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정적을 보고 그 안의 생태계가 늘 평온할 것이라 오해하곤 합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조건이 안락하고 뜻대로 풀리는 일상 속에서, 누구나 그럴듯한 도덕과 교양을 갖춘 개체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온함이 깨지는 순간, 곧 삶의 수면에 예상치 못한 돌멩이가 던져질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수면 위로 번져 나갑니다. 사람은 평소 믿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기보다, 감당하기 힘든 변수가 닥쳤을 때 터져 나오는 본능적인 반응에 의해 정의되곤 합니다.
여기서 '상황 의존성'이라는 개념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환경에 반응하기보다, 주어진 형편에 따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존재입니다. 상황은 외부의 물리적 조건을 통틀어 뇌의 판단 체계를 순식간에 바꾸는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일관성은 견고한 성격의 산물이라기보다, 안락한 조건이 유지될 때 나타나는 일시적인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평온함 속에서는 이성이 주도권을 잡고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만, 위기가 닥치면 생존을 담당하는 본능의 회로가 급격히 활성화됩니다.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반쪽짜리 대답만을 내놓을 뿐입니다. 스스로를 정의하는 수식어들은 대개 안정된 상태에서 바라는 희망 사항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러납니다.
권력의 유무라는 구조적 조건이 인간의 태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살펴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거나 반격할 수 없는 대상을 마주했을 때, 그동안 사회화로 억눌러왔던 본연의 성품을 가감 없이 드러냅니다. 이는 사회적 가면이 기본적으로 '관계의 대칭성' 위에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권력은 우월함이라기보다 '위험의 부재'로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윤리는 신념만으로 유지되기보다 제약이 존재할 때 더욱 또렷해집니다. 상대가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 붙들고 있던 도덕적 긴장은 이완됩니다.
주변에서 이런 사례는 흔히 목격됩니다. 식당에서 종업원이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나, 콜센터 상담원이 시스템의 한계를 설명할 때 선택하는 언어의 온도를 떠올려 보십시오. 당장 책임자를 데려오라며 목소리를 높이거나 상대를 비하하는 말투는 사안의 심각성 때문이라기보다, 상대가 맞설 수 없다는 확신에서 기인합니다. 처벌 가능성과 제약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차는 것은 인격적 밑바닥입니다. 윤리는 타인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위해의 개연성 위에서 더 팽팽하게 작동하는 법입니다. 권력은 우위라기보다, 스스로를 제어하던 외부의 억제력이 해제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숨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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