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붙잡는 생활

by 정성균

왜 우리는 사라지는 생각을 기록해야 하는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가 바라보는 풍경이 이전보다 넓어지는 일이라기보다, 한 지점을 오래 붙들고 깊이를 더해 가는 흐름에 가깝습니다. 생의 초입에 놓여 있던 시절은 인생의 좌표를 하나씩 설정해 가던 단계였습니다. 어디로 향할지, 누구와 발을 맞출지,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둘지 같은 물음이 매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곤 했습니다.


그 시간에는 더 많은 장면을 보고 싶어 하루를 촘촘히 쪼개 쓰며 길 위를 떠돌았습니다. 낯선 얼굴과 마주하고, 예기치 못한 좌절에 부딪히며, 처음 겪는 일 앞에서 온몸으로 긴장을 견뎌냈습니다. 굳이 생각을 끌어내지 않아도 마음속에서 질문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르던 때였습니다.


삶은 매일 새로운 문장을 내밀었고, 그 문장을 따라 읽느라 하루가 짧게 느껴지던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됩니다. 그 문장들이 얼마나 쉽게 희미해지는지를 말입니다. 그래서 사라지는 생각을 기록하는 일은 기억을 붙드는 기술이 됩니다. 한때 설정해 두었던 인생의 좌표를 다시 불러내어, 지금의 자리와 조용히 겹쳐 보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지나온 생의 시간이 어느덧 반백 년을 훌쩍 넘어선 지금, 문득 돌아보니 풍경이 조금씩 바뀌어 있습니다. 일상은 단단한 궤도를 만들고, 관계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머물게 됩니다. 새로울 것 없는 어제와 오늘이 겹쳐지는 이 시간은 내면의 샘물이 마르는 시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본질적인 것들이 밀도 있게 응축되는 시기에 가깝습니다. 다만, 이렇게 귀하게 모인 마음의 조각들을 붙잡아두지 않으면 금세 고여버리거나 흔적도 없이 증발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메모라는 사유의 정거장이 꼭 필요합니다.


정거장은 빠르게 지나가는 버스를 손들어 세우는 곳이지요. 머릿속을 무심코 지나치는 소중한 깨달음을 "잠깐만!" 하고 불러 세워, 내 삶이라는 노선에 태우는 곳이 메모입니다. 그곳에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할지 차분히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바람에 날아간 암기, 차대에 붙은 기억


저는 이 정거장의 소중함을 로드 사이클의 페달을 밟으며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짧은 기간 내에 자격증을 따야 했던 시절, 암기할 내용을 적은 메모지 두 장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책상 위에, 다른 하나는 사이클의 앞바퀴 림에 붙였습니다.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 내용을 스무 번 소리 내어 읽고 기운차게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버스로 한 정거장도 채 가기 전에 메모지는 바람에 날려갔고, 머릿속 정보도 종이의 행방을 따라 흐릿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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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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