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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눈, 듣는 마음》

29편 -시간이 가르쳐준 에로티시즘

by 정성균

시간이 길들인 감각


중년 이후에 이르러서야 온몸에 스며드는 기운이 있다. 젊은 날, 우리는 눈앞의 강렬한 끌림에 모든 것을 던졌고, 기다림이란 말은 지루하고 버거운 형벌처럼 느껴졌다. 하루라도 더 빨리 손에 넣고 싶은 마음에, 모든 결정을 서둘렀다. 그러나 세월의 물줄기가 속도를 늦추고 하루의 흐름이 잔잔해지면서, 욕망은 서둘러 태워야 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은근한 불로 장작을 데우듯, 오래 머물며 천천히 익혀가는 기쁨을 안다. 그 체험, 바로 시간이 정교하게 길러낸 에로티시즘이다. 폭발적인 힘보다 부드럽게 번져가는 따스함에 가깝다.


창밖에 비가 내리면,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내려가는 속도를 따라가며 오래 바라본다. 그 느림 속에서, 젊은 시절에는 미처 느끼지 못한 미묘한 전율이 깃든다.


불꽃과 온기의 차이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있다. 젊었을 적의 열망은 언제나 날카롭게 빛났다. 짧은 순간의 강한 당김에 모든 것을 내주었고, 타오르는 속도를 사랑의 본질로 여겼다. 기세는 높이 솟았으나 곧 꺼졌고, 남겨진 것은 재를 바라보며 견뎌야 하는 허전함과 쓸쓸함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빈자리가 내 안의 온도를 서서히 낮추고 있었다는 것을.


텅 빈 공간에 홀로 선 듯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우리는 눈부신 불길에만 사로잡혀 오래 따뜻함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오래가는 열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표면은 잔잔하고 부드럽지만, 속에는 은밀히 퍼지는 힘이 있다. 거센 화염은 자신을 다 태워야 존재를 드러냈지만, 느릿한 불은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해진다. 그것이 세월이 건넨 첫 번째 배움이었다.


어느 겨울밤, 벽난로에 장작을 넣으며 나는 이 진실을 다시 떠올렸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눈길을 끌지만, 방 안을 오래 덥히는 건 보이지 않는 숯불이었다.


서두르지 않는 물결


나이의 경계에 서면 삶을 감싸는 공기가 달라진다. 더 이상 마음이 앞서지 않는다. 사람을 마주하는 일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조심스러운 움직임도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온다.


그 속에서만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이 있다. 젊었을 때 흘려보냈던 작은 파동이 이제는 더 크게 다가온다. 그것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격정이 아니라, 수면에 번지는 파문처럼 서서히 퍼져나가 감각을 깨운다. 한순간의 열정보다 오래 머무는 은근한 기운이 더 깊은 만족을 준다. 관계의 시작과 끝이 불꽃처럼 짧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온기가 스며드는 긴 호흡이 된다.


마주 앉아 차를 마실 때, 대화가 끊기더라도 불편하지 않은 시간이 있다. 그런 순간에 느껴지는 편안함이야말로, 서두르지 않는 물결 속에서만 피어난다.


일상에 스미는 기운


에로티시즘은 육체의 차원을 넘어선다. 감각이 닿는 모든 순간에 깃든다. 한 잔의 와인을 천천히 굴리며 색과 향을 음미하는 찰나, 오래된 책장을 넘기다 손끝이 멈추는 순간, 장대비가 내리는 오후 창가에서 스치는 차가운 공기까지, 이 모든 것이 촉수를 건드린다.


나를 붙잡는 건 강렬한 자극이 아니라 사소하고 은밀한 틈새에서 피어나는 힘이다. 소리 없이 다가와 마음의 층을 벗겨내는 그 고요함 속에서 감각은 더 깊이 뿌리내린다. 세월이 더한 에로티시즘은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의미로 채운다.


어느 날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라본다. 그 발걸음 속에도 각자의 온기와 이야기가 묻어 있다.


고요 속의 대화


이 시기의 사랑은 젊을 때와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순간이 많아진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야만 피어나는 감정이 있다. 시선은 길고 깊어지며, 스치듯 닿는 손끝은 더욱 귀하다. 모든 것을 말로 담으려 애쓰지 않는다. 함께 있는 고요조차 온전한 대화가 된다. 그 속에서 서로의 호흡과 심장 박동이 들린다.


상대의 상처와 불안까지 읽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젊을 때의 열정만으로는 결코 얻지 못했던 힘이다. 그 힘은, 말 대신 눈빛과 숨소리로 이어진다.


시간이 허락한 사치


이후의 에로티시즘은 세월이 건넨 특권이다. 누구나 맞이할 수 있지만 아무나 누릴 수는 없다. 이를 즐기려면 속도를 늦추고, 삶에 여백을 남기며, 감각이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물질이 아닌 정신의 여유에서 비롯되는 향유다. 시간을 쥐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만이 이 선물을 받는다. 소유라기보다 허락에 가깝다.


세월이 나를 시험하고, 내가 그 흐름을 통과했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귀한 선물이다. 그 여정은 외롭고 힘들지만, 끝에 얻는 감각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을 띤다. 때로는 그 기다림이 길어져도,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 자신과의 화해


이 감각은 나를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과도 잇는다. 젊은 시절의 나는 내 안의 결핍과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것을 숨기거나 외면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르쳐준 에로티시즘은 시선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불완전함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이 과정이야말로 본질에 가깝다. 감각의 깊이는 타인을 향할 때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품을 때 가장 짙어진다. 내면의 그림자까지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세계가 열린다.
거울 앞에 서서 예전보다 늘어난 주름을 바라본다. 예전 같으면 피하고 싶었을 그 주름이, 이제는 나와 함께 걸어온 시간의 증거로 느껴진다.


세월이 연출한 장면들


가끔은 지금의 나를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속 인물처럼 느낀다. 이미 많은 이야기를 지나왔고, 절정은 끝났으며, 이제는 결말을 향해 걷고 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여전히 작은 떨림을 만난다.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이 천천히 방 안을 채우는 순간, 낯선 이의 눈빛이 오래 남는 날, 한 줄의 문장이 숨을 멎게 만드는 시간.
이 모든 것이, 세월이라는 연출가가 빚어낸 장면이다. 이제 나는 그 모든 미묘한 떨림을 놓치지 않는다. 그것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속을 데우는 온기를 남긴다.


오래 타오르는 불의 비밀


결국 에로티시즘은 몸이 아니라 시간이 가르쳐준다. 서두르지 않는 법, 감각을 천천히 익히는 법, 그리고 느린 흐름 속에서 오히려 더 깊게 달아오를 수 있다는 것을. 나이를 더한 지금의 나는 그 기운을 귀하게 품는다. 지금 이 순간도, 내 안의 온기는 서서히 차오르고 있다.


그 따스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는 안다. 진짜 뜨거움은 짧게 번쩍이는 불꽃이 아니라, 묵묵히 오래 타오르는 불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 불은, 나를 천천히 덥히며 세월의 끝까지 동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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