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여행사의 막무가내 전달방법이 한편으로 불쾌했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길리에 도착했다. 사실 도착 일주일 전, 길리에 폭우가 쏟아졌다는 소식을 우붓 숙소에서 만난 프랑스 아저씨에게 전해 듣고 내심 일정이 걱정됐었다. 하지만, 현지 여행사에서 별다른 연락이 없길래 예정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번 여행 때도 수월하게 넘어갔으니, 이번에도 같은 여행사를 믿고 우붓에서 픽업 셔틀을 타 빠당바이 항구의 와하나 사무실로 향하기로 했다.
오전 6시 30분, 우붓 숙소에서 3분 거리에 있는 코코마트 앞. 20여 분 일찍 도착해 셔틀을 기다리고 있는데, 약속된 시간이 되자 셔틀버스가 아닌 일반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어, 셔틀버스가 아니네.’
알고 보니 이번 우붓 픽업 승객은 우리뿐이었고, 저렴한 셔틀 요금으로 프라이빗 택시를 타고 가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요금은 빠당바이 사무실에 도착해서 지불하는 후불제였기에, 가는 내내 굳이 묻지 않고 편하게 이동했다. 빠당바이 와하나 사무실에 도착해 무사히 체크인을 마쳤고, 왕복 티켓을 수령한 뒤 3만 루피아(30k)의 항구세도 지불했다.
하지만 문제는 길리에서 빠당바이로 돌아오는 전날 터졌다. 픽업 담당자의 연락은 우리를 몹시 당황스럽게 했다.
기존 계약과 달리 셔틀 운행이 불가하니 프라이빗 택시를 타야 하며, 2인 기준 15만 루피아(150k)를 추가로 내라는 통보였다.
‘갑자기 이게 뭔 소리야?’
작년 발리 여행에서도 느꼈지만, 이곳 사람들은 변동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법이 없었다. "셔틀버스를 운행할 만큼 인원이 모이지 않아 부득이하게 취소되었다"라고 한마디만 해줬어도 이해했을 텐데, 다짜고짜 추가 요금을 내고 프라이빗 택시를 타라니. 처음 계약과 전혀 다른 막무가내식 요구에 황당할 따름이었다.
보통 이곳 현지 여행사의 시스템은 이렇다. 왓츠앱으로 비용과 픽업 셔틀 요금을 문의한 뒤 승선 QR코드를 받는다. 그리고 배를 타기 하루 전, 픽업 담당자가 모이는 장소와 시간을 왓츠앱으로 알려주는 식이다.
길리로 들어갈 때는 셔틀 승객이 우리뿐이었어도 아무런 추가 요금 요구 없이 프라이빗 차량으로 편하게 왔는데, 나올 때는 상황이 180도 달랐다.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돈부터 더 내라니, 이런 식으로 나오면 누가 이해를 하겠어.’
답답한 마음에 처음 연락했던 현지 여행사에 메시지를 보냈다.
"픽업이 포함된 계약이었는데, 왜 갑자기 담당자가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하자, 그제야 내일 가는 승객이 적어 셔틀 운행이 취소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픽업 비용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즉시 환불을 요청했지만, 문득 '그 돈을 어디서 돌려받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여행사 직원에게 묻자, 마침 자신이 길리 트라왕안에 살고 있으니 내일 아침 와하나 체크인 장소에서 만나 직접 환불해 주겠다고 했다.
일단 환불은 받기로 했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빠당바이 항구에 도착해서 그랩이나 고젝이 잘 잡히는지 검색해 보니 호출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후기가 쏟아졌다.
작년 발리 크루즈를 탔을 때 겪었던, 항구 택시 기사들 특유의 '카르텔'이 떠올랐다. 어차피 그랩 호출이 안 된다면 결국 바가지요금을 내고 택시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빠당바이에서 사누르까지 가는 택시비를 검색해 보니, 현재 연결된 픽업 담당자가 부른 추가 요금이 오히려 더 저렴했다. 이럴 바엔 그냥 그 담당자를 통해 프라이빗 택시를 이용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시 픽업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사이 현지 여행사 직원과 픽업 담당자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 아까와는 다르게 "셔틀버스를 다시 한번 찾아보겠다"며 슬쩍 말을 바꾼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라 '셔틀버스가 없으면, 그냥 프라이빗으로 가겠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즉시 "셔틀이 없다"라며 프라이빗 예약을 확정 지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상황은 또 한 번 반전을 맞았다. 우리가 떠나기 전날, 길리에서 나가는 배들이 줄지어 결항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 여파로 우리가 타는 날 아침 배는 만석이 되었고, 당연히 셔틀버스도 정상 운행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우린 어제 저녁 셔틀이 안된다 하기에 프라이빗을 예약했다. 그런 상황인데, 그 픽업 담당자가 다시 셔틀 애기를 꺼내겠는가. 참 웃긴 상황이 되었다.
픽업 담당자 입장에선 프라이빗으로 진행해야 돈을 더 버는데, 굳이 다시 셔틀이 가능해졌다고 알려줄 리 만무했다. 참으로 웃픈 상황이었다.
여행사 직원에게 이 상황을 말하며 픽업 담당자와 통화해 보라고 했지만, 그들끼리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여행사 직원 역시 별다른 말 없이 그냥 프라이빗을 이용하라고 했다
‘우리의 성급함인가, 그들의 장사 속인가.’
상황을 곱씹어 보면, 전날 밤까지만 해도 승객이 적어 셔틀이 취소된 게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자 승객이 몰리면서 셔틀 운행이 가능해진 것인데, 담당자는 우리와 맺은 더 좋은 계약을 굳이 번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불쾌감이 밀려왔지만, 어쨌든 빠당바이에서의 픽업 문제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친절하지 못한 고객 대응에 짜증이 나 있던 우리를 180도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쩌면 한국인 여행자들이 블로그나 카페에 나쁜 후기를 올릴까 봐 걱정했던 걸까? 승선 시간이 되기도 전에 여행사 직원이 나와 남편만 슬쩍 부르더니, “Show me your bag”이라며, 우리 짐을 대신 들고 항구 쪽으로 앞장섰다.
마치 비행기 1등석 승객을 대하듯, 아직 오픈도 안 된 탑승구 제일 앞에 우리를 세워주고 짐까지 살뜰히 챙겨주었다. 황당할 정도로 과잉된 그의 친절. 탑승할 때도 우리를 가장 먼저 배에 태우며 깍듯이 악수까지 건네고 헤어졌다.
'이러면 또 얘기가 달라지잖아. 정말.'
그의 뜬금없는 친절에 그간의 불쾌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어제와 달라진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진작에 이런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해 줬다면 다 이해했을 텐데. 발리에서 이런 세심한 서비스 정신을 기대하는 건 아직 무리인가 보다 싶으면서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결과적으로 프라이빗 택시를 탄 것은 잘된 선택이었다. 배에서 내려 빠당바이 땅을 밟자마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고, 배 앞에 대기 중이던 그랩 기사들이 부르는 요금은 40만~45만 루피아(400~450k)로 우리가 계약한 30만 루피아(300k) 보다 훨씬 비쌌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난 데다 배로 인한 피로를 생각하면, 비바람을 피해 편안하게 이동한 프라이빗 택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비록 과정은 황당하고 짜증 났지만, 무사히 사누르에 도착하며 길리에서의 우여곡절은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돌이켜보면, 이조차도 값진 경험이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누구나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고, 어설픈 과정을 거치며 성장해 나가는 법이니까. 현지인들이 보여준 서비스의 미숙함 역시, 우리 사회나 나 자신에게도 분명 존재했을 서툰 시절을 떠올려 본다면 한결 너그러운 마음으로 미소 지으며 넘길 수 있는 여정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여행은 계속됩니다.
다음은 길리에서의 물가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