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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눈, 듣는 마음》

28편 - 글로 나를 브랜딩 하는 시간들

by 정성균

언어가 마음의 길을 낼 때


마음은 종종 말을 앞서간다.
이유를 풀어놓기도 전에 이미 반응하고, 이해하기 전부터 그 자리에 머문다. 불현듯 스친 한 문장이 발걸음을 붙잡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글자 이상의 의미를 담은 채, 내 안의 어떤 지점과 은밀하게 맞닿는다. 그 문장은 오래 바라본 이처럼 깊은 곳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알아본다.


문장은 쓴 사람의 내면이 흘러나온 모양을 닮는다. 호흡의 길이, 어휘의 온도, 감정이 놓인 자리, 침묵이 흐르는 간격까지가 한 사람의 세계를 드러낸다. 글은 의도와 무관하게 마음의 방향을 담는다. 감추려 했던 심지어 마음조차, 문장 어딘가에 고유한 자취를 남긴다.


그 흔적은 향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읽는 이의 의식 속에서 서서히 번진다. 처음에는 가벼운 바람결 같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피어오르며 마음 한가운데를 건드린다. 그 미묘한 파동은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을 조용히 잇는다. 글은 한 사람의 패턴을 타인에게 전하는 가장 은밀하고 깊은 방식이 된다.


살아낸 언어와 그 흔적


어느 날 밤, 낯선 이가 남긴 짧은 댓글을 읽고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당신의 글을 읽고, 오랫동안 외면했던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그 문장은 나를 향한 것이었지만, 같은 결을 지닌 누군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글쓰기는 생각을 전달하거나 감정을 비워내는 일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나를 보이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 사람은 이런 마음의 색을 가진 이구나’ 하고 기억한다.


예전에는 몰랐다. 왜 어떤 글은 오래 남고, 다른 글은 금세 사라지는지. 세련된 표현과 유려한 문장이 가득해도, 마음을 오래 붙잡는 글은 오히려 조용하고 담백한 문장이었다. 그 차이는 소재나 기술이 아니라 언어가 지나온 길에 있었다. 시선이 머문 곳, 감각의 깊이, 그리고 그것이 흘러간 자취가 남긴 무늬.


글쓰기는 삶의 방식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상표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작가에게 그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이를 꾸준히 보여주는 언어적 태도다. 여기에 지속성이 더해질 때, 글은 하나의 인상이 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떤 글을 즐겨 쓰는가. 어떤 표현이 반복되는가. 어떤 상황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떤 정서 앞에서는 말을 삼키는가. 이런 모든 요소가 곧 나라는 사람의 무늬다. 이는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쌓인다.


글쓰기는 삶의 시선과 닿아 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이 모든 것이 글 속에 스며든다. 비어 있는 말은 독자가 금세 알아차린다. 꾸며낸 언어는 소리만 남기고 사라진다. 살아 있는 문장은 쓴 이의 숨을 품는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 삶의 무게를 견디며 얻은 깨달음,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내면의 떨림이다.


나를 향한 재건축


글을 쓰는 일은 타인을 향하기 전에 나를 세우는 일이다.
내가 어떤 속도로 살아가고, 어떤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지, 매일 조금씩 써 내려가며 조각을 이어 붙인다.

나는 기록을 좋아한다. 짧은 글이라도 그날의 마음을 남긴다. 도서관 창가에 앉아 커피 향을 맡으며, 혹은 한밤중 불 꺼진 방에서 휴대폰 메모장을 열며. 밤늦은 창가, 스탠드 불빛 아래 펼쳐진 노트에 손글씨를 적는 순간, 나는 세상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나에게 가까워진다.


시간이 지나 쌓인 문장을 다시 읽으면, 그 시기의 내가 보인다. 감정의 물결, 생각의 폭, 표현의 흔들림. 그 안에서 삶의 방향을 조정한다. 자기표현은 판매를 위한 말이 아니라 살아낸 말이다. 오래 쌓인 태도와 언어는 천천히 이미지로 굳어진다. 이것이 글의 힘이다.


나를 닮은 문장


타인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언어로 문장을 세우는 사람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 자리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말투, 속도, 문장의 구조가 읽는 이의 마음속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한 문장을 쓴다. 긴 글을 쓰지 못하는 날에도 내 마음의 향에 맞는 한 줄을 남긴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반복하는지 살핀다. 어떤 단어에 끌리고, 어떤 문장은 쉽게 읽히지 않는지. 나는 내 글에 ‘고요함’, ‘틈’, ‘향’, ‘기억’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안에는 내가 놓지 않는 것, 여전히 바라는 것이 드러난다.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시선을 좇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다. 조용할 때도, 단단할 때도, 흐릿한 마음을 더듬을 때도, 그 순간들을 담은 문장이 모이면 ‘그 사람의 글’이 된다.

나는 지금 어떤 문장을 나로 만들고 있는가.


그 문장은 내 삶을 닮았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 과정이 나를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길이다.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삶의 의미를 새기고, 나의 가치를 확인한다. 그것은 내가 누구이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묻고 답하는 시간이다.


오늘의 문장


글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자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다.
꾸준히 쓰는 건 그냥 기록을 쌓는 게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을 꺼내어 세상에 펼치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만의 말이 생기고, 그 말을 통해 세상과 이어지고 내 자리가 만들어진다.


나를 닮은 문장은 나를 남긴다. 그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든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마음에 남은 한 줄을 적어본다. 그 한 줄이 내일의 나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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