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는 나를 아끼는 마음이라기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담보로 내건 겁쟁이가 자기 자신과 체결한 비정한 거래에 가깝다."
강함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오해된 채로 받아들여져 왔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모든 일을 홀로 척척 해내는 모습이 곧 독립적인 성인의 표상이라 굳게 믿어왔던 탓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본 순간, 마주한 실상은 예상과 달랐다. 타인에게 실망하거나 거절당하고 싶지 않다는 방어 기제가 그곳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높게 쌓아 올린 성벽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요새가 되었고, 밖으로 향하지 못한 기대는 안으로 꺾여 자신을 겨누는 예리한 가시가 되어버렸다.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그 근사한 말 역시, 한순간도 쉬지 못하게 감시하는 굴레였음을 이제는 안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조차 성과를 내야만 유효해지는 비정한 거래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그 조건은 참으로 가혹했다. 조금이라도 나약해지거나 실수하면 존재의 가치를 가차 없이 삭감해 버렸으니 말이다. 이제야 성실함이라는 가면을 벗고, 그 뒤에 숨어 스스로를 침식해 온 가혹한 기대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고통스럽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고백이 시작된다.
모든 비극은 다정한 목소리로 시작되는 법인가 보다. 처음의 자기 기대 역시 그러했다.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따뜻한 응원에서 출발했으니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건넸던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 그 문장은 분명 구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믿어주는 편이 생긴 기분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격려가 반복되며 서서히 굳어졌다는 데 있었다. 어느덧 반드시 충족해야 할 기준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응원이 의무가 되는 순간, 만족이라는 감정은 소리 없이 증발한다. 대신 차가운 평가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기준을 채우면 당연한 일이 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용납할 수 없는 실패가 된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열망은 어느새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채찍질로 변해 있었다. 다정함이 어떻게 날카로운 가시로 변했는지 그 인과를 되짚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변화를 인식하는 것만이 스스로를 옥죄던 굴레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임을 알게 된다.
가끔 입안에 쓴맛이 맴돌 때가 있다. 어떤 일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해 품었던 묵직한 실망감이 몸 밖으로 배어 나오는 신호였을 것이다. 실패는 외부의 결과가 어긋나는 일이어서 다시 시도할 여지라도 남지만, 실망은 다르다. 높은 기대와 초라한 현실이 부딪히며 생기는 내면의 붕괴에 가깝다. 타인에게 실망했을 때는 관계를 조정하면 되지만,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는 피할 곳조차 없다는 점에서 훨씬 깊이 침잠하게 된다.
실망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조용하고 끈질기게 축적되기 때문이다. 변명조차 허락하지 않는 시선이 반복되면, 일시적인 감정은 곧 판단으로 굳어진다. ‘여기까지인가 보다’라는 단정이 확신이 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자책만 남는다. 결국 실망의 본질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높이에 세워둔 기대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