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흔들리는 순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외부의 조건을 먼저 바라보게 된다. 통장 잔고가 줄어든 날, 믿었던 관계가 어긋났다고 느껴지는 순간, 예고 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했을 때 인생의 방향이 틀어졌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유를 찾으려는 시선은 상황을 향해 움직이고, 그 사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자연스럽게 뒤로 밀린다.
그 흐름은 예외 없이 스며들어 있었다. 몇 해 전, 신뢰하던 사람의 결정으로 오랜 시간 준비해 온 프로젝트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때는 분노보다 먼저, 스스로를 설명하려 애쓰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상황이 아니라 태도를 묻는 질문은 끝내 피하고 싶었던 탓이다. 그날 새벽,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가운데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주머니에 넣어 둔 볼펜을 꼭 쥔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마음이 더 이상 기대어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올라왔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질문은 낯설지 않았다.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누구라도 비슷한 물음을 떠올렸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하나의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때는 사건보다 스스로를 더 거칠게 다루고 있었다. 외부 조건에 삶의 균형을 오래 맡겨온 사람일수록 예상하지 못한 변화 앞에서 방향을 잃기 쉬운 이유도, 그제야 이해되었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을 보살피는 방식을 잊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성과와 기대를 따라가느라 마음속에서 반복해서 울리던 피로의 신호를 외면해 온 결과다. 단단한 삶은 흔들림을 없애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흔들리는 순간에도 스스로를 어떻게 대할지 알고 있는 태도에서 힘이 생겨난다. 끝까지 버티는 힘보다 내려갈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닥을 확인하고 다시 설 준비를 하는 자세가 삶을 붙잡는다.
바닥은 실패의 흔적으로만 남지 않는다. 다시 출발을 허락하는 자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상을 지탱하는 힘은 운이나 위로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소중히 다루겠다는 조용한 결단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가볍게 여길수록 세상의 반응도 거칠어지고, 자신을 존중하는 태도가 자리 잡을수록 같은 상황도 이전과 같은 깊이로 상처를 남기지 못한다.
자존감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 다만,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던 날들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타인의 무례한 말과 행동을 참고 넘기며 마음이 상하는 이유를 성격 탓으로 돌리던 순간들, 이해받기보다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쓰던 시간들이 그 기억 속에 겹겹이 쌓여 있다.
다른 사람의 상처에는 민감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쉽게 지나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피로를 숨기고, 멈추라는 신호를 느끼면서도 속도를 유지한다. 그 끝에 남는 것은 성취보다 지침에 가까운 감각이다. 자존감이 안정된 사람은 판단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내려놓을지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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