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이 멈추는 순간에도 삶은 특별한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눈에 띄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하루의 모습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침은 늘 같은 시간에 시작되고, 해야 할 일은 정해진 자리에 놓여 있다. 일정은 빠짐없이 채워지고, 하루는 바쁘게 지나간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겉으로 보이는 풍경이 거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예전만큼 여지를 두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감각이 스쳐 지나간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어도 호기심보다 판단이 먼저 떠오르고, 처음 접하는 생각 앞에서도 이미 알고 있다는 반응이 앞선다. 질문은 점점 줄어들고, 설명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어느새 묻는 일보다 말하는 일이 더 익숙해진다. 하루는 계속 흘러가지만, 생각이 움직이는 범위는 조금씩 좁아진다. 분주한 일정 속에서 마음은 같은 자리를 여러 번 되짚는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현명한 사람의 모습에는 공통된 장면이 있다. 말이 분명하고, 판단이 빠르며, 상황에 맞는 답을 곧바로 내놓는 인물이다. 경험이 충분해 보이고, 설명에는 막힘이 없다. 그런 모습은 더 배울 것이 없어 보이게 만든다. 질문이 필요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인상도 함께 따라온다.
그러나 삶의 장면은 종종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확신에 찬 말이 대화를 멈추게 만드는 순간이 나타난다. “그건 이런 경우야.” “비슷한 일을 겪어봤어.” 이런 말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그 말이 등장하는 순간, 상대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는다. 말은 오가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머문다. 대화는 정리되지만, 관계는 잠시 멈춘다.
이런 장면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운 자리에서도 반복된다. 힘든 상황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야기를 들으며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다. 경험에서 나온 설명을 서둘러 꺼내고, 가능한 답을 빠르게 정리한다. 충분히 말했고,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도 돌아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화가 매끄럽게 마무리된 듯 보인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날 이후 같은 이야기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상황을 설명하는 말은 충분했을지 몰라도, 마음이 머물 공간은 남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 또렷해진다. 이 경험은 확신이 언제는 도움이 되고, 언제는 관계에 조용한 간격을 만든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의 힘든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마음을 오래 붙잡아 두는 일이다. 그 안에는 후회와 망설임, 불안과 두려움이 겹겹이 섞여 있다. 이야기를 꺼내는 쪽은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듣는 자리 역시 마음을 단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조금 덜 아플지 알고 싶다고 말이다.
예전에는 분명한 말을 건네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설명이 또렷하면 흔들림이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기억에 남은 장면들은 다른 쪽을 가리켰다. 말을 아꼈던 순간, 답을 서두르지 않았던 시간에 대화는 오히려 길어졌다. 확신이 앞서지 않을 때, 말하는 쪽은 자신의 속도를 되찾았다. 설명이 줄어들자 이야기는 스스로 흐름을 만들어 갔다.
모든 상황에서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큰 상실을 겪은 사람 앞에서는 어떤 표현도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위로의 말은 가볍게 들릴 수 있고, 조언은 상황을 앞질러 버리기도 한다. 그 무게 앞에서 말은 종종 제 역할을 잃는다.
그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모든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 시간을 혼자 지나지 않도록 곁에 머무는 일이다. 말은 줄어들고, 침묵은 길어진다. 같은 공간에 앉아 흐르는 숨소리만이 시간을 이어준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문장은 길지 않고 자주 멈춘다. 그 사이에서 말보다 질문이 지닌 힘이 드러난다. 배움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질문을 다시 꺼내는 일과 닮아 있다. 모른다는 자리를 피하지 않고 머무는 시간이 관계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는 점도 이때 분명해진다.
글을 쓰는 과정 또한 이와 닮아 있다. 문장을 적다 보면 결론을 서두른 흔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단정한 문장이 좋아 보인다. 명확해 보이고,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인상도 준다. 그러나 다시 읽으면 숨이 가쁘다는 느낌이 남는다.
그래서 문장을 지운다. 그리고 다시 쓴다. 이미 알고 있다는 표현을 덜어내고, 더 알고 싶다는 방향으로 말을 고친다. 작은 변화로 문장은 숨을 되찾는다. 글이 위로가 되는 이유는 정답을 제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망설임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일 때가 많다. 글쓰기는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스스로를 다시 배우는 시간으로 이어진다.
어릴 적에는 질문이 자연스러웠다. 하늘의 색이 궁금했고, 어른들이 바쁜 이유도 알고 싶었다. 마음이 자주 바뀌는 까닭도 묻곤 했다. 그 시절에는 배운다는 말을 따로 의식하지 않았다. 생활 자체가 질문으로 채워져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질문은 줄어들고 설명은 늘어났다. 모르는 상태는 점점 불편해졌고, 빠른 답이 익숙해졌다. 그 과정에서 생각의 움직임은 서서히 느려졌다. 질문은 조심스러운 행동이 되었고, 설명은 능력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배움은 질문을 다시 입에 올리는 연습에서 시작된다. 이미 알고 있다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다시 묻는 태도를 회복하는 일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삶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나이를 받아들이는 감각 또한 이 지점에서 달라진다. 시간의 흐름은 단단해지는 방향보다, 조금씩 풀어가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배움은 멈추지 않는 편이 낫다. 완벽함을 향해 가기보다, 마음을 열어 두는 쪽이 삶을 오래 움직이게 한다. 생각이 앞설 때 잠시 멈추고 질문을 적어 둔다. 이 작은 습관은 다시 삶의 흐름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다. 답이 없어도 괜찮다. 질문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하루는 가볍게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오늘도 쉽게 결론에 닿지 못한 채 마음을 오래 붙든다.
내가 내미는 손이 누군가의 삶을 앞질러 붙잡아 그 사람의 걸음을 대신 결정하지 않기를, 스스로 설 자리를 지워 버리는 힘이 되지 않기를 조심스럽게 헤아린다. 다만 그가 다시 자기 힘을 찾을 수 있도록, 크지도 작지도 않은 온도로 곁에 머무는 손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답을 서둘러 건네지 않고, 방향을 앞서 정하지 않으며, 그 사람이 숨을 고르고 다시 움직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사람 곁에 서 있기로 한 선택을 반복하며 하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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