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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가장 기대를 하는 게 나였더라

by 정성균

"대는 나를 아끼는 마음이라기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담보로 내건 겁쟁이가 자기 자신과 체결한 비정한 거래에 가깝다."


기대의 정체를 알아차린 순간


강함이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오해된 채로 받아들여져 왔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모든 일을 홀로 척척 해내는 모습이 곧 독립적인 성인의 표상이라 굳게 믿어왔던 탓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본 순간, 마주한 실상은 예상과 달랐다. 타인에게 실망하거나 거절당하고 싶지 않다는 방어 기제가 그곳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상처받기 싫어서 높게 쌓아 올린 성벽은 결국 스스로를 가두는 요새가 되었고, 밖으로 향하지 못한 기대는 안으로 꺾여 자신을 겨누는 예리한 가시가 되어버렸다.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그 근사한 말 역시, 한순간도 쉬지 못하게 감시하는 굴레였음을 이제는 안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조차 성과를 내야만 유효해지는 비정한 거래의 다른 이름이었을 뿐이다. 그 조건은 참으로 가혹했다. 조금이라도 나약해지거나 실수하면 존재의 가치를 가차 없이 삭감해 버렸으니 말이다. 이제야 성실함이라는 가면을 벗고, 그 뒤에 숨어 스스로를 침식해 온 가혹한 기대의 실체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고통스럽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고백이 시작된다.


기대는 언제나 좋은 말로 시작된다


모든 비극은 다정한 목소리로 시작되는 법인가 보다. 처음의 자기 기대 역시 그러했다.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따뜻한 응원에서 출발했으니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건넸던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 그 문장은 분명 구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믿어주는 편이 생긴 기분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격려가 반복되며 서서히 굳어졌다는 데 있었다. 어느덧 반드시 충족해야 할 기준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응원이 의무가 되는 순간, 만족이라는 감정은 소리 없이 증발한다. 대신 차가운 평가만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기준을 채우면 당연한 일이 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용납할 수 없는 실패가 된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열망은 어느새 벼랑 끝으로 몰아넣는 채찍질로 변해 있었다. 다정함이 어떻게 날카로운 가시로 변했는지 그 인과를 되짚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변화를 인식하는 것만이 스스로를 옥죄던 굴레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임을 알게 된다.


실망은 실패보다 조용하게 쌓인다


가끔 입안에 쓴맛이 맴돌 때가 있다. 어떤 일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향해 품었던 묵직한 실망감이 몸 밖으로 배어 나오는 신호였을 것이다. 실패는 외부의 결과가 어긋나는 일이어서 다시 시도할 여지라도 남지만, 실망은 다르다. 높은 기대와 초라한 현실이 부딪히며 생기는 내면의 붕괴에 가깝다. 타인에게 실망했을 때는 관계를 조정하면 되지만,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을 때는 피할 곳조차 없다는 점에서 훨씬 깊이 침잠하게 된다.


실망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조용하고 끈질기게 축적되기 때문이다. 변명조차 허락하지 않는 시선이 반복되면, 일시적인 감정은 곧 판단으로 굳어진다. ‘여기까지인가 보다’라는 단정이 확신이 되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자책만 남는다. 결국 실망의 본질은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높이에 세워둔 기대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너무 높은 곳에 목표를 매달아 두고, 닿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의 한계 탓으로 돌리며 몰아세워 왔다. 어디를 돌아봐도, 한 번도 자신을 용서하지 않은 차가운 시선만이 남아 있었을 뿐이다.


나는 나에게 너무 공정한 심사위원이었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매기기 시작한 이유는 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타인에게는 무해한 사람처럼 굴면서도, 자신에게만은 아주 작은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잣대를 들이댔다. 그것은 객관성이라는 말로 포장되어 삶의 자부심으로 둔갑했다. 철저해야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착각이 지배했던 셈이다.


심사는 늘 짧고 차가웠다. 감정이 개입할 여지는 없었고, 수치와 결과만 남았다.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은 나약함의 증거로 취급되었고, 언제나 결점을 찾을 준비가 된 심사자만이 남아 있었다. 성과를 축하받는 순간에도 첫마디는 비판이었다. “아직 멀었다.” 겸손이라기보다 반복된 자기 소모에 가까운 말이었다.


공정함이란 결과에만 매달리는 차가운 시선이 아니다. 오히려 그 결과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울인 노력을 살피는 온기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향한 냉소는 성장을 촉진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의욕을 말려 죽이는 독으로 작용한다. 스스로를 탓할 때 스며드는 서늘함을 인정하며, 비로소 손에 쥔 칼날의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공정함이라는 이름으로 감행해 온 가장 불공정한 대우를, 그제야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성실함이 나를 쉬지 못하게 했다


성실함은 때로 성취의 언어로 포장된 자기 소모에 가까웠다. 멈춤은 곧 공포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뒤처짐으로 해석되었다.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채찍을 들었다. 쉬어야 할 순간에도 생산적인 무언가를 찾던 모습은, 불안에 쫓기는 도망자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가치가 오직 ‘얼마나 해냈는가’로 증명된다고 믿었던 그 사고방식이 가장 큰 상처를 남겼다. 번아웃은 열심히 살아 얻은 영광의 흔적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우지 못한 시간이 쌓여 만든 조용한 재앙이었다. 쉼 없는 성실함은 지속의 동력이 되지 못한 채, 오히려 가장 빠르게 소진시키는 불씨로 작용했다. 한때 자부심이었던 꾸준함이, 사실은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가장 날카로운 도구였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이제 멈추는 법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자기부정을 내려놓고, 뒤편에 서 있던 불안과 마주 선다. 달려야 한다는 명령 대신, 지금 이 순간 몸이 보내는 신호와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그 무거운 침묵을 견디는 연습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내려놓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포기와 책임을 동일시하는 교육 속에서, 버티는 것만이 정답처럼 배워왔다. 하지만 잘못 들어선 길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멈춰 서는 용기다. 내려놓음은 패배의 선언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을 정확히 인식한 판단에 가깝다. 쏟아부은 시간과 시선이 아까워 썩은 줄을 붙잡는 행위는 끈기라기보다 고집에 가깝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파일을 영구 삭제하던 날의 감각을 잊지 못한다. 클릭 한 번으로 수개월의 노력이 사라졌지만, 묘하게도 가슴 한편이 트였다. 내려놓지 못했던 이유는 포기한 뒤의 자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손을 비워야 새로운 것을 붙잡을 수 있다는 단순한 논리는,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열쇠가 된다. 중단은 마침표가 아니라, 다음 문장을 쓰기 위한 쉼표에 가깝다. 무의미한 책임을 내려놓으며, 자유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하기 시작한다.


기대를 줄이자 감정이 살아났다


기대를 낮춘다는 것은 무기력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억눌려 있던 감각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 가깝다. 가혹한 기준을 걷어내자, 외면해 왔던 피로와 서운함, 그리고 자신을 향한 연민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다. 기대를 충족시키느라 감정을 미뤄둔 시간만큼, 삶은 기계적인 결과 생산에 가까워져 있었다.


구름이 형태를 바꾸며 흘러가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무미건조한 상태로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하늘의 색보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먼저 떠올리던 시절을 지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임을 다시 배우게 된다. 기대를 거두었을 때 비로소 허용되는 상태다.


비워진 자리에 서글픔이 스며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감정은 여전히 반응하고 있다는 신호다. 회복은 평온한 마무리가 아니라, 때로는 아픔을 동반한다. 그 과정을 통과해야만 존재의 생동을 되찾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를 믿는 방식도 배워야 했다


무조건적인 자기 신뢰는 때로 가장 위험한 방치에 가까운 상태가 된다. 무너지는 순간마다 “할 수 있다”라고 다그치는 태도는, 믿음이라기보다 압박에 가깝다. 진정한 신뢰는 강함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인정한 상태에서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데서 출발한다.


성과를 감시하던 시선을 거두고, 판단 없이 하루를 기록한다. 충분히 쉬지 못한 날, 사소한 말에 마음이 흔들린 순간들. 그것들은 평가의 재료가 아니라 이해의 단서다. 믿음과 방치의 경계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며, 신뢰를 다시 정의한다. 완벽을 요구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약속에 가까운 신뢰다.


그래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


기대를 없앤 것은 아니다.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몰아붙이는 믿음 대신, 흔들림을 견디는 신뢰를 선택했다. 물론 여전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밤마다 자책 속에 잠들기도 한다. 수십 년간 이어진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때로는 기대를 내려놓자는 이 문장들조차 또 다른 기준이 되어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힘들게 한 존재가 자신이었음을 인식하는 순간, 동시에 가장 책임질 수 있는 존재 역시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외부의 요구보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서툰 화해를 지속한다. 이기기 위해 몰아세우는 대신,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비틀거리는 걸음 자체를 삶으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밤공기는 차갑고 흔들림은 여전하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만은 유지된다.


기대는 사랑의 가면을 쓴 거래였고, 이제 그 가면을 벗고 홀로 선다. 여전히 춥고 떨리지만, 이 떨림을 외면하지 않는 지금의 상태로도 삶은 이미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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