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의 전반적인 물가는 작년과 비슷했지만, 유독 맥주값만 미쳤다. 작년만 해도 길리에서 파는 빈땅 맥주 620ml 한 병은 40~45k 정도였고, 편의점이나 로컬 와룽이나 가격이 비슷했다.
당시 우리가 묵었던 숙소 근처는 편의점보다 와룽이 5k 더 저렴해서, 와룽에서 마시고 한 병 더 사서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해변가 레스토랑은 자릿값이 있어 50~60k 정도로 더 비쌌고, 음식값의 16% 정도가 'Tax & Service" 명목으로 추가로 붙는 숨은 요금도 있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지금은 빈땅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 대략 계산해 봐도 38% 이상 상승한 수치다. 도착한 날 저녁, 7 Hungry 편의점에서 620ml 빈땅 맥주가 55K인 것을 보고 "왜 이리 비싸"하며 그냥 나와 버렸다. 이 편의점만 유독 비싼 건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 편의점을 두세 군데 더 돌아보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 갔던 그곳이 가장 싼 곳이었다. 들어가는 편의점마다 가격은 다 달랐고, 심지어 더 비싸기만 했다. 이름 모를 어떤 편의점은 65k, M mart는 무려 75k였다.
와룽 역시 상황은 비슷해서 가장 저렴한 곳이 60k, 비싼 곳은 65k를 받았다. 섬에 있는 모든 편의점을 뒤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 결국 55k라는 가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이리 비싸진 거야? 발리는 그대로였는데 여기만 왜 이래?'
다른 물가는 작년과 거의 비슷했다. 크레페 가격도, 와룽의 나시고렝도, 과일가게의 과일도 그대로인데 유독 맥주값만 치솟은 것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길리에 비가 아주 많이 왔다고 하던데, 작은 섬이라 공급에 차질이 생겼던 걸까? 정혹한 이유는 알 수 없고 그저 혼자 추정할 뿐이었다.
원래 길리는 발리 본섬과 달리 공산품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작은 섬이다 보니 모든 공산품을 다른 지역에서 배로 들여와야 할 것이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것을 제외하면 길리에서 굳이 기념품이나 물건을 사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우붓과 길리의 맥주값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랬던 길리에서 다른 건 다 그대로인데,
'왜 맥주값만 이렇게 훌쩍 뛰어오른 걸까?' 여전히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하다.
작년에 이어 세 번째로 방문한 길리는 제법 익숙하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새로운 와룽을 찾아다녔지만, 작년에 아주 맛있게 먹었던 '레지나 피자가게'와 '수미사테'는 잊지 않고 다시 방문했다.
특별한 토핑이 없이도 도우가 쫄깃하고 맛있는 레지나 피자는 길리를 떠난 후에도 종종 생각이 났다. 훌륭한 피자의 맛과 가게의 분위기 그리고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물 때 귓가로 들려온 Lewis Capaldi의 "Someone You Loved"까지. 그날의 노래는 한동안 내 귓가에 맴돌았다. 참고로 레지나 피자는 10%의 세금이 추가로 붙는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Bebalung과 꼬치를 맛보러 수미사테도 들렀다. 새로운 메뉴가 생겼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굳이 새로운 맛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소고기 꼬치와 닭꼬치, Bebalung 그리고 밥과 싱가라자 맥주 Large사이즈를 주문했다. 참고로 싱가라자 맥주는 빈땅보다 싸다.
그런데 메뉴판에 음식 가격은 적혀 있으면서 맥주 가격은 표기되어 있지 않았다. 이게 일종의 속임수였던 걸까.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데, 예상보다 높은 금액을 부르길래 “맥주가 얼마냐?”라고 물어보았다. 돌아온 대답은 “65k”. 역시나 이곳도 맥주 가격이 훌쩍 올라 있었다. Tax & Service요금은 따로 없는 식당이었지만, 맥주 한 병 가격이 65k라니.
빈땅 Small 사이즈 상황도 비슷했다. 대부분의 와룽에서 50k를 받았고, 어떤 곳은 메뉴판에 Large사이즈가 버젓이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팔지 않고 작은 사이즈만 팔기도 했다. 참 신기한 건, 팔지 않는 메뉴면 지워놓거나 주문 전에 미리 얘기를 해줘야 하는데 일단 주문을 받고 나서야 없다고 한다는 점이다. 손님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이런 걸 아직 여기서 기대하면 안 되는 건가.'
이렇듯 비싼 물가는 결국 사람들의 소비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지금이야 술값 정도만 올랐으니 다행이지, 모든 물가가 이렇게 상승한다면,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여행 중 들려오는 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이나 환율 상승 소식을 접할 때면 앞으로의 세상이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긴 여행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런 복잡한 문제들은 각국의 정상들이 지혜롭게 잘 풀어나가리라 믿어 보며, 나는 그저 묵묵히 나의 여행을 계속할 뿐이다.
20대의 여행과 50대의 여행은 다릅니다.
지금 그 다름을 온전히 느끼며,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소중히 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역시 직접 부딪히고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다음 여행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