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편 - 마음의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하여: 내면을 조율하는 마인드셋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이 말은 곧, 인간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모든 선택이 반드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선택이 진짜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 선택을 담아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먼저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 과거의 실수, 미래의 불안을 덜어내고 지금 이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내면의 여백. 코끝을 스치는 바람, 눈에 머무는 빛, 손끝에 닿은 온기를 놓치지 않는 마음. 그 여백이 있어야 선택은 비로소 제 기능을 하고, 나다운 길을 만들어간다. 마인드셋이란 바로 그 내면의 틀을 설계하는 조율기다. 하루의 끝에서 내가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실수를 다그치기보다 이해하는 태도를 품을 때, 그 작고 느린 움직임이 삶을 훨씬 유연하게 만든다.
자유는 언제나 격렬한 결단 속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조용한 이해 속에서 잉태된다.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판단을 유예할 수 있는 힘, 그 유예 속에서 비로소 '자기 주도적인 선택'이 태어난다. 마인드셋은 그 선택의 감도를 조절해주는 정서적 나침반이자, 내면의 체온을 조율하는 장치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을 '현존재(Dasein)'라 불렀고,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인식하는 존재”라고 정의했다. 삶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는 존재라는 의미다. 마인드셋은 이 자각의 밀도를 감각적으로 기록해 나가는 내면의 태도이기도 하다.
귓가를 스치는 빗방울 소리가 기억 저편의 어떤 마음을 흔든다. 손끝에 닿은 머그컵의 따뜻한 온기 속에는, 말없이 건네던 누군가의 배려가 남아 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버터 쿠키의 질감은, 잠시 삶을 느리게 만들어 준다. 책장을 넘길 때 전해지는 종이의 거침은, 생각의 흐름을 조용히 바꾸어 놓는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바람 종소리는, 내가 아직도 감각하고 있다는 증거처럼 울린다.
그 모든 감각이 동시에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읽게 된다. 감각은 언어보다 먼저 마음을 깨우고, 그 감각이 놓친 마음은 나중에도 기억되지 않는다.
감각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감각은 감정을 이끌고, 감정은 태도를 형성하며, 태도는 하루의 흐름을 바꾸는 법이다. 마인드셋이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그 감각을 얼마나 정제되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섬세하게 해석하고 응답하느냐의 문제다. 현대인은 너무 많은 정보를 기억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감각에는 점점 무뎌지고 있다. 그래서 삶의 결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바쁘게 지나간 하루보다, 감각이 살아 있었던 하루가 오래도록 남는 이유다.
고요함은 말이 없는 상태 그 이상이다. 고요함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표현의 순간을 기다리는 준비된 마음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마인드셋은 조용히 다듬어진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그 감정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를 아는 사람이다.
침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단단한 사람의 침묵, 다른 하나는 설명할 힘조차 남지 않은 사람의 침묵. 마인드셋은 이 둘을 구별할 줄 아는 민감함이다.
세네카는 말했다.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바다와 같아서 때때로 고요하지 못하고 출렁이기도 하지만, 그 출렁임 속에서도 삶의 방향만은 잃어선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고대 로마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에서, 삶은 외부의 상황보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한다. 마인드셋이란 바로 그 방향을 감각하고 놓치지 않도록 훈련하는 내면의 자세이며,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유지하기 위한 정신의 나침반이다.
말하지 않아도 자기 마음이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가장 넓고 깊은 내면의 바다가 흐르고 있다.
그 바다는 누군가에게 말로 증명하지 않아도 단단하고 분명한 방향을 품고 있으며,
언젠가 아주 짧지만 힘 있는 한마디로 조용히 그 존재를 드러낸다.
철학은 무엇인가? 결국 멈추지 않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지금 붙잡고 있는 이 기준은 누구의 것인가?" 그 질문을 반복하는 삶은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의식 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방향을 잃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하다.
나는 종종 하루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하루, 나는 나답게 살았는가?" 그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진 날과 그냥 흘려보낸 날의 감정의 잔상은 분명하게 다르다. 질문은 삶의 체온을 높이는 장치다. 질문이 있는 사람만이 방향을 갖고, 방향이 있는 사람만이 삶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다.
마인드셋은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먼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물음이 멈추지 않는 한, 삶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증거다.
삶의 중심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기 위해, 우리는 마인드셋을 다듬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것은 하루에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에서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이 감정은 진짜인가?", "이 반응은 내 마음의 언어인가, 아니면 타인의 기대인가?"
그 질문은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감정과 함께 걸어가는 힘을 기른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반 박자 늦춰가는 그 틈에서야 진짜 자기다운 선택이 가능해진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마인드셋이란 자기 기준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마음을 해치지 않는 태도다."
그 말처럼, 마인드셋은 이기적인 확신이 아니다. 나도 지키고, 타인도 존중하는 방식으로 내 마음을 조율하는 능력이다. 그것은 때로는 침묵이고, 때로는 분명한 한마디이며, 때로는 용기 있는 물러섬이다.
크고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 아주 작지만 분명한 기준 하나. 그 기준이 삶의 흐름을 바꾼다. "지금 이 선택이, 내일의 나를 존중하게 만들 수 있는가?" 그 기준 하나만 지켜낼 수 있다면, 삶은 혼란스러워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마인드셋은 어떤 기술도, 기법도 아니다. 스스로에게 정직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 습관이며, 내면의 말투를 조용히 바로잡는 일상의 연습이다. 오늘 그 연습을 시작한 사람은 내일 조금 더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낸 하루는 절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하루는 손끝에 남고, 공기 속에 스며들며,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도록 조용히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