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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겨울에 자라지 않는다, 다만 깊어진다

- 수직의 방에서 다시 쓰다 -

by 정성균

벽면의 온도 조절기에는 숫자 23이 선명하다. 다용도실 쪽에서 보일러가 작동하는 나직한 구동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올 뿐, 바닥을 울리는 진동은 느껴지지 않는다. 도시가스의 연소는 정숙하다. 그저 배관을 순환하는 열기(熱氣)만이 이곳이 죽은 공간이 아님을 증명한다. 발바닥에 닿는 마루의 감촉은 미지근하지만, 이중창에 이마를 대는 즉시 서늘한 냉기가 피부를 파고든다.


 유리창 밖 십오 층 아래, 단지의 풍경은 거대한 조형물이다. 고급 아파트가 자랑하는 정원은 야생(野生)이 아니다. 그것은 철저한 자본의 계산으로 축조된 전시품이다. 나는 창가에 바짝 붙어 아래를 내려다본다. 계절의 길목에서 수목들은 저마다의 골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중앙을 점령한 홍송(紅松) 군락은 붉은 껍질을 갑옷처럼 둘렀다. 태백산맥 줄기의 깊은 골짜기, 그 거친 바람을 맞으며 자랐을 저 귀한 소나무들은, 제 몸을 지탱하기 위해 허리에 검은 지지대를 차고 있다. 휘어지고 비틀린 가지의 곡선은 우아하나, 그 뿌리는 좁은 콘크리트 화단에 갇혔다. 활엽수들이 잎을 떨군 자리, 홍송만이 홀로 짙푸른 바늘잎을 세우고 수직의 콘크리트 벽과 대적한다. 그것은 고고함이라기보다, 살아남은 자의 팽팽한 긴장에 가깝다.


 그 곁에 도열한 느티나무들은 수수빗자루를 뒤집어 꽂은 기하학적 뼈대를 과시한다. 치장을 끝낸 빗자루의 솔처럼, 수천 개의 잔가지가 예리하게 하늘을 찌른다. 여름의 풍성했던 그늘 대신, 건조한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선(線)들만이 허공을 채운다.


 화단의 경계를 긋는 회양목과 철쭉의 대비는 극명하다. 두꺼운 잎을 지닌 회양목은 한겨울에도 완벽한 사각형의 초록 띠를 유지한다. 반면 곁에 있는 철쭉은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잿빛 덤불로 웅크렸다. 그러나 푸르든 말랐든, 두 식물 모두 삐져나온 가지 하나 허락되지 않은 채 네모반듯하게 깎였다.


 보도블록 위엔 낙엽 한 장 뒹굴지 않는다. 새벽 청소부의 빗질이 계절의 잔해를 즉시 폐기한다. 완벽한 정돈, 이것이 도시가 혹한을 견디는 전술이다.


 식탁 위 커피잔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이 수직의 공간으로 거처를 옮긴 지 두 달째다. 평생 확장에만 골몰했던 삶의 부피를 대폭 축소했다. 방 세 개와 거실 하나. 혹자는 이를 경제적 후퇴라 불렀으나, 내게는 문장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퇴고(推敲)였다. 필요 없는 수식어를 삭제하듯 나는 공간을 잘라냈다.


 오후의 적막을 깨고 후배가 방문했다. 두터운 코트 차림의 그는 현관에 들어서며 차가워진 두 손을 강하게 비볐다.


 “빌딩 사이로 부는 바람이 칼날 같습니다. 밖은 냉동고나 다름없군요.”


 거실에 들어선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가구라고는 낡은 책상과 의자 하나뿐이었으나, 사면의 벽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책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벽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겹겹이 쌓인 서적들이 이 방의 유일한 마감재였다. 그것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내가 쌓아 올린 시간의 지층(地層)이었다.

 “이 많은 책을... 다 읽으신 겁니까? 가구는 없는데 책들의 무게가 압도적이네요.”


 후배는 책들의 벽에 갇힌 듯 주춤거렸다. 그는 소음과 화려한 장식 속에 있어야 안도하는 부류다. 그러나 이 방은 오직 활자의 무게로만 지탱되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커피를 건넸다.


 “가구는 껍데기지만 책은 뿌리니까. 잎은 다 버려도 뿌리까지 버릴 순 없지 않나.”


 “하지만 선배님, 요즘은 트렌드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소음 속에 섞여 있어야 세상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고 믿으니까요.”


 후배는 뻣뻣하게 굳은 뒷목을 주무르며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불안하지 않으세요? 현장에서 멀어지면 감각도 무뎌진다고들 하니까요.”


 피로가 누적된 그의 눈가는 파르르 떨렸다. 그 질문은 나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변화의 속도를 견디지 못하는 자신에게 던지는 독백처럼 들렸다. 나는 대답 대신 베란다 밖을 가리켰다.


 “저 수목들을 보게. 겨울을 어떻게 견디는지 아는가?”


 후배가 창가로 다가왔다. 앙상한 가지들이 바람에 몸을 떨고 있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나무는 줄기의 수분을 뿌리로 내린다네. 몸통에 물이 차 있으면 얼어 터지기 때문이지. 화려했던 잎을 다 버리고, 최소한의 생명만 뿌리 끝에 모아두고 버티는 거야. 성장을 멈춘 듯 보이지만, 땅속에서는 가장 치열하게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지.”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반백 년의 능선을 훌쩍 넘어선 삶은 인생의 겨울 한복판이네. 잎을 무성하게 피워 남에게 과시하던 시절은 끝났어. 지금은 내면의 수분을 아래로 내려야 할 때야. 덩치를 키우는 게 아니라, 밀도를 높여야 하는 시기지. 내가 누구인지, 존엄의 근거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단단하게 붙잡지 않으면 이 건조한 도시의 겨울을 견딜 수 없어. 내겐 저 책들이 그 뿌리라네.”


 후배의 시선이 책상 위 낡은 노트에 머물렀다. 이십 대부터 써온, 치기와 욕망의 기록이다. 나는 그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찢지도 않고, 무심하게 툭, 던져 넣었다.


 “아깝지 않으십니까?”


 “과거의 영광이나 실패를 붙들고 있는 건 짐일 뿐이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오늘 써 내려갈 한 줄의 문장이지, 지나간 기록이 아니니까.”


 후배가 떠난 자리에 남은 빈 잔을 씻어 건조대에 엎는다. 습관처럼 손잡이를 오른쪽으로 돌려놓는 내 손끝에는, 직함을 내려놓은 뒤에도 지워지지 않은 어떤 규율이 배어 있다. 그 사소한 의식을 치르는 사이, 물기가 채 마르기도 전에 창밖은 이미 무겁게 어둑해져 있었다.


 딸칵, 스탠드를 켜자 기다렸다는 듯 하얀빛이 책상 위로 쏟아져 내린다. 사면을 메운 책들이 나를 호위하듯, 혹은 감시하듯 내려다보는 이 시간. 나는 이곳이 삶의 정착지라 믿었으나, 실은 여전히 어딘가로 통과 중인 ‘유예된 층(層)’임을 깨닫는다.


 새 공책을 펼친다. 손에 닿는 지면(紙面)의 감촉이 서늘하고 매끄럽다. 만년필을 쥔다. 미래를 향한 섣부른 장담은 적지 않기로 한다. 대신 오늘 내 시선을 붙들었던 홍송의 붉은 껍질과 느티나무의 기하학적 뼈대, 그리고 내일까지 기어이 견뎌내야 할 이 고요의 질감에 대해 기록한다.


 쓴다는 것은 도시의 두꺼운 시멘트 바닥을 뚫고 내면의 뿌리에 닿으려는 굴착(掘鑿)이다. 타인을 의식한 화려한 수식이나 명분 따위는 필요치 않다. 오직 차가운 팩트와 벌거벗은 나 자신, 그 둘의 대면만이 유효할 뿐.

 바닥을 데우는 보일러의 온기가 발바닥을 통해 전해오지만, 나는 그 안온함에 기대기보다 창문의 냉기를 택한다. 유리에 손바닥을 댄다. 살갗을 파고드는 그 명징한 차가움이야말로 무뎌지려는 정신을 베어내는 각성제다.


 수목들이 생명을 뿌리 끝으로 내리듯, 나 또한 문장을 통해 내면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침잠한다. 이것은 상실이 아니라, 잎을 버리고 뿌리를 택한 자발적 고립이다. 기억하라, 나무는 겨울에 자라지 않는다. 다만 깊어질 뿐이다.


 펜촉에 힘을 싣자 잉크가 종이의 결 사이로 깊이 박힌다. 밖은 여전히 혹독하고 밤은 길겠으나, 이 건조하고 높은 방에서 나는,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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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상담가로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나가고 있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사유와 글로 표현하며 교감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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