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참극의 서막 – 제2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by 조성현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 여든다섯 고완순 할머니에게 중년의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아홉 살 완순 때의 기억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1948년 12월 19일이고 양력으로는 49년 1월 17일이고, 나는 그때 죽으러 갔다가 살아난 거라 머리에서 하나도 안 지워져요. 그날 조용하면서도 불안에 떨면서 살고 있었어요. 자다가 옆이 허전해서 일어나 보니까 엄마가 없는 거야. 언니와 남동생도 같이 자고 있었어요. 그때는 밥을 배불리 못 먹었잖아요. 고구마 쪄놨다가 새벽이고 뭐고 그냥 출출하면 먹고 이랬는데 엄마가 들어오는 거예요. 엄마가 삼남매 이름을 부르면서, 완녀야(언니) 완순아 영태(남동생)야 오늘 우리는 다 죽었다 죽었다, 제주도 말로 다 죽었져 다 죽었져 하면서 들어오는 거예요. 껌껌한 새벽인데.”

- 북촌 인근에서 무장대가 군인 2명을 죽였다. 국방경비대 2연대는 이들의 죽음과 무관한 마을 주민 400여 명을 다음날 하루 동안 살해하였다. 이것은 명백한 학살이자 제노사이드다. 이곳 북촌에서는 제주도 인구 30만 명의 1/10인 3만여 명이 희생된 제주4.3 중 단 하루 만에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지역이었다.

“엄마가 나갔다가 들어오더니 그러는 거예요. 동쪽 세화 쪽으로 가는 차인지 오는 차인지, 군인차를 탄 군인 두 명을 무장대들이 새벽에 내려와서 총을 쏴서 죽여버렸대요. 학교 앞 군데군데 보초막이 있었거든. 군인들이 마을 사람 네 사람씩 보초 서라 했어요. 밤에 산에서 무장대가 내려오는 걸 발견하면 함덕지서에다 바로 연락을 해야 해. 밤마다 암호를 썼어. 별 하면 달 하듯이. 군인들이 2명이 죽으니까 마을 책임자들 하고, 보초 서던 네 명, 인솔자 한 명 해서 아홉 명이 나무로 들것을 엮어서 4인 1조 해가지고 시신 두 구를 둘러매고 함덕 군부대로 갔어.


2연대에서는 시신을 받아놓고 나서, 그 아홉 9명을 구덩이에다 파묻고 머리만 내놓고서 쏘아 죽이려 하니까, 이군창이라는 할아버지가 손을 들어서 우리 아들은 순경이다 살려달라 손을 빌면서 애원을 했어요. 확인을 해보니까 화북지서에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거야. 그 사람만 꺼내서 살려주고 나머지 8명을 모두 총을 쏘아 죽인 거야. 그 자리에서. 그러고 나서 군인 중대인지 뭐가 북촌으로 온 것이 우리 마을 4.3 나는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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