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말, ‘조금 있다가’

by 정성균

우리가 가장 자주 하는 말


“조금 있다가 해야지.”


이 짧은 문장은 일상의 틈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어질러진 책상을 마주하거나 묵혀둔 답장을 꺼내야 할 때, 혹은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결심한 그때에도 이 말은 어김없이 혀끝에 얹힌다. 다정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스스로에게 허용하는 정교하고 위험한 자기기만이다.


이 표현을 되풀이하는 데에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조금 있다가’가 건네는 묘한 안도 뒤로 몸을 숨기고 싶기 때문이다. 당장의 압박에서 한발 물러나는 느낌, 해야 할 일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라는 얄팍한 위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책임 회피와 자기 합리화가 뒤섞이는 그때 마음은 잠시 가벼워지지만, 그 가벼움이 곧 자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머지않아 더 큰 무게로 되돌아올 빚을 잠깐 유예할 뿐이다. 평범한 문장 뒤로 숨어 오늘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조금’이 주는 안도감


‘조금’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과연 몇 분 혹은 몇 시간을 가리키는 말일까. 사전은 정도가 적거나 짧은 상태라고 정의하지만, 뒤로 미루는 사람의 언어 속에서 이 단어는 끝없이 늘어나는 고무줄이 된다. 시간의 단위라기보다 변명과 핑계가 빚어낸 희뿌연 안개에 가깝게 작동한다.


“10분 뒤에 하겠다”거나 “오후 3시에 하겠다”라고 선을 긋지 않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구체적인 숫자를 입에 올리는 순간, 그것은 지켜야 할 약속이 된다. 반면 ‘조금’은 끝을 정하지 않은 여백이다. 그 모호함 속에 숨어도 안전하다고 믿게 된다. 이런 착시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아직 기회가 넉넉하다는 착각,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하기 때문이다. 그늘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생생한 현실은 손에 잡히지 않는 과거로 빠르게 편입된다. 흐릿한 언어는 삶의 초점을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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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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