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써 내려간 나의 친절한 메시지

by 정성균

삶이라는 이름의 가장 정직한 문장


어둠이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 위로 조용히 가라앉는 시간, 나의 발걸음이 비로소 멈춰 선다. 하루라는 치열한 전장에서 물러나 돌아오는 길목, 저녁의 공기는 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서늘한 바람이라기보다 입을 꾹 다문 고요함에 가깝다. 가슴 깊숙이 들이마신 숨 속에는 서둘러 걷는 사람들의 땀 냄새와 나의 피로, 그리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마음의 조각들이 뒤섞여 있다. 이 공기는 그저 숨 쉬는 기체가 아니라, 오늘 하루 내가 견뎌온 일들이 빽빽하게 쌓여 만들어진 시간의 성적표다.


"오늘도 나는 무사히 나를 데리고 돌아왔다."


현관에 놓인 낡은 구두가 눈에 들어온다. 가죽은 군데군데 해지고 굽은 한쪽으로 쏠려 있다. 거친 손가락으로 그 가죽의 결을 쓸어보자, 오늘 밟고 지나온 보도블록의 단단함과 물웅덩이의 서늘함이 손끝을 타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어깨를 짓누르던 가방 끈의 둔탁한 무게감을 느끼며 비로소 내가 짊어졌던 책임의 크기를 가늠해 본다. 이 장비들은 내가 걸어온 정직한 증거이자, 나를 지켜봐 준 유일한 목격자다. 글의 호흡을 낮추고, 이제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다시 찬찬히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제야 너의 맥박 소리가 들리는구나."


침묵 속에서 떠오른 행동의 흔적


생의 진실은 대개 무심코 했던 거동들 속에 고여 있다. 그림자가 오늘 남긴 뒷모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던 손가락, 대화의 빈자리를 채우려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 혹은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도 잠시 고개를 돌렸던 미안한 시선까지. 이 모든 장면은 머리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기억하고 움직였던, 숨길 수 없는 진짜 소묘다. 언젠가 세월이 흐른 뒤에 돌아보면, 이 사소한 몸짓들이 모여 나의 거대한 지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지만, 뒷모습은 길 위에 남는다."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피로가 짙게 깔린 어두운 눈매와 꽉 다문 입술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실존의 풍경이다.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피하며 스마트폰의 밝은 화면만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던 그 도망치고 싶던 마음이 앙금처럼 남는다. 미끄러운 보도블록을 조심스레 딛으며 어깨를 움츠렸던 순간 역시 나의 일부분이다. 빙판길에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 발가락에 힘을 주듯,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조심했던 그 조급한 걸음들이 오늘의 나를 직조한다.


"너의 사소함은 누군가에게는 생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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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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