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편 - 인생은 각자의 무대에서 빚어진 예술
중학교 1학년 초여름의 어느 날, 체육 시간이었다. 햇볕은 운동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고, 모래판은 이미 수많은 발자국으로 파여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은 거세게 뛰었고,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들었다. 체육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지자 나는 전력으로 달려 나갔다. 마지막 발을 내딛는 순간, 온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공중에 떠올랐다. 착지와 함께 모래가 흩날렸고, 내 발자국은 깊게 새겨졌다.
돌아섰을 때 선생님은 환한 얼굴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아주 잘했다. A플러스 플러스!”
그 말은 여전히 귓가에 남아 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가슴은 터질 듯 뛰었다. 그날 신었던 운동화를 며칠 동안 머리맡에 두고 잤다. 눈을 감으면 공중에 떠 있던 순간과 선생님의 미소가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사소한 체육 수업이었지만, 그날의 흙먼지와 웃음은 내 인생 무대에 처음 울려 퍼진 박수 소리였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대에 선다. 커튼이 열리는 신호도, 미리 준비된 대본도 없지만, 울음소리 하나로 막이 오르고 장면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시골 마당에서, 또 누군가는 도시의 소란 속에서 서막을 맞는다. 배경은 다르지만, 각자가 선 무대는 곧 자기 삶의 작품이 된다.
삶에는 정해진 극본이 없다. 아침에 건넨 인사, 저녁의 침묵, 길가에서 스쳐 간 시선까지 모두 장면이 된다. 때로는 누군가 무심히 던진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대사가 된다.
책상 위에 남은 커피 자국은 그날의 긴장을 드러내고,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은 여름의 뜨거움을 새겨 넣는다. 이마를 타고 흐른 땀방울조차 장면의 일부가 된다. 심지어 말 없는 눈빛조차 기록이 된다. “오늘은 대사가 없네.”라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 정적은 오히려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숨 고르기가 된다.
짧은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작은 행동이 인생의 방향을 돌려놓기도 한다. 당신은 오늘 어떤 대사를 남겼는가. 그 사소한 말 한 줄이 누군가의 무대를 지탱하는 기둥이 될지도 모른다.
무대는 언제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스포트라이트가 켜지는 순간, 반대편에는 길게 드리워진 어둠이 있다. 인생 또한 그렇다. 웃음이 있으면 눈물이 있고, 성취가 있으면 실패가 있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온 세상은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남녀는 배우일 뿐이다.” (William Shakespeare, As You Like It, Act II, Scene VII)
누구도 늘 주연만 맡지 않는다. 때로는 조연이 되고, 때로는 무대 구석을 채우는 엑스트라가 된다. 그러나 좌절과 실패는 작품의 결을 깊게 만들고, 눈물은 대사에 진짜 울림을 더한다.
그늘이 있기에 빛은 눈부시고, 넘어짐이 있기에 다시 일어섬은 강렬하다. 불완전한 장면들이 모여 삶이라는 대본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삶은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한다. 타인의 기대에 맞춰 배우로만 남을 것인지, 아니면 연출가로서 무대를 직접 꾸밀 것인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의 멀리뛰기 선수 밥 비먼(Bob Beamon)은 예선에서 두 번의 파울을 범하며 탈락 위기에 놓였다. 마지막 시도 앞에서 선배 랄프 보스턴(Ralph Boston)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Before his last try, Boston told him to relax and to take off a foot before he reached the board if he had to, but to be sure not to foul."
(보스턴은 비먼에게 “편안히 하라, 보드에 닿기 전에 한 발 일찍 뛰어도 좋으니 절대 파울 하지 말라”라고 말했다.)
— ESPN, SportsCentury: Bob Beamon (2000)
그 조언은 비먼을 구했다. 마지막 예선에서 무난한 기록으로 결선에 진출했고, 결선 첫 점프에서 세상을 뒤흔드는 장면이 탄생했다. 8.90미터. 기존 세계 기록을 55센티미터나 넘어선 도약이었다. 측정 장비가 감당하지 못해 줄자를 가져와야 했던 그 순간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다.
이 도약은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간이 한계를 넘어 무대를 예술로 바꾸는 장면이었다. 무대 위에서의 자기표현은 화려한 장치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몸을 던지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삶의 무대에는 언제나 예고 없는 전환이 찾아온다. 조명이 꺼지고, 낯선 음악이 흐르며 장면이 바뀐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 훗날 중요한 인연이 되기도 하고, 작은 선택이 인생의 큰 변화를 이끌기도 한다.
밥 비먼의 점프는 그런 전환의 상징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 역사를 바꿨다. 그의 도약은 23년 동안 세계 기록으로 남았고, 지금도 ‘세기의 점프’라 불린다. (현재 세계 기록은 1991년 마이크 포웰이 세운 8.95미터다.)
예기치 못한 전환은 두려움을 안기지만 동시에 새로운 무대를 연다. 지금 당신 앞에도 전환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한 발의 용기, 그것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힘이다.
무대 위 배우는 언제나 고독하다. 모든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결국 홀로 서야 한다. 그러나 무대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조명과 음악, 무대 뒤 스태프, 동료 배우와 관객이 있어야 작품이 된다.
삶도 다르지 않다. 스쳐간 인연이 장면의 공기를 바꾸고, 오래 곁에 머무는 사람들은 서사의 뼈대를 세운다. 밥 비먼의 도약도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선배의 조언과 동료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신의 무대 뒤에는 누가 서 있는가. 불이 꺼졌을 때도, 막이 열릴 때도,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가 무대를 더욱 빛나게 한다.
모든 무대는 언젠가 막을 내린다. 그러나 종막은 끝이 아니라 다음 막을 여는 신호다. 한 장면이 닫히면 새로운 장면이 기다린다.
삶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서툰 대사, 흔들린 몸짓, 예기치 못한 울음조차 작품의 일부다. 완벽하지 않기에 진실하고, 미완성이기에 살아 있다.
밥 비먼의 기록은 언젠가 깨졌다. 그러나 그의 도약은 여전히 ‘세기의 점프’라 불린다. 기록은 바뀔 수 있어도, 그날의 장면은 예술로 남았다. 우리의 삶 또한 그렇다. 불완전함이야말로 가장 깊은 울림이다.
오늘도 당신은 무대 위에 서 있다. 누군가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관객의 반응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무대 위에 서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당신의 하루는 이미 예술이다. 대사가 서툴러도 괜찮고, 장면이 어눌해도 문제없다. 무대 위에 선 존재 자체가 빛이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체육 선생님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A플러스 플러스”라던 순간이 내게 무대였던 것처럼, 밥 비먼이 8.90미터를 날아올랐던 도약이 역사적 무대였던 것처럼, 지금의 당신 또한 자기 무대를 살아가고 있다.
오늘 남긴 말, 몸짓, 그리고 고요조차도 작품이다. 그것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장대한 무대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