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by 스칼렛

이번 발리 여행에서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밀려왔다. 처음 마주했던 길리섬은 경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연두색과 초록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에메랄드 바다, 파란색과 흰색이 조화롭게 섞인 하늘, 바다 위로 낮게 뜬 하얀 뭉게구름, 그리고 깨끗한 모래사장까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사진 속 한 장면 같았다.


두 번째 방문한 길리도 파란 하늘은 여전했고, 빛나는 바다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최근 쏟아진 폭우와 거친 파도 탓에 모래사장에는 부서진 나뭇가지와 쓰레기가 흩어져 있었고, 바다 위에도 쓰레기가 둥둥 떠다녔다. 이런 길리의 모습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기대에 못 미치는 풍경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거친 파도의 영향인지 하얀 산호 더미가 해안선을 따라 쌓여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실망감보다는 안타까움이 앞섰다. 내가 기억하는 그림 같은 길리를 알기에, 당장이라도 나서서 쓰레기를 주워 모으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리의 바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내년에도, 10년 후에도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리를 떠나 도착한 꾸따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길리에 머무는 동안 지난주 폭우와 홍수로 꾸따가 폐쇄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도착한 날 밤, 곳곳에서 석양과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해변의 모습은 크게 변해 있었다.


꾸따의 바다

시커멓게 변해버린 모래사장과 여기저기 떠다니는 쓰레기들. 폭우와 거친 파도가 할퀴고 간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 함께 나서서 쓰레기를 줍는다면 금방 예전 모습을 되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록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일 뿐이지만, 이 아름다운 자연을 다시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 나도 이곳을 위해 무언가 돕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한 현실이 못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변화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실천해야 시작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내게는 아직 그 작은 용기가 부족했다. 결국 소심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자연에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는 것뿐이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기,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같은 작지만 당연한 일들 말이다.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 온 여행지가 훗날 자연재해나 사고를 겪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추억의 한 조각이 함께 훼손된 건 같아 마음이 시리다. 작년 가을, 다녀온 직후 폭우로 잠겨버렸던 베트남 호이안 올드타운 소식에 가슴이 아팠는데, 이번엔 길리섬을 떠난 바로 다음 날 그곳의 핫플레이스인 '사마사마 레게바'가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석양이 아름다운 꾸따의 바다.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전 세계 여행객들이 모여 흥겹게 노래하며 즐기던 곳이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니 충격이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추억이 깃든 공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길리 같은 작은 섬에서 다시 예전의 모습을 복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멀리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디 빠른 회복을 통해 그들이 다시 일상의 삶을 무사히 이어나가길 바라는 기도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도 조금씩 깊어지는 듯하다. 나는 거창한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게 된 장소를 오래도록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여행자인 나 또한 그곳을 아끼고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누린 아름다움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이자 예의가 아닐까.


상처 입은 발리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