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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무료

기분을 말로 떠들지 않고 글로 남기기로 했다

by 정성균


성공의 언어에 지친 사람이 다시 자기 언어를 회수하는 기록


(여는 글) 소란을 닫고, 문장을 여는 시간


우리는 너무 오래 타인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로 착각하며 살았다. 세상이 정해준 속도가 정답인 줄 알고 숨 가쁘게 달렸지만, 그럴수록 정작 내 안의 ‘나’는 소리 없이 희미해져 갔다.


이 글은 그 무의미한 질주가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소란스러운 세상의 문을 닫고, 오직 나만이 존재하는 가장 고요한 내면의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록이다. 남을 설득하기 위한 화려한 수사(修辭)는 걷어내고, 스스로를 마주하기 위한 투박한 진심만을 남겼다. 화려한 성공의 지도 대신, 흔들리며 써 내려간 서툰 고백을 담았다.


성공의 언어에 지쳐버린 당신에게, 잃어버린 당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되찾는 작지만 단단한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정 성 균



1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의 저녁


 식당의 육중한 원목 문이 닫혔다. 두께가 십 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문이 시야를 가리자 바깥세상의 소음은 차단되었으나, 밀실은 이내 더 끈적하고 밀도 높은 소음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형님, 아우 하며 얽힌 여섯 사내가 원탁을 포위하듯 둘러앉아 있는 풍경. 순백의 식탁보 위로는 제철 생선회가 담긴 접시가 놓였고,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리는 술병은 쉴 새 없이 돌았다.


 쨍그랑.


 허공을 가르는 얇은 유리잔의 파열음. 타인들의 귀에는 경쾌한 건배 신호였겠으나, 내 고막에는 깨진 유리가 바닥을 구르는 비명처럼 날카롭게 박혔다. 물리적으로는 섞여 있었으되, 화학적으로는 철저히 분리된 상태.


 손에 들린 것은 알코올이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탄산수뿐. 투명한 기포가 톡톡 터지며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모두가 취해가는 시간, 홀로 맨정신을 유지한다는 것.


 맞은편에 앉은 사업가 지인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알코올이 뇌의 검열관을 잠재운 것이 분명했으리라. 그는 최근 바꾼 외제차의 배기음과 멤버십 클럽의 수질을 침 튀기며 늘어놓았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허공에 쏘아대는 독백의 난사였다.


 옆자리의 누군가는 질세라 자녀가 유학 간 도시의 물가를 걱정하는 척하며 은근히 부를 과시했다. 말들은 탁구공처럼 빨랐다. 의미는 증발하고 속도만 남은 언어들이 공중에서 부딪혀 산산이 조각나던 그때, 붉어진 얼굴의 지인이 고개를 돌렸다. 초점이 흐릿한 눈이 얼굴을 더듬었다.


 “그런데 정 선생은, 요즘 안색이 참 좋아 보이시네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순간, 좌중의 시선이 쏠렸다. 훈련된 배우처럼 반사적으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눈가는 적당히 휘어지게, 입술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별일은요. 다들 건강해 보이셔서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매끄러운 거짓말이자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안전한 방어막. 그들은 대답에 만족한 듯 다시 건배를 제의했다. 잔을 들어 입술만 축였다. 차가운 탄산수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지만, 가슴 안쪽의 뜨거운 덩어리는 좀체 식지 않았다.


 자리가 파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 비틀거리는 일행들은 대리기사를 찾느라 전화기를 붙들고 고성을 질러댔다.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차로 향했다. 손잡이를 당겨 운전석에 앉자, 쿵.


 강철 금고가 물리는 듯한 묵직한 흡착음과 함께 세상의 모든 소리가 차단되었다. 운전석이라는 이 좁은 공간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안식처. 시동 버튼을 눌러 엔진을 깨우니 부드러운 진동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제야 깊은 숨을 토해냈다.


 도시의 밤거리를 달렸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네온사인이 유성우처럼 뒤로 밀려나고, 붉은 후미등의 행렬을 따라가며 백미러를 훔쳐보았다. 언제나처럼 흐트러짐 없는 눈동자가 거울 속에서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엔진이 멈추자 거대한 정적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보닛 안에서 ‘팅, 팅’ 하고 금속이 식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목적도 없이 식어버리는 쇳덩어리의 비명.


 핸들에 이마를 기댄 채 한참 동안 그 건조한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내 체온이 식어가는 소리 같았다.


2부. 치열했던 삶의 박물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집은 고요했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습관처럼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 앞에 선다. 천장까지 닿은 거대한 나무 선반. 그곳은 한때 나의 전쟁터였고, 지금은 박물관이 된 공간이다.

 서재를 채운 것은 책이라기보다 무기에 가까웠다. 30대와 40대의 나는 이곳을 세상과 싸워 이기기 위한 전략 기지로 삼았으니.


 눈앞에 꽂힌 책들의 면면을 훑는다. 형광색 표지들은 눈이 시릴 정도로 자극적이다. 책등이 쩍 갈라질 정도로 험하게 다룬 흔적들. 페이지마다 붉은 펜으로 그어댄 밑줄은 종이를 찢을 듯 깊게 패어 있다. 그것은 독서의 흔적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난도질의 자국이었다.


 검은 바탕에 금박으로 새겨진 굵은 고딕체 제목들이 나를 내려다본다. 느낌표와 경고문으로 범벅된 문장들. ‘지금 당장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다’, ‘남들보다 1분 먼저 움직여라’.


 그 시절, 서점 매대에서 가장 강력해 보이는 용병(傭兵)을 고용하듯 카드를 긁어댔다. 쇼핑백에 담아 오는 순간만큼은 기이한 전능감이 차올랐다. 책 안에 담긴 성공의 비결이 계산을 마치는 순간 내 혈관으로 이식된 듯한 착각. 빳빳한 새 책을 꽂아 넣을 때의 묵직한 손맛은 일종의 마취제였다.


 책들이 빈틈없이 늘어선 모습은 든든한 성벽 같았다. 읽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펼치지 않아도 마음이 놓이는 나만의 방공호. 그러나 이제 와 다시 본다. 흐트러짐 없는 눈으로 마주한 책장은 더 이상 전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패한 폐허도 아니다.


 손을 뻗어 손때 묻은 자기계발서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끄트머리가 닳아 너덜너덜해진 페이지. 그 귀퉁이마다 깨알같이 적어놓은 메모들이 보인다. ‘반드시 이사 간다’, ‘부장이 틀렸음을 증명하자’.


 글씨에는 독기가 서려 있다. 과거의 나는 이 문장들에 기대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치열함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함을 어찌 부인하겠는가. 책을 덮으며 가만히 쓸어내린다. 이 책들은 죄가 없다. 다만, 전시실의 유물처럼 이제는 내게 필요치 않을 뿐.


 서재는 비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박물관이 된 이 공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음을. 성공을 위해 달리느라 잠시 미뤄두었던 ‘나 자신’을 만날 시간을.


3부. 문장(文章)과의 재회, 그리고 쓰는 사람의 뒷모습


 우연이었다. 아니, 어쩌면 무의식이 이끈 필연이었을지도 모를 일. 책장 가장 구석진 곳, 과거의 내가 ‘너무 한가한 이야기’라며 밀어두었던 구석 칸에서 낡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희미한 에세이집. 제목은 투박했고 표지는 촌스러웠다. 성공하는 법을 알려주지도, 힐링하라고 속삭이지도 않는 책.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그 책을 뽑아 들었다.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 한 문장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화려한 수사도 교훈도 없는 지극히 건조한 문장. 저자는 자신이 겪은 지질한 질투와 도망치고 싶었던 비겁한 순간들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아무런 포장 없이 자신의 밑바닥을 그대로 드러낸 활자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확인’이었다. 시공간을 달리하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지옥을 건너갔다는 증거. 작가는 “힘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내 상처가 유별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을 뿐. 책에서 정답을 찾으려 했으나, 책은 도리어 내게 질문을 던져왔다.


 그 질문에 답하고 싶었다.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된다고 했던가. 읽기가 타인의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라면, 쓰기는 내 안의 미로를 헤치고 밖으로 걸어 나오는 일이기에.


 충동적으로 서랍을 뒤져 굴러다니는 노트를 펼쳤다. 흰 종이는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다. 멋진 문장을 써야 한다는 허영심이 펜을 쥔 손을 굳게 만들었다. 누군가 이 글을 볼지도 모른다는 검열관이 머릿속에서 경고음을 울려댔다.


 그러나 써야 했다. 사회에서 억지로 삼킨 모멸감,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한 외로움이 명치끝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으므로.


 첫 문장은 엉망이었다.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았고, 감정은 정제되지 않은 채 날것으로 튀어나왔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느라 종이는 금세 너덜너덜해졌다. 까맣게 줄을 그어버린 문장들 사이로 내 치부가 드러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계속 썼다.


 사각, 사각.


 펜 끝이 종이의 표면을 긁는 소리만이 고요한 방을 채웠다. 머릿속에서는 감당할 수 없이 거대해 보이던 고통이, 막상 종이 위에 적어놓고 보니 고작 몇 줄의 문장에 불과했다.


 형체가 없는 생각은 부풀려지기 마련이나, 글이라는 그릇에 담으면 객관적인 사물이 된다. 내 아픔이, 내 슬픔이 종이 위에 박제되어 있었다. 비틀거리며 써 내려간 그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위태로운 나를 말없이 지탱하고 있었으니.


4부. 밀도(密度)가 달라진 하루


 읽고 쓰는 삶이 내게 극적인 성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다. 수입이 늘지도 않았고, 갑자기 세상이 나를 존경하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변화는 소리 없이, 분명하게 하루의 틈새로 스며들었다. 나는 이제 감정을 말로 뱉는 대신, 작은 행동으로 찍어둔다.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 예전 같으면 스마트폰으로 주식 창을 확인하며 한숨을 쉬었을 시간이다. 이제는 주머니 속 작은 수첩을 꺼낸다. 오늘 하루 내가 지키고 싶은 단어 하나를 적는다. ‘여유’, 혹은 ‘경청’. 그 단어 하나가 하루 종일 나를 붙잡아주는 닻이 된다.


 점심 식사 후, 남들은 커피를 들고 흡연실로 향할 때 나는 회사 앞 작은 공원을 걷는다. 벤치에 앉아 하늘의 색깔을 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본다. 그리고 스마트폰 메모장에 한 줄을 남긴다. ‘오후의 햇살이 투명하다.’ 그 짧은 기록은 오후의 피로를 버티게 하는 환기구가 된다. 시간은 더 이상 증발하지 않는다. 내 안에 고요한 층위로 차곡차곡 쌓여갈 뿐.


 퇴근 후, 서재에 앉아 하루를 복기한다. 타인의 성취나 소유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동창이 산 주식이 올랐다는 소식에도 담담할 수 있다. 내 시선은 밖이 아니라 안을 향해 있으므로.


 말수가 줄었다. 말로 내뱉으면 흩어지지만, 글로 쓰면 남는다는 것을 알기에 신중해진 탓이다. 분노가 치밀 때도 즉각 반응하기보다 한 템포 멈춘다. 그리고 그 감정을 글로 옮겨본다. 날 선 분노는 무뎌지고, 상황을 관조하는 눈이 생긴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어진 나를 발견하는 기쁨은 타인의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나의 속도대로, 나만의 리듬으로 걷는다.


에필로그: 밤의 책상


 거창한 결심 따위는 없다. 매일 책 한 권을 읽겠다거나,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겠다는 비장한 다짐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런 숙제는 이미 세상이 준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독서와 글쓰기가 또 하나의 짐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다만, 곁을 내어줄 뿐이다.


 침대 머리맡에, 출근 가방 속에, 책상 한구석에 책과 노트가 놓여 있다. 며칠 동안 거들떠보지 않아도 괜찮다. 먼지가 조금 쌓여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그 세계로 도망칠 수 있는 비상구가 있다는 믿음이다.


 밤이 깊었다. 거실의 형광등을 끄고 서재의 작은 스탠드 하나만 켜둔다. 노란 불빛이 둥근 원을 그리며 책상 위를 비춘다. 그 빛 아래, 읽다 만 책 한 권과 몽당연필 하나가 놓여 있다.


 나는 의자를 당겨 앉는다. 책을 펴지 않아도, 펜을 들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이 고요 속에 잠시 머무는 것.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주인이 되는 시간.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다.


 하지만 사각, 사각. 펜 끝이 종이에 닿는 소리가 결국 밤의 적막을 가른다. 그것으로 되었다. 오늘 하루도 타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는 작고 분명한 증거가 여기 있으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책상 위에도 작은 스탠드 하나가 켜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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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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