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생을 함부로 가볍다 말하지 않기를

by 정성균

살다 보니 사람의 겉모습만으로는 삶의 구체적인 사정을 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일생을 마주할 때 시선은 대개 매끄러운 껍데기에 머뭅니다. 길 위에서 스쳐 가는 수많은 행인의 걸음걸이와 얼굴빛, 정돈된 차림새는 생의 전부를 보여주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깨끗하게 다려진 옷을 입고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대하면 걱정 없는 평탄한 길을 걷고 있다고 단정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단면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일은 눈먼 예단이자 성급한 실례입니다.


옛글인 《논어(論語)》에서는 "말을 살피고 얼굴빛을 보며, 생각하여 자신을 남의 아래에 둔다(察言而觀色, 慮以下人)"라고 하였습니다. 안색을 살피는 까닭은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를 온전히 대접하기 위함임을 일러줍니다. 겉장만 보고 수만 개의 글자가 담긴 책 내용을 다 읽었다 말할 수 없듯이, 겉으로 내놓은 조각 하나로 생 전체를 아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속사정을 확인하기 전까지 아픔이나 평온함을 논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첫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의 손마디를 가만히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거칠게 갈라진 손등과 마디마다 박인 굳은살은 밤낮으로 일구어온 생존의 흔적입니다. 화려한 가방을 들었거나 값비싼 외투를 걸쳤어도, 손이 움켜쥐고 있는 무게는 숨길 수 없습니다. 퇴근길 시장 어귀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꽉 움켜쥔 가장의 뒷모습에서도 비슷한 무게를 발견합니다. 봉지 속 찬거리가 식구의 한 끼를 책임지는 소중한 결실임을 알기에, 굽은 등 위로 흐르는 땀방울은 숭고한 투쟁의 증거가 됩니다.


그 땀방울 속에는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켜낸 걱정과, 찻잔 속에 담긴 채 식어버린 말 없는 고민들이 녹아 있습니다.


주변을 살피면 남모를 아픔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평온해 보이는 집이라도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면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산적해 있기 마련입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고 성취를 거둔 사람 역시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일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버티고 있을지 모릅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웃음을 주던 광대가 무대 뒤 거울 앞에서 분장을 지우며 마주하는 눈빛은 텅 빈 벌판처럼 쓸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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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생각과 마음의 결을, 책 속 문장과 함께 조용히 전합니다. 스친 만남이 믿음으로 이어져 각자의 하루에 힘을 더하는 장면들을 담담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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