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완성은 찬란한 성취의 목록으로만 판별되지 않는다. 하루라는 시간을 어떤 밀도로 건너왔는지, 그 안에서 감각이 얼마나 깨어 있었는지가 생의 질감을 좌우한다. 같은 날을 보냈다 하더라도, 내부에 남는 체감의 깊이는 서로 다르다. 축적되는 시간의 결은 매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서서히 만들어진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방 안의 불을 끄고, 손안에 남아 있던 푸른빛마저 거두는 순간 문득 밀려오는 허허로움을 마주한 적이 있다. 몸은 침대 위에 놓여 있지만, 그날을 붙잡아 줄 만한 장면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분명 아침에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고, 출근길에는 인파로 붐비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기도 했으며, 밀려드는 과업을 처리하느라 종일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잠자리에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 많은 시간 속에서 기억에 남은 감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엇을 했는지는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했는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는 말이 막힌다. 일정은 차질 없이 소화되었지만, 하루는 텅 빈 상태로 남아 있다. 이런 허전함은 피로의 문제도, 기억력의 저하도 아니다. 현재라는 시간에 마음을 두지 못한 채 몸만 앞서가며 일과를 지나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감각으로 떠오른 결과에 가깝다.
이런 날이 반복되면 삶이 쌓이고 있다는 인상보다, 시간이 곁을 스쳐 지나간다는 느낌이 짙어진다. 살아냈다는 확신 대신 또 하나의 날을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만 남는다. 하루가 끝났다는 사실은 분명한데, 그 안에서 어떤 상태로 존재했는지는 흐릿하다. 그렇게 지나간 시간은 기억의 층위에 닿지 못한 채 다음 날의 일정 아래로 조용히 가라앉는다.
현재에 마음이 깊이 닿지 못하는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그 중심에는 비교라는 습관이 놓여 있다. 타인의 속도와 개인의 걸음을 나란히 세워두고, 그 차이를 기준으로 오늘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 잣대가 되는 순간, 지금의 시간은 늘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시기는 준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삶을 견디게 만드는 동시에 만족을 뒤로 미루는 장치가 된다. 충분히 기뻐하기도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작동한다. 머무름은 불안으로 전환되고, 오늘은 늘 미완의 형태로 남는다. 현재는 독립적인 의미를 얻지 못한 채 미래를 위한 경유지로만 기능한다.
흔히 ‘나중에’라는 담보를 붙잡고 오늘을 소모한다. 그러나 그 나중이 도착했을 때,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감각이 이미 닳아버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쉽게 외면한다. 성취의 기쁨이 빠르게 소비되는 이유는, 기쁨을 받아 안을 마음의 여백이 미리 고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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