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 해변에서 원서를 읽는 상상

by 스칼렛

이번 발리 여행은 지난 여행보다 조금 더 풍성한 장면들로 채워볼 계획이다. 발리에 도착하기 전, 먼저 쿠알라룸푸르에서 이틀을 머문다. 도시의 활기와 편의성,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은퇴 이민이나 자녀 교육을 위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직접 체감해보고 싶어서다.


여행을 준비하며 정보를 찾던 중, 우연히 서점 한 곳을 추천받았다. 바로 수리아 KLCC 쇼핑몰 4층에 위치한 “키노쿠니야 KLCC점(Books Kinokuniya Malaysia)”이다. 30만 권 이상의 방대한 장서를 보유한 이곳은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수준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특히 다양한 원서를 고루 갖추고 있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기분 좋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떤 책을 살까?"

"내가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좋겠지?"


사실 그동안 여행 가방 속에는 늘 한국어로 된 책들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글이 익숙한 탓에, 원서는 아예 선택지에도 없었다. 그러다 지난 여행 중 우연히 공항 서점에서 영어 원서 한 권을 살까 망설였지만 이내 포기했었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사서 뭐 하나' 하는 실용적인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KakaoTalk_20260319_120103660_09.jpg 쿠알라룸푸르 키노쿠니야 서점


그런데, 누군가는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 서점에서 책을 산다고 한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책이나 평소 좋아하는 작가의 영어 원서, 혹은 마음을 끄는 아름다운 표지의 책을 기념품 사듯 수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행지의 마그네틱이나 열쇠고리 같은 기념품은 망설임 없이 사면서, 왜 유독 책만큼은 '읽어야 한다'는 목적을 부여했을까. 실용적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기념품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부터는 여행지의 서점을 둘러보는 즐거움을 일정에 더해보려 한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한 권씩 모아보겠다는 기분 좋은 목표도 생겼다.


이번 여행에선 이 장면을 상상해 본다. 쿠알라룸푸르에서 고심 끝에 고른 영문 소설 한 권을 품에 안고 발리로 향하는 모습. 그리고 길리섬의 눈부신 해변, 야자수 아래 선베드에 누워 그 책을 읽는 나를.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사이에서 책장을 넘기다 스르르 낮잠에 들기도 하고, 시원한 칵테일 한 잔을 곁들이며 오직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하루를 채우는 상상. 해변에서 태양이 기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한 그 찰나를. 상상만으로도 이미 나는 여행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것 같다.


그 여행이 3주 후면 시작된다.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