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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눈, 듣는 마음》

18편 - 일상 언어 속 피그말리온 효과

by 정성균

말은 방향이 된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변화시켰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하루 중 어느 순간, 누군가가 건넨 말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머무는 경험을 한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고, 멈춰 있던 감정을 서서히 움직이게 하기도 한다.


어느 날 지인이 내게 말했다.


“요즘은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여.”


그 순간 나는 멈칫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변한 걸까, 아니면 그 말을 들은 후에 그렇게 되고 싶어진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렇듯 말은 생각보다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은 그저 흐르지만, 말은 때로는 그 흐름 자체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기대가 만든 흐름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품는 기대가 실제 행동과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 용어다. 이 효과는 기대가 곧 믿음에서 시작되고, 그 믿음을 전해 들은 사람이 스스로를 그렇게 바라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행동 방식까지 변화하기 시작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직접 만든 조각상에게 깊은 애정을 쏟았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그 조각상은 결국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비록 오래된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기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사람은 무언가를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하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은 의외로 자주, 누군가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비롯되곤 한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가능성을 심어주는 씨앗이 되는 셈이다.


진심이 피워낸 변화의 꽃


어둠 속을 헤매는 듯한 나날을 보내던 이가 있었습니다. 재능은 있었으나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벽에 갇혀 있던 한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는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업무 방식에 적응하는 것을 망설였고, 자신의 경험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까 염려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던 젊은 리더십을 가진 상사는 어느 날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배님의 오랜 경험과 깊은 통찰력은 저희 젊은 세대가 쉽게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특히 과거의 성공 방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노력하시는 모습은 저에게 큰 영감을 줍니다."


그 상사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들은 뒤로,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직장인은 놀랍게도 조금씩 새로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여전히 주저했지만, 상사의 말이 그의 마음에 숨겨진 용기를 일깨웠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자, 그는 더 이상 변화를 망설이는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세대 간의 가교 역할을 하며 조직의 성장을 이끄는 멘토'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거창한 격려나 복잡한 조언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문장, 바로 상사의 따뜻하고 진심 어린 말이었습니다. 이처럼 말은 한 사람의 잠재력을 깨우고, 그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진심 어린 관심과 존중은 언제나 가장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법이죠.


가까운 말일수록 오래 남는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은 거창하거나 특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주고받는 평범한 말들 속에 진심이 담기고, 그 진심이 마음속에 깊이 스며든다. 예를 들어,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자신감을 잃게 하는 말과 격려와 힘을 주는 말은 분명히 다르다.


“왜 그렇게밖에 못 해?”


이런 비난 섞인 말은 듣는 사람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자신감을 잃게 한다. 반대로.


“오늘도 잘 해냈어.”


이런 격려의 말은 조금 더 힘을 내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순식간에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건넨 따뜻한 말이 누군가의 생각을 오랫동안 긍정적인 방향으로 머물게 할 수도 있다. 이렇듯 말은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에는 너무나도 또렷한 흔적을 남긴다. 말투는 단순히 언어 표현의 방식을 넘어, 우리의 감정과 태도를 변화시키고 생각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안 돼.”


“해보자.”


이 두 말 사이에서,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결정하게 된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우리 존재 자체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나에게 건네는 말


하루에도 여러 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오늘도 지쳤다.”


“나는 왜 이럴까.”


이런 혼잣말들이다. 어떤 말들은 습관처럼 반복되고, 어느새 그 말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고정된 틀이 되기도 한다. 거울을 보며 무심코 내뱉는 말들, 잠들기 전 마음속에서 맴도는 생각들, 이 모든 말들이 쌓여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 결정된다.


한때 나는 일기장에 늘 같은 말을 적었다.

‘또 미뤘다.’


‘이번에도 흔들렸다.’


이런 자기 비난의 문장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 글 속에서조차 내가 나 자신을 응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일기 속 문장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수고했어.”


이런 격려의 말을 남겼고, 별다른 일이 없던 날에도.


“잘 견뎠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놀랍게도 말투가 바뀌자 하루하루가 훨씬 부드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작은 변화가 꾸준히 이어지자, 나를 대하는 내 마음가짐 또한 조금씩 긍정적으로 달라졌다. 이처럼 자신에게 건네는 말은 우리의 자아 인식과 행동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인 자기 대화는 우리의 내면을 건강하게 만들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 시작점이 된다.


관계를 붙드는 말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말은 오랜 잔상을 남긴다. 오해나 충돌의 순간에 오가는 말들보다, 오히려 아무런 특별한 일 없이 평범한 순간에 건네는 말들이 훨씬 더 깊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요즘 괜찮아?”


“너 덕분에 힘이 났어.”


이런 문장들은 비록 가볍게 들릴지라도, 쉽게 잊히지 않고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 카페에서의 예시 -

퇴근길에 내가 자주 들르던 카페에서의 일이다. 바리스타 직원이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오늘 하루도 잘 버티셨어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인사말이었지만, 그 말은 그날 하루의 끝에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날 이후, 그 카페는 단순히 커피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직원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먼저 떠오르는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이처럼 말은 때때로 시간을 초월하여 기억을 형성하고, 특정 장소를 의미 있는 곳으로 남기기도 한다.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거창하고 긴 문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짧은 말 한마디 속에도 진심이 담길 수 있고, 그 진심이 담긴 말이 관계를 오랫동안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 말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관계의 깊이를 더하고 서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


말은 흐름을 만든다


지금 우리는 어떤 말들을 우리 삶 속에 심고 있는가? 아침에 눈을 뜨고 내뱉는 첫 문장, 혼잣말처럼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투,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하는 짧은 한 줄의 메시지. 이 모든 말들이 우리의 감정과 그날 하루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힘들다’고 시작한 하루는 그 말의 영향으로 계속해서 무겁고 지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에.


‘오늘은 조금 괜찮을지도 몰라.’


이런 긍정적인 말은 우리를 다르게 움직이게 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말은 단순히 우리의 현재를 기록하는 도구가 아니다. 말은 우리의 미래를 향한 방향이 된다. 생각이 흔들리고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자주 쓰는 말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삶의 흐름이 어느 순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나의 말, 나의 하루


우리의 삶은 우리가 사용하는 말로 가득 채워진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말로 하루를 열고 어떤 말로 하루를 닫는가에 따라 그 하루는 전혀 다른 색깔을 입게 된다.


“잘하고 있어.”


“지금도 충분해.”


이런 긍정적이고 지지하는 말이 반복되면, 우리의 삶은 점차 부드럽고 온화한 결을 가지게 된다. 말의 결은 곧 그 사람의 성품과 태도를 나타내는 '사람의 결'이 되며, 그 결은 우리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깊이 각인된다.


나는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중얼거린 적이 있다.


“그 정도면 괜찮은 거야.”


그 단순한 말 한마디가 나의 표정을 변화시켰고, 그 변화된 표정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방식에 미묘하지만 따뜻한 온기를 더해주었다. 삶은 우리가 남긴 말의 무늬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떤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가? 그 말이 바로 지금의 당신을 만들고 있다.


오늘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가?


말의 결이 남기는 삶의 흔적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말을 주고받는다. 짧은 인사부터 스쳐 지나가는 말버릇, 속으로 되뇌는 혼잣말까지. 말은 생각보다 훨씬 자주, 훨씬 깊이 삶의 방향에 관여한다. 마치 실처럼 가늘게 이어져 있지만, 그 실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감정을 따라 흐르고, 기억의 결을 따라 얽히며, 하루하루를 짜여 가게 한다.


말에는 온도가 있다.
차가운 말은 관계의 문을 닫고, 따뜻한 말은 마음을 천천히 열게 한다.
말에는 무늬가 있다.
어떤 말은 들은 순간 잊히고, 어떤 말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새겨진다.
말에는 속살이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견디고 있는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래서 말을 쓴다는 건, 곧 자기를 대하는 태도이자 세상을 마주하는 방식이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도 모르게 꺼내는 문장, 버릇처럼 내뱉는 말들.
그것이 결국 나를 말해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정짓는다.


이제부터 한 걸음 물러서 이렇게 물어보면 어떨까.

나는 요즘, 어떤 말로 나를 만들고 있는가.
그 말들은 나를 안으로 끌어안고 있는가, 아니면 조용히 밀어내고 있는가.
그 말이 내 안에서 어떤 온도로, 어떤 결로 남고 있는가.


말을 고른다는 건, 삶의 방향을 다시 잡는 일이다.
지금, 당신의 삶은 어떤 말로 물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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