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존중의 윤리에 대하여
어떤 대화가 끝났을 때, 나는 내놓으려던 말이 입안에서 부서졌음을 알았다.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목구멍 너머로 가라앉은, 형태를 잃은 말들이었다. 입가를 맴돌던 생각들은 싸늘하게 식어 무거운 앙금처럼 남았다. 찻잔 위로 아지랑이가 흩어지고, 누군가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먼 벽에 부딪혔다. 그 소란 속에서 내 의견은 가닿지 못한 채 허공으로 증발했다. 마음속은 폭풍이 오기 직전의 하늘과 같았다.
‘지금 이야기해야 해. 아니, 이 흐름을 깨뜨릴 거야. 내 생각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 가만히 있는 편이 안전해.’
수많은 목소리가 엉겨 붙어 결국 입을 닫게 만들었다. 찻잔 표면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다. 타인의 표정을 읽느라 고갈된 시선과 굳게 다문 입술. 그 표정은 수십 년간 타인의 세계에 셋방살이를 하며 제 집은 돌보지 않은 사람의 것이었다.
그때, 날카로운 질문 하나가 가슴을 찔렀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괜찮은 주인이었나.
스스로를 방치하는 감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살아남기 위해 몸에 익힌, 서글프고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모두가 주저 없이 노란색 크레용으로 해를 그릴 때, 홀로 청록색을 쥐고 싶었던 아이. “노란색이 더 환하고 예쁘지 않을까?” 선생님의 부드러운 권유는, 나만의 색깔보다 무리의 어울림과 칭찬을 택하게 한 첫 훈련이었다. 그 뒤로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청록색’을 내려놓았다. 사무실에서는 마찰을 피하려고 부당한 지시에도 “알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마음이 내키지 않는 약속에 시간을 내주었다. ‘괜찮다’는 표현은 나의 상태를 알리는 말이 아니었다.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고 관계의 물결을 잠재우려는 반사적인 움직임에 가까웠다. 모든 행동의 밑바닥에는 ‘거절하면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아주 오래된 두려움,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고 싶지 않은 깊은 불안이 웅크리고 있었다.
우리는 타인을 대하는 법은 사회적 기술로 배우지만, 자기 자신을 돌보는 법에는 이상할 만큼 서툴다. 불편함, 화, 서운함, 억울함 같은 감정들이 보내는 신호를 ‘이타적인 사람’ 또는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는 역할 뒤에 숨어 외면했다. 하지만 제때 터뜨리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성실한 기록자처럼 몸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무시했던 모든 마음의 이력을 기억하는 정직한 지도인 셈이다.
하고픈 말을 꾹 참는 버릇은 위산을 역류시켜 신경성 위염을 만들고, 다른 이의 기대를 모두 짊어지려는 과한 책임감은 어깨와 목에 딱딱한 통증을 남긴다. 무례한 말을 듣고도 웃어야 했던 날이면 턱관절이 어김없이 뻣뻣해지고, 풀리지 않은 걱정거리는 한밤중에도 정신을 깨워 잠 못 드는 밤을 안겨준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통, 잦은 피부 문제, 얕고 가쁘게 변하는 호흡은 모두 몸이 보내는 다급한 경고다. 중요한 회의를 마친 뒤 복도를 걸으며,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던 순간들. 괜찮다고 웃으며 돌아섰지만, 손끝은 여전히 얼음처럼 식어 있었다. 신체는 이렇게 정직하게, 내가 외면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인님, 이 이상은 위험합니다. 당신이 돌보지 않은 감정들이 내 안에서 소리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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