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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눈, 듣는 마음》

21편 - 감정과 상황을 분리하는 연습에 대하여

by 정성균

감정은 내 안에서 만들어진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무너져 내리는 날이 있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속이 왠지 모르게 짓눌리고,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만, 마음은 멀어져 있다. 겉으로는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내 안의 감정 중심이 흔들리고 있음을 스스로 가장 먼저 알아챈다.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누구 때문에 화가 났다.” “그 일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이렇게 감정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문장들 말이다. 하지만 감정은 바깥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어떤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똑같은 말을 들었을 때, 한 사람은 불편해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말은 같아도 마음의 반응이 다른 것이다. 이 차이는 감정이 외부 사건의 산물이 아니라, 각자의 내부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말에 흔들렸다면, 그 말의 내용보다 그것을 받아들인 내 마음의 구조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말한 사람의 의도보다, 들은 사람이 어떻게 해석했는지가 감정의 결을 결정한다. 이 과정을 인식하면 감정의 시작과 끝이 내 쪽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 내게 가장 오래 남았던 말은 무엇이었는가.
그 말을 해석한 방식은 무엇이었는가.


에픽테토스는 “사건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생각이 우리를 괴롭힌다”라고 말했다. 사건은 단지 일어난 사실일 뿐이다. 그에 대한 해석이 마음을 움직이고, 그 해석의 방향은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감정은 상황과 연결되어 생겨나지만, 그 자체로는 별개의 흐름이다. 상황은 설명할 수 있어도, 감정은 설명을 넘어선다. 마음의 반응은 내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누가 대신 판단하거나 책임질 수 없다.


우리는 생각이 머무는 자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문장에 머물렀는지, 어떤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보았는지 확인하면 감정의 뿌리가 드러난다. 그 뿌리를 외면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마음을 돌보는 첫걸음이다.


오늘 나를 가장 오래 붙든 생각은 무엇이었는가.
그 생각은 어떤 감정을 이끌어냈는가.


감정은 흘러간다. 그러나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태도는 내 안에서 자란다. 그 자리가 단단하면, 감정은 흔들림이 아니라 움직임이 된다.


상황은 통제할 수 없어도, 감정은 조절할 수 있다


매일의 생활은 예기치 못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밝은 아침 빛, 갑작스러운 교통 정체, 무심한 말투. 일상의 수많은 요소는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다. 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같은 일이라도 누군가는 "오늘은 걸을 기회가 생겼네"라고 넘기고, 또 누군가는 불행을 탓하며 가라앉는다. 반응의 차이는 환경보다 마음의 위치에서 생긴다. 감정은 억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하되 끌려가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 마음이 과열되었는지, 판단이 앞섰는지 스스로에게 되묻는 멈춤이 필요하다.


오늘 나는 어떤 장면에서 감정이 앞섰는가.
어떤 순간에는 거리를 둘 수 있었는가.


장자는 "마음은 물과 같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담되 넘치지 않고, 흐르되 탁하지 않게.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이다. 감정을 분리하지 않으면 상황에 끌려간다. 감정은 감정대로 바라보고, 상황은 그 자체로 직면할 수 있어야 삶은 조용히 중심을 찾는다.


“너 때문이야”라는 말이 관계를 망친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이 흔들릴 때, 많은 이들이 ‘너’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넌 항상 그렇게 말해", "너는 왜 늘 그 모양이야" 같은 말들은 상대를 향한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이 방식은 갈등을 키우고, 서로를 오해 속에 가둔다.


반면, ‘나’를 주어로 한 문장은 전혀 다른 방향을 만든다. "그 말이 나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어", "나는 그런 상황이 당황스러웠어"처럼 표현하면, 자신의 감정을 전하면서도 상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나 전달법'이다.


말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면서도, 동시에 관계를 유지하는 다리가 된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다리는 단단해질 수도, 금이 갈 수도 있다. 감정을 말할 때, 그 감정이 상대의 탓이 아니라 나의 해석이라는 점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 말은 단지 표현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다. 감정과 상황을 분리할수록, 관계는 단단한 자리에 놓이게 된다.


오늘 나는 누구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했는가.

그때 ‘너’로 말했는가, ‘나’로 말했는가.


스트레스는 내면을 관찰할 기회다


긴장과 압박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 예상치 못한 요구, 날카로운 말 한마디. 이런 순간들은 감정의 온도를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이때 감정만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갇혀버리기 쉽다.


감정이 흔들릴 때 필요한 건 한 걸음 물러나 그 감정을 바라보는 일이다. "지금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가?"를 묻는 순간, 감정은 내가 다시 다룰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온다. 몸에 힘이 들어갔는지, 호흡이 짧아졌는지를 살펴보면 감정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돌보라는 신호일 수 있다. 억지로 이겨내기보다는 기록하고, 바라보고, 그대로 느끼는 것. 그 과정을 통해 감정은 조금씩 거리를 만든다.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의 불행은 방 안에 조용히 머물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스트레스를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은 감정에 끌려가지 않고, 자기 마음의 반응을 이해하게 된다. 감정은 느끼되 휘둘리지 않는 감각 속에서, 상황은 보다 단순하고 명료해진다.


요즘 내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스트레스 장면은 무엇인가.
그때 나는 어떤 몸의 반응으로 신호를 느끼는가.


감정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작고 확실한 연습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반응하던 내가, 요즘은 한 템포 느리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떤 말이 마음을 건드릴 때, 바로 반응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지금 이 감정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멈추고, 표현하고 싶을 때는 ‘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떠올린다. "그 말이 마음에 무겁게 남았어요", "조금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같은 표현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감정은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고, 밖으로 터뜨린다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어떻게 다룰지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감정은 나의 것이며, 그 감정이 일어난 장면은 바깥의 것이다. 감정과 상황을 구별해 바라보는 힘이 있을 때, 내 마음은 외부 조건에 휘청거리지 않는다.


수전 손택은 말했다. "자기감정을 직접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자유에 가까워진다." 감정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상황은 그대로 흘려보내는 마음. 그것이 결국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오늘 하루 내가 했던 말 중, 감정을 담아 표현한 문장은 있었는가.
그 문장은 나를 더 자유롭게 했는가.


이제 필요한 것은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은 어디서 출발했고, 어떻게 흘렀는가”를 가만히 돌아보는 일이다. 글을 덮은 이후, 내 안의 흐름에 조용히 묻는 질문 하나가 남는다면, 이 글은 이미 당신의 삶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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