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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흔들렸다

by 정성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던 하루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던 하루, 정말이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는 무난하게 이어졌고, 서로의 표정에서도 불편함을 짐작할 만한 기색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명하기 어려운 기운 하나가 조용히 마음을 건드렸다. 우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이야기를 나눴다. 말은 막힘없이 오갔고, 목소리 역시 늘 하던 높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웃어야 할 순간에는 웃었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 때는 자연스럽게 반응했다. 작별 인사도 어색함 없이 마무리되었다. 누군가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면, 무난한 만남이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장면만 놓고 보면 특별히 걸릴 만한 대목은 없었다.


그 무난함이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았다. 좋았다고 말하기에도, 아쉬웠다고 표현하기에도 애매한 상태. 그래서 더 쉽게 지나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늦게 마음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별일 없었다는 말 뒤에 남는 감각은 대개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 나는 그날의 장면을 떠올리며, 왜 이렇게까지 마음이 오래 머무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변화는 혼자 남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배웅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말로 풀어내기 어려운 기운이 따라왔다. 다툰 기억은 없었지만 가슴이 답답했고, 불편한 말을 주고받은 적도 없었는데 걸음이 느려졌다. 아무 문제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편치 않게 했다. 그 시간 어딘가에서 빠져버린 감각이 있었던 건 아닐까. 관계를 이어주던 미묘한 흐름 하나를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감각은 늘 뒤늦게 찾아온다. 대화가 끝나고, 표정이 정리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에야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 순간에는 이미 상대가 곁에 없고, 다시 묻기에는 늦었다는 느낌만 남는다. 그래서 마음은 자꾸 같은 장면을 되짚는다. 놓친 것이 무엇인지, 놓쳤다면 언제였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생각을 붙잡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화면에는 이미 여러 번 읽은 문장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아래는 비어 있었다. 새로 도착한 알림은 없었다. 기기를 내려두었다가 다시 손에 쥐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무 변화도 없다는 사실이 유난히 신경을 자극했다. 따져 묻기에는 이유가 부족했고, 그냥 넘기기에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없다는 생각만 또렷해졌다.


기다림이라고 부르기에는 짧았고, 무시하기에는 길었다.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 내가 기다리고 있던 것이 과연 답장이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시간은 상대의 반응보다,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많은 생각을 불러왔다.


이 감정은 갑작스럽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분노처럼 치밀어 오르지도 않았고, 깊은 슬픔에 잠기는 느낌도 아니었다. 대신 흐린 기운으로 주변에 머물며 생각을 붙잡았다. 이미 끝난 대화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 꺼내지 못한 말들이 마음속을 맴돌았다.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질문이 늘어날수록 답은 더 흐려졌다. 평범했던 하루는 그렇게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순간부터 시작된 기운


우리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순간은 대개 눈에 띄지 않는다.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없고, 감정이 요동친 흔적도 없는데 마음 한쪽이 서서히 어긋난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한 채, 혼자만 그 자리에 남겨진 듯한 감각이 천천히 스며든다. 그 상태에서는 이유를 묻기도 어렵고, 스스로를 쉽게 달래기도 힘들다. 마음은 애매한 지점에서 멈춘 채 방향을 잡지 못한다.


이런 상태는 대개 ‘별일 아닌 것’으로 분류된다. 바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그렇게 이유를 붙이고 나면 잠시 마음이 가벼워진다. 하지만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문득 다시 고개를 든다.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마음은 늘 그렇다.


그날 밤, 나는 화면이 꺼진 기기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비어 있는 화면은 답장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우리가 나눈 시간 어딘가에 생긴 작은 틈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흔들림은 요즘 들어 더 자주 찾아왔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사람의 소식을 보고, 짧은 말을 주고받으며 지낸다. 연락은 이어지지만 마음이 닿았다는 감각은 늘 늦게 찾아온다.


관계는 점점 늘어났지만, 일상 속에서 스치고 이어지는 연결들 안에서 생기는 불편함을 풀어낼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마음에 걸리는 지점을 꺼내는 순간 괜히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일까 봐 입을 다문다. 괜찮다고 넘기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그래서 이런 감각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진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없으니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정리한다. 그러나 외면한다고 해서 마음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말로 꺼내지 못한 생각은 안쪽에 쌓이고, 그 무게는 어느 순간 버겁게 느껴진다.


마음속에 있던 말하지 않은 기준


그 무난함이 오래 마음에 남은 이유를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은 자연스럽게 상대에게로 향했다. 그날의 말투가 평소와 달랐는지, 대답의 속도가 유난히 늦지는 않았는지, 대화가 끝나는 방식에 빠진 것은 없었는지 같은 장면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 순간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괜찮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런 되짚음은 잠시 숨을 돌리게 했다. 이 불편함이 전부 내 몫은 아니라는 생각이 마음을 가볍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다시 무거워졌고, 설명은 충분했지만 납득은 따라오지 않았다.


그래서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상대가 무엇을 했는지를 계속 붙잡기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난 반응을 살폈다. 말이 끝났을 때 남아 있던 기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따라붙던 감각, 혼자 남았을 때 더 또렷해진 생각들.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있었다. 그제야 드러난 것은 내가 스스로에게 기대하고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은근히 바라고 있던 반응, 자연스럽게 이어지길 원했던 흐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랐던 마음.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기준이 조용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 기준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이전에 겪었던 관계들, 비슷한 상황에서의 기억들, 예전의 실망과 안도들이 겹치며 조금씩 모양을 갖추었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생각은 어느 순간 당연한 전제가 되었다. 그래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될 거라고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어긋났을 때 마음은 먼저 반응했다. 말로 꺼내지 않은 기준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이 기준은 평소에는 의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이 그 선을 벗어나는 순간 분명한 흔들림을 남겼다. 그 불편함은 그날의 대화에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혼자서 오래 품어온 생각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 결과였다. 돌아보면 나는 늘 이해심 많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다. 속으로는 불편함이 차올라도 겉으로는 괜찮은 얼굴을 유지했다. 그 태도는 갈등을 피하려는 선택에 가까웠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에도 마음속에서는 이미 거리를 재고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은 이해라기보다 참아 넘기는 쪽에 가까웠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갔지만, 안에서는 감정이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조용히 넘긴다고 해서 마음이 스스로 정리되지는 않았다.


태도가 바뀌자 보이기 시작한 것들


그래서 태도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기준을 없애겠다고 다짐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기준이 움직이려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로 했다. 마음속에서 선이 그어질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춰 서서 그 감각을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 어떤 생각이 나를 흔드는지 묻는 일. 그 질문 하나로 마음에 작은 틈이 생겼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쉽게 지켜지지 않았다. 생각의 방식은 오랜 시간 쌓여온 것이었고, 그래서 금방 바뀌지 않았다. 다만 바라보는 태도는 조금 달라졌다. 어디까지 기대해도 되는지, 언제 한 걸음 물러서야 하는지를 천천히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장면이 다시 찾아왔다. 상대의 반응은 여전히 내가 떠올린 방향과 달랐다. 그날은 기기를 내려두고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다. 지금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밀려오는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는 쪽을 선택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은, 스스로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이 남아 있다는 표시라는 것을.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자, 상황은 그대로여도 마음의 반응은 달라졌다. 나는 지금도 관계 속에서 자주 멈춘다. 말보다 먼저 움직이는 감각이 무엇인지 살핀다. 여전히 흔들릴 때는 있지만, 그 이유를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흔들렸던 그 순간을 지나, 이제는 그 흔들림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조용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날,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그 이유를 천천히 알아차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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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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