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진정한 동력은 요란한 결심보다, 매일 같은 궤도를 도는 묵묵한 뒷걸음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특별한 선택이 일생을 바꾼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존재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은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행위들이 쌓여 만들어가는 반복의 무늬에 가깝습니다. 반복의 형상이 굳어져 내일의 운명을 선고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늘 의지대로 고르며 산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실상 생의 많은 부분은 습성이 지배하기 마련입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하는 태도, 의식의 허락 없이 튀어나오는 말들이 그 증거입니다.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십시오. 도드라진 장면은 거의 없습니다. 비슷한 길을 걷고, 닮은 표정을 짓고, 익숙한 말을 되뇔 뿐입니다. 누구나 하루가 아니라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생애란 결국 일일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버릇은 삶을 지탱하는 내부 구조물이며, 우리가 어떤 풍경으로 남게 될지를 결정짓는 핵심입니다. 이 골조가 나를 살리는 영양제인지, 영혼을 서서히 마비시키는 질병인지 이제는 정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좋은 습성은 삶을 선순환으로 이끄는 비타민과 같습니다. 그 힘은 눈에 띄지 않지만 지치지 않으며, 우리를 아주 멀리까지 데려다줍니다. 올바른 반복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의지력을 아껴준다는 점입니다. 매번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없기에 에너지는 온전히 보존됩니다. 사고가 줄어든 자리에 행동이 들어앉으면, 활력은 비로소 삶의 본질적인 영역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일례로 대작 『레 미제라블』을 집필하던 빅토르 위고의 일화는 반복이 지닌 물리적 강제성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위고는 외출의 유혹과 나태함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옷을 모두 하인에게 맡겨 감추게 한 뒤, 오직 펜 하나만을 쥔 채 벌거벗은 상태로 책상 앞에 섰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체면을 원천 봉쇄한 채, 오직 ‘쓰는 행위’만이 유일한 생존 수단이 되는 환경을 스스로 구축한 것입니다.
옷이 없으면 나갈 수 없다는 제약이 오히려 그를 자유로운 사유의 세계로 이끄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거듭된 고립과 반복적인 집필 동작은 결과에 대한 강박보다 과정에 대한 정직한 몰입을 이끌어냅니다. 조건이 갖추어져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반복하여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불확실한 재능을 확신으로 바꾸는 힘입니다.
이 기운은 삶의 저항력처럼 작동합니다. 외부의 냉소나 우연한 실패에도 영혼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장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요. 한 번의 결과로 자신을 판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버릇은 정직한 자존감을 남깁니다. 자신과의 약속을 거듭 지켜내는 성실함은 삶을 지탱하는 견고한 토대가 됩니다.
반면 나쁜 습성은 병마의 속성을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병의 무서움은 통증보다 잠복기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안락하게 다가옵니다. 스마트폰의 끝없는 스크롤,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안일함, 타인을 탓하며 얻는 가짜 위안은 당장 달콤한 휴식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그러나 편안함이 되풀이될수록 영혼의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입니다. 선택지는 좁아지고 사고는 경직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려옵니다.
익숙한 절망은 낯선 희망보다 안전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만든 좁은 틀 안에서 나가지 않으려 애를 씁니다. 왜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제자리에 머물려할까요? 배경을 살펴보면 인간의 뇌는 '행복'보다 '예측 가능한 상태'를 훨씬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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