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는 5일간 여행했다. 단 며칠간의 머묾으로 한 도시를 정의하는 것은 어쩌면 섣부른 일일 테지만, 각 여행지마다 피부로 와닿는 감상은 분명 달랐다.
이 글은 그곳을 잘 아는 이들에겐 어설픈 단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모르는 이들에게 선입견을 주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길 위에서 스쳐 지나간 사람들과 풍경 속에서 피어난 '여긴 왜 이럴까'하는 혼자만의 의문이자,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여행자의 기록임을 밝힌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일본 후쿠오카, 인도네시아 발리와 길리 뜨라왕안, 싱가포르, 대만 타이베이, 태국 치앙마이, 베트남 다낭, 호이안을 거쳐 이번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여행했다.
처음 마주한 쿠알라룸푸르 부킷 빈땅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화려하다'였다. 말레이시아의 수도답게 대중교통과 도로망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하늘을 찌를 듯한 초고층 건물들이 즐비했다.
치앙마이나 다낭, 발리 같은 지역들과는 확연히 다른 쾌적한 인프라였다. 대만 타이베이처럼 짙은 중화권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싱가포르의 세련됨과 일본의 색채가 오묘하게 섞여 훨씬 더 화려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보행로가 넓고 신호 체계가 효율적인 점도 수도다운 세련된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말레이시아는 자원강국이자 첨단 제조 강국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인구수는 6위 정도지만 인구 밀도는 낮고, 1인당 GDP는 싱가포르, 브루나이 다음으로 높은 ‘중상위 소득 국가’라고 한다. 산유국답게 대중교통 요금도 무척 저렴했다. 시내를 도는 GOKL버스(1링깃)나 바투 동굴(Batu Caves)로 가는 KTM 코뮤터(편도 2.5링깃)의 싼 요금은 이 나라의 경제적 여유를 대변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화려함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공존했다. 도착 첫날 저녁, 번화가에서 구걸하는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의 놀람이 생생하다. 발리나 치앙마이, 심지어 누구나 치열하게 일상을 꾸려가던 베트남에서도 쉽게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소득 수준이 높고 인구도 적은 이 나라에서, 특별한 신체적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이들이 왜 거리로 내몰려 구걸을 택했을까. 자본주의가 낳은 씁쓸한 양면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부킷 빈땅 거리에서는 미디어에서 보던 전형적인 동남아시아인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체형과 생김새의 사람들을 만났다. 낯설고 독특한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이 세계엔 정말 다양한 모습의 사람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도 받았다.
여행 마지막날,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야경을 보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 거센 비가 쏟아졌다. 빗줄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노숙자가 정류장 비가림막 아래로 들어왔다.
그는 빗속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저녁거리를 꺼내 먹은 뒤, 다 마신 플라스틱 음료수 컵과 쓰레기를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불과 10m 앞에 쓰레기통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당당한 그 행동에, '이곳엔 아직 공공의 시민의식이 자리 잡지 못한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결국 야경을 포기하고 호텔로 발길을 돌리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국가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공의 규칙을 지키는 태도는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듯했다.
국가의 진정한 수준은 솟아오른 빌딩 숲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남의 것을 훼손하지 않고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성숙한 시민 정신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아쉬운 모습을 벗어던지고 지금의 높은 도덕성을 갖추게 된 우리나라의 변화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쿠알라룸푸르는 내 기대만큼 매력적이었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도시였다. 비록 그 이면에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과 아쉬운 시민의식이 숨어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단순히 낯선 풍경을 눈에 담는 것을 넘어, 도시의 눈부신 화려함과 그 그림자, 그리고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민낯을 깊이 사유하게 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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