결될 수 있다.
나는 요즘, 그런 비물리적 연결이 귀하게 느껴진다. 책장을 넘기다 문장 하나에 누군가의 아이디가 떠오르고, 글 한 줄에 익숙한 닉네임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함께 본 적도, 직접적으로 깊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서로의 마음이 스며든 감정은 오랫동안 남는다. 어떤 날은 아무 말 없이 건네진 '응원'이라는 작은 흔적 하나에 하루가 견뎌지고, 어떤 날은 짧은 댓글 하나에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서로의 하루를 조금씩 안아주고 있다.
공감은 관계의 적절한 거리를 찾게 해준다. 가까이 다가가면 상대의 숨소리마저 부담스러워 숨이 막히고, 멀리 떨어지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다. 말없이 머무는 감정, 얽히지 않으면서도 스며들듯 이어지는 다정함. 그것이 지금 시대가 찾는 커뮤니티의 본질이다. 의무는 없지만 존재감은 분명한 관계. 서로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지만,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고, 때때로 말하지 않는 응답을 건네는 사람들. 우리는 바로 그런 방식으로 서로의 존재를 느낀다. 이 관계는 끈끈하게 얽히지 않았기에 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깊은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것,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관계 맺기 방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면을 열고 닫는다. 누군가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진 않지만, 내가 남긴 글에 다정한 흔적이 남아 있기를 바란다. 바쁜 날에는 댓글을 달지 못하더라도, 글을 읽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바로 말 없는 다정함이다. 함께 있지 않아도 서로를 기억하고, 자주 보지 않아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감정의 연결이야말로 가장 강력하고 오래가는 유대감일 것이다.
삶이 빠르게 흘러가면서 사람들은 다양한 관계 속을 오간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많아지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공동체는 드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름 없이 조용히 이어지는 관계일수록 더 깊이 마음속에 남는다. 형식과 의무가 없는 관계일수록, 그 관계를 통해 얻는 감정의 울림은 더욱 선명하고 깊어진다. 이는 아마도 마음이 서로에게 닿았을 때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묻거나 확인하지 않더라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조용히 서로에게 스며든다.
이러한 연결이 불확실하게 느껴져 불안해질 때도 있다. "이 관계가 정말 이어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의문마저도 관계에 대한 기대와 소중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존재를 묻거나 응답을 강요하지 않아도, 마음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 자리에서 커뮤니티는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성장한다.
나는 이제 안다. 소속이 사람을 지켜주던 시대는 끝나고, 감정이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을. 함께라는 말이 말보다 더 먼저 놓이는 자리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읽히는 순간, 우리는 이미 서로의 커뮤니티가 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 사이에도 그런 조용한 다정함이 흐르기를 바란다. 물리적인 소속이 아니라, 감정이 머무는 이 방식을 우리는 커뮤니티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