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보다 느린 스쿠터를 타보신 적 있나요?

호언장담하던 남편과 함께한, 길리섬에서의 진땀 나는 질주

by 스칼렛

전기 스쿠터도 연습이 필요한 줄 몰랐다. 남편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스쿠터는 당기기만 하면 돼.’ 그 말에 나는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았다.


길리는 친환경 운송수단만 사용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는 섬이다. 그래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없다. 찌모도(조랑말이 끄는 마차)전기 스쿠터, 자전거가 이동 수단의 전부다. 그렇기에 길리를 찾은 여행자들은 자전거나 전기 스쿠터를 빌려 섬을 구경하며 돌아다닌다. 3월의 길리는 슬슬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길리 트라왕안 섬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다. 작년 두 번째 방문 때는 건기(4월)가 시작되는 시점이라, 낮의 무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하고 그늘만 찾게 만들었다. 이 뜨거운 태양을 피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전거를 빌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각자 한 대씩 빌려 섬을 둘러보기로 했다. 렌트비용은 하루에 100k(루피아)였다. 하지만 숙소 직원이 대행해서 빌려온 자전거는 너무 낡고 엉망이었다. 내심, '우리가 직접 알아볼 걸'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어쩔 수 없이 직원이 자전거를 빌려온 가게로 직접 찾아가 내게 맞는 것을 다시 골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자전거를 참 못 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왜 이리 하나같이 불편하고 어색한 거야.’

‘내 잘못인가, 길리 탓인가'


자전거를 타본 지도 오래되기도 했지만, 그사이 나이도 들었다. 길리의 열악한 길바닥, 깨진 돌과 고르지 못해 울퉁불퉁한 노면, 게다가 낡아빠진 자전거는 도저히 내게 맞지 않았다. 물론 나의 형편없는 실력은 말할 것도 없다. 실력이 좋았다면 이 모든 게 무슨 핑곗거리가 됐겠는가. 내 자전거 실력과 이런 환경으로 길리섬을 한 바퀴 돈다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괜한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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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의 길엔 닭들도 자주 보인다.

'100k만 날렸군.'


돈보다도 빠른 포기를 택한 건 즐거운 여행 중 사고가 날까 우려해서였다. 어설픈 실력으로 강행하다 다치는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작년에 길리를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이번 여행에선 전기스쿠터를 빌려 섬을 돌아보기로 했다. 작년에 자전거를 100k에 빌렸으니, 전기스쿠터는 훨씬 비쌀 거라 지레짐작해 가격조차 묻지 않았었는데, 막상 빌리려고 보니 너무 저렴해서 의문이 들 정도였다.


길리에 도착한 첫날, 해변 길을 걷는데 현지인이 "스쿠터 하루에 150k"라고 외치던 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헐, 이렇게 싸다고? 이 가격인 인 줄 알았으면 작년에도 빌릴 걸'


작년엔 분명 이보다 비쌌던 것 같은데, 정확한 금액은 물어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었다.


다음날 숙소 근처에 있는 스쿠터 렌트가게로 갔다. 하루 대여료를 물으니 역시 150k라고 했다. 그런데 가게 사장이 “며칠 빌릴 거냐? 오래 빌리면 더 싸게 해 주겠다”며 흥정을 걸어왔다. 우리는 하루만 탈 거라 "하루만 필요하다"라고 하니, 알아서 바로 130k에 깎아주는 게 아닌가. 세상에, 이렇게 친절하고 쿨하게 깎아주다니.


"뜨리마 까시(감사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왜 이렇게 싼 거지?.'


우리가 길리에 도착한 날은 3월 5일, 우기가 끝나는 무렵이다. 그래서인지 섬으로 들어오는 배엔 승객이 꽉 차진 않았고, 밤거리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비수기라 렌트가게 사장도 자연스럽게 가격을 낮춰 부른 걸까?


기분 좋게 비용을 지불하고, 남편이 전기 스쿠터 시범운전에 나섰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사실 남편은 스쿠터나 오토바이를 운전해 본 적이 없다. 여행 오기 전부터 "스쿠터는 손으로 땅기기만 하면 돼!" 라며 워낙 자신만만하게 말했기에 나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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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의 포장되지 않은 바닥, 길리 서쪽의 깨끗한 길


하지만, 스쿠터를 넘겨받고, 간단한 사용법을 들은 뒤 혼자 시범 운전을 하는 남편의 모습은 누가 봐도 어색하고, 불안했다. 그 모습을 본 나도 당황스러워, '저 실력을 믿고 뒤에 타도 되나?' 싶었다. 저 멀리 한 바퀴를 돌고 온 남편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어때?" 하고 물으니, "할 만해" 란다. 나는 그 말만 철석같이 믿고 뒷자리에 올랐고, 그렇게 우리의 길리섬 투어가 시작됐다.


하지만 혼자 탔을 때와 달리, 뒤에 사람이 타 무거워진 스쿠터는 남편이 생각했던 것만큼 속도를 내지 못했고, 핸들 조작도 부자연스러웠다. 남편의 뻣뻣한 움직임에 나까지 긴장감이 전염되었다. 나를 태운 남편은 미숙한 운전 탓에 몸이 점점 굳어져 갔다.


우리는 '속도감'이라는 건 전혀 느끼지 못한 채 간신히 섬을 돌았다. 마차가 뒤에서 오거나 마주 오면 한쪽에 서서 길을 내주었고, 어떨 땐 자전거한테 추월당하기도 했다.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우리의 스쿠터가 우습기도 했지만, 잔뜩 긴장한 남편의 뒷모습이 사뭇 안타깝기도 했다.


50이 넘는 나이에 처음 타는 스쿠터, 게다가 와이프까지 태웠으니 행여나 넘어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이 아마도 남편의 몸을 굳게 만들었을 것이다. 타기 전의 그 당당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는 모습에 뒷자리의 나도 덩달아 굳어졌다.


'이걸 계속 타야 할까.'


속으로 갈등했지만, 남편을 믿어보기로 했다. '설마 큰 사고야 나겠어' 하는 심정으로 남들의 속도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아주 어린 현지 꼬마도 스쿠터를 자유자재로 몰고, 아기를 앉은 현지인 엄마는 한 손으로 운전하며 우릴 쌩 하니 스쳐 지나갔다. 반면, 우리 스쿠터는 자전거보다 느리게 굴러가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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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덕분에 길리의 서쪽편에 있는 리조트를 볼 수 있었다.


한 바퀴를 도는 내내 우리 둘 다 너무 긴장한 탓에 엉덩이와 허벅지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몸은 점점 경직됐고, 근육이 뻐근해질 정도로 아파왔다. 이런 육체적 피로와 불편함을 오랜만에 느껴서인지 묘하게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좀 더 편하게 둘러보려 한 선택이 도리어 새로운 불편함을 낳은 셈이다. 하지만, 그 덕에 길리를 한 바퀴 완주하며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다. 스쿠터가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섬 전체를 다 돌아보진 못했을 것이다. 뜨거운 뙤약볕을 맨몸으로 이겨내며 걷기엔 무리였고, 그렇다고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 만큼의 열정도 우리에겐 없었으니깐.


그렇게 무사히 한 바퀴 돌고, 다음 날 오전엔 남편에게 혼자서 연습 겸 한 바퀴 더 돌고 오라고 했다. 반납하기 전 둘이서 한 번 더 편하게 섬을 둘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고는 항상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혼자 섬을 돌고 온 남편은 “이젠 진짜 할 만해” 라며 출발부터 제법 속도를 높였다. 그 말을 믿고 여유를 부리던 찰나, 아뿔싸. 남편이 코너를 너무 바짝 돌다 중심을 잃어버렸다. 기우뚱하는 순간 내 발이 땅에 닿았고, 길가에 있던 돌과 나무판자에 종아리가 쓸리고 말았다.


'아니, 뒷사람 생각도 안 하고 이렇게 바짝 코너를 돌면 어떡해!'


찰과상을 입은 터라 순간 화가 확 치밀었지만, 복잡한 감정이 얽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고의로 그런 건 아니니까. 결국 다시 숙소로 돌아가 상처를 씻고, 연고를 발라야 했다.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어내고 항생 연고를 바른 뒤 밴드를 붙였다. 찰과상이라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쓰라린 상처를 보며 한편으론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더 큰 사고로 이어졌다면 어쩔 뻔했는가. 스스로를 그렇고 다독였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면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뭘’ 하며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찰과상 정도야 며칠 지나면 금방 아무는 가벼운 상처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우리 부부는 '무엇이든 쉽게 말하면 안 된다'라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겼다.


그동안은 남편의 그 근거 없는 '쉬운 말'이 묘하게 나를 안심시켰고, 나도 역시 무비판적으로 그를 믿어왔다. 하지만 스쿠터는 결코 만만하게 볼 물건이 아니었다. 혼자 탔다면 무게가 가벼워 조작이 쉬우니 이런 사고도 나지 않았을 테지만, 초보 운전자가 누군가를 뒤에 태우고 달린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자전거조차 능숙하지 않으면 누군가를 뒤에 태울 수 없듯, 무엇이든 스스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면 타인의 안전을 책임지려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우리는 그 당연한 사실을 너무 쉽게 간과했다.


가벼운 찰과상 덕분에, 전기 스쿠터처럼 단순해 보이는 것조차 충분한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배웠다. 인생 역시 너무 무겁고 심각하게 안고 갈 필요는 없지만, 반대로 우습고 가볍게 여겨서도 안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KakaoTalk_20260315_134224499_01.png 길리에서 찍은 사진을 제미나이에게 일본풍으로 그려달라 했다. 사진보다 못하게 표현되어 아쉽다.


이 과정에서 '나이'라는 변수도 한몫했다. 남편이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이토록 몸이 어설프진 않았겠지. '나이가 드니 이런 것 또한 다르구나' 싶어 안쓰러우면서도, 우리의 지나온 세월이 아쉬워졌다.


그러니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말고 해야 한다는 걸. 영원한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 나이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나는 아직 무언가를 주저하고 포기할 만큼 늙지 않았다.

내 인생을 위해, 파이팅!


전기스쿠터 하나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다음 편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