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날이었다. 창밖은 온종일 회색빛이었고, 쏟아지는 비는 지상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한 뼘씩 젖어드는 듯한 불쾌함 속에서 눅눅한 공기를 탓하고 있었다. 습기는 가구 속으로 스며들고, 빨래는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약속은 비에 묻히고, 작은 오해가 하루의 무늬를 흐렸다. 그 모든 것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베란다 방충망 구석에 맺힌 거미줄을 보았다. 투명한 실마다 빗방울이 보석처럼 맺혀, 제 무게를 위태롭게 견디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는 그 잿빛 풍경 속에서, 거미줄은 허공에 떠 자신의 우주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으로 가득 찬 하루에 난데없이 찾아온 하나의 계시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연약한 생명은 비를 원망하고 있을까. 그는 다만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집을 짓고, 빗방울을 매달고, 다음의 맑은 날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순간, 하나의 질문이 온몸을 관통했다. 어째서 눈은 세상을 원망하는 데 그토록 익숙해져 있었을까. 왜 내게 주어진 것들의 기적 대신, 주어지지 않은 것들의 결핍만을 헤아리며 살아가고 있었을까.
이 글은 그 작은 거미줄에서 시작된, 나의 가장 긴 응답이다.
불평은 하루라는 풍경화 위에 남는 가느다란 흠집이다. 그 생채기는 너무나 익숙하여 때로는 의식조차 어렵지만, 영혼의 표면에는 선명한 흔적을 새긴다. 원망의 언어는 기만적인 위안을 건넨다. 세상을 향해 삿대질하는 동안 상처받은 왕국의 고독한 주인이 되어, 자신의 옳음을 확인하며 쓰디쓴 꿀을 맛본다. 그 비뚤어진 정당성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현실을 개선할 힘을 기르기보다 자기 연민이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갇히는 안락함을 택하게 한다. 그 헛된 위안의 장막이 걷힌 자리에는, 길 잃은 의식의 영토가 더욱 황폐하고 무력하게 스러져 있다.
부정의 소리에 더 예민한 귀는 물려받은 오래된 유산이다. 먼 옛날, 어둠 속 생존을 위협하던 미지의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던 태고의 감각. 그것이 이제는 타인의 무심한 표정이나 어그러진 계획의 작은 어긋남에 더 날카롭게 반응하는 신경과민으로 남았다.
이 오래된 생존 회로는 정신을 끊임없이 결핍의 지점으로 내몬다. 소중한 것들은 당연함의 장막 뒤로 모습을 감추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의 단면 하나가 시야 전부를 점령해 버린다. 그리하여 스스로 조성한 공허의 풍경 속을 헤맨다. 타인의 잘 다듬어진 삶을 전시하는 창 앞에서 나의 오늘은 초라한 흑백사진이 되고, 그 비교의 끝에서 오는 소외감에 시달린다.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곁에 있는 이의 가치를 잊는다.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반 시설이 무너지고 나서야 그 중요성을 깨닫는 비극을 되풀이한다. 받아들이는 마음이 머물던 자리를 비교와 권태, 무감각이라는 차가운 안개가 잠식한다. 영혼이 느끼는 깊은 갈증의 이름조차 잊은 채, 목적 없는 방랑은 계속된다.
그 소란을 잠재우고 정신의 방향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을 찾아야 한다. 세상의 소음에서 우리를 지켜내고 현존의 근원적인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문법. 그 시작은 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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