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사람 곁에 서는 법
식어버린 차 한 잔. 멍한 눈빛. 당신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꺼내놓고 더 깊은 낭떠러지를 본 적이 있는가.
청년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삶의 갈림길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나는, 평소 그리 가깝지도 않던 한 선배를 마주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저 누군가에게 내 막막함을 흘려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 고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해법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가 건넨 문장들은 논리적이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내가 놓친 지점, 고쳐야 할 태도, 나아가야 할 방향이 그의 입술 끝에서 막힘없이 전해졌다.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충정 어린 말이라 여기며,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그 날카로운 말마디들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나의 어깨는 점점 아래로 처졌고, 입 안은 거칠게 말라갔다. 찻잔 속의 차가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나는 그가 던지는 해답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그건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이렇게 하면 금방 해결될 문제야"라는 단정적인 선언들이 공중에 흩어질 때마다, 정작 내가 꺼내놓고 싶었던 진솔한 고백은 갈 곳을 잃고 안으로 숨어들었다.
막막함. 가로막힌 대화. 흩어지는 시선.
그날 찻집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던 길, 뺨에 닿던 차가운 저녁 바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분명 지지를 얻으러 나간 자리였는데, 가슴속에는 해소되지 않은 피로가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선의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던, 서툴렀던 청춘의 한 페이지였다.
세월이 흘러 소통의 창구는 커피숍에서 손바닥 안의 작은 화면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놀랍도록 닮아 있다. 어느 날, SNS에 짧은 고민의 글을 올린 지인의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그저 오늘의 고단함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툰 문장 몇 줄을 남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댓글창은 순식간에 '정답의 경연장'으로 변했다. "그럴 땐 운동을 해보세요", "마음먹기에 달린 문제입니다", "저는 더 힘든 상황도 버텼는걸요"라는 조언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액정 너머의 사람들은 각자의 경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고 처방전을 내렸다.
그 무수한 조언들 사이에서 정작 글쓴이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있었다. 결국 그는 "응원 감사합니다"라는 영혼 없는 인사를 남기고 글을 내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대화 속에서 말은 더 가벼워지고, 그 가벼운 말들이 모여 누군가의 심중에는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낸다. 빛의 속도로 오가는 문장들 사이 어디에도, 상대를 향한 깊은 응시나 침묵의 자리는 없었다.
그날의 기억들을 되짚어보면, 방향 제시의 양이 늘어날수록 정작 그 자리에 있어야 할 한 사람의 존재감은 희미해졌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누군가 버겁다는 말을 꺼내면 본능적으로 해결사가 되려 한다. 상대의 고통을 분석하고, 마치 오답 노트를 작성해 주듯 방책을 쏟아낸다. 당신도 이런 순간을 겪었을 것이다. 어렵게 꺼낸 아픔이 하나의 '분석 대상'으로 전락할 때의 그 서늘한 기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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