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로 출발
오랫동안 텍스트와 이미지로만 수집해 온 쿠알라룸푸르의 정보들이 마침내 내 눈앞의 현실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6시간 남짓의 비행 끝에 도착한 쿠알라룸푸르공항. 비행기를 벗어나 마주한 풍경은 다소 얼떨떨했다.
먼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입국과 출국 게이트가 한 공간에 나란히 섞여 있는 낯선 동선이었다. 이런 동선은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의 묘한 데자뷰를 불러일으켰다. 보딩 브릿지를 통과하자마자 화려한 면세점이 주르륵 펼쳐지던 그곳의 기억. 쿠알라룸푸르 공항은 창이공항과 닮은 듯하면서도 자신들만의 다른 동선을 유지하고 있어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극했다.
정신을 차리고 ‘Arrivals(도착)’ 표시판을 이정표 삼아 인파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우리가 도착한 게이트는 공항의 메인 터미널과 떨어져 있어, 터미널 사이를 연결해 주는 무인 열차인 ‘에어로트레인(Aerotrain)’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열차가 공항 메인 터미널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말레이시아에 왔음이 실감 났다.
이제야 좀 익숙하고 명쾌한 절차가 진행된다. 입국 3일 전 미리 작성해 둔 전자입국신고서(MDAC) 덕분에 번거로운 대기 줄 대신 자동입국 게이트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여권을 건네고 질문을 기다리는 긴장감 대신, 기계와의 짧은 교감만으로 입국 절차가 끝났다. 이런 효율적인 시스템은 발리에서의 경험을 떠올리게 했다. 나라의 전반적인 시스템보다 여행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도시의 첫인상인 공항 서비스가 앞서가는 현상은, 전 세계 여행자를 환영하는 이 도시의 현대적인 노력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공항 밖으로 나와 시내까지 대략 60km 거리였다. 동남아 여행의 필수 앱인 그랩(Grab)이나 볼트(Bolt)를 켜고 가격을 비교해 보았다. 이 과정에서 아주 흥미로웠던 건 '이동 수단의 경제학'이었다. 재미있게도 공항에서는 수요가 몰리는 그랩보다 통행료까지 포함된 가격을 제시한 볼트가 좀 더 저렴했다. 가장 낮은 가격으론 콜이 잡히진 않았지만, 금액을 살짝 높이자 금방 볼트 운전자가 연결되었다. 볼트요금은 76 링킷(한화 28,187원), 통행료 포함이다. 참고로 이틀 뒤, 시내에서 공항으로 돌아갈 때는 차량 공급이 여유로운 시내 특성상 오히려 그랩 요금이 더 낮게 책정되었다. 그랩요금은 67.98 링킷(한화 25,144원), 통행료는 10.33 링킷(한화 3,824원)이 별도 부과되었다. 이렇듯 하나만 맹신할 것이 아니라 두세 가지 대안을 비교하고 선택하니 여행자에게 조금이나마 경제적 이익을 안겨주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60km는 흡사 수원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여정을 떠올리게 할 만큼 꽤 멀었지만, 시원하게 뚫린 도로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속도로는 훌륭하게 갖춰져 있었고,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오토바이 행렬이 드물어 도로 풍경은 무척 쾌적했다. 운전자들의 거침없는 속도감에서 아찔함이 느껴졌고, 오른쪽 운전석과 시내의 일방통행로는 싱가포르의 시스템을 닮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통과하고 40분이 지나니 복잡한 시내로 진입했다. 내가 묵을 숙소가 있는 부킷 빈땅 지역은 손꼽히는 핫플레이스답게 교통정체가 심각했다. 대만보다도 적은 오토바이 수, 그리고 일본 시부야의 교차로를 연상시키는 부킷 빈땅의 거대한 횡단보도까지. 도시 곳곳에는 말레이시아의 경제적 수준을 짐작하게 하는 요소들이 넘쳐났다. 싱가포르의 세련미에 일본과 중국의 색채가 묘하게 뒤섞인 쿠알라룸푸르의 첫인상은 무척 강렬했다.
예약한 호텔은 부킷 빈땅에 위치한 4성급의 '호텔 로얄 쿠알라룸푸르'였다. 1박에 65,611원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객실은 넓고 청결했다. 기분 좋게 쏟아지는 따뜻한 물과 욕실 개인위생 용품인 어메너티(Amenities), 벽장 속에 정돈된 다리미세트까지. 여행자의 필요를 세심하게 배려한 공간의 퀄리티를 마주하는 순간, 말레이시아라는 나라가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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