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학살 - 제4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 군인들은 대나무 경계선으로 마을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갈라놓았다. 엄청난 제주4.3 학살이 이념과 무관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아니, 이념과 관련이 있다 하여도 사람의 목숨을 이렇게 갈라놓을 수는 없었다. 이는 일본군이 조선 의병과 독립군을 살육하고 조선인을 학살할 때와 똑같다. 일본군 장교들이 국방경비대 주축이고, 친일 경찰이 해방 후 남한 경찰의 핵심 요직을 맡았기 때문일까? 증언은 이어진다.
“그러는 와중에 군인들이 제주시 갈 사람 따라 나와라 하니까 살려주는 줄 알고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잡아당기고 밟고 먼저 가려고 난리가 났어. 보니까 장대 있잖아요. 대나무 장대 그거 가운데 묶은 거를 양쪽에서 군인들이 들고 있다가 딱 경계선을 친 거야. 사람들 경계선을. 그러니까 사람들이 동쪽과 서쪽으로 갈리게 됐어. 서쪽에 있는 사람은 사는 거고. 우리는 동쪽에 있었던 거야. 그때는 몰랐죠. 경계선으로 갈린 가족들이 가족과 같이 있으려고 그 대나무 밑으로 가족 찾으러 갔어. 동쪽에 있는 사람이 서쪽으로 가족 찾아가면 몽둥이로 막 패. 매를 맞으면서도 동쪽에서 서쪽에 간 사람은 살았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사람은 죽었고. 또 무서워서 그냥 갈라진 대로 가만히 있는 사람은 이산가족이 된 거라. 정리를 하고 나니까 가운데 길이 쭉 뚫렸어. 그다음에는 진짜로 제주시 갈 사람 앞으로 나오라면서 오십 명인지 칠십 명인지 뭐 삼십 명인지 모르겠어 그거는. 무더기로 잘라서 초등학교 밖으로 데려갔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다다다다 총소리 났고. 나중에 보니까 당팟하고 너븐숭이 옴팡밭에서 죽였어요."
- 아홉 살 어린 완순도 세 살 남동생 영태도 그들의 총부리 앞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어린 소녀가 본 주검. 그녀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한다.
“학교에서 마을 사람들이 끌려나가고 조금 있다가 다다다다 총소리가 학교 밖에서 들렸어. 또 끌려나가면 또 총소리가 났고. 우리 차례가 되었나 봐요. 군인들이 우리들 수십 명을 오른쪽 옴팡밭으로 끌고가 앉혔어요.
앞에서 봤는데 횡대로 사람들을 앉혀서 죽였나 봐요. 죽은 사람들 보니까 엎어진 사람, 누운 사람, 막 못 견뎌서 자기 쪽진 머리를 잡고 눈 떠 있는 사람, 몸부림치면서 사타구니에 들어가 있는 머리, 발이 입에 걸쳐 있는 사람, 배를 베고 있는 사람, 옆에 사람을 부둥켜안고 있는 사람, 서로 부둥켜안고서 앉아 있는 사람, 돌담에 걸쳐져 죽은 사람 막 죽어 있는 거야. 그러고 군인들이 우리더러 앉으라는 거야. 그날이 흐렸고 눈이 약간씩 내리고 그랬어요. 그 어린 9살 때도 죽는 게 무서운 것보다 엄마 놓칠까 봐서 엄마 손만 자꾸 찾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흘린 피가 흙에 고이고 쩔어서 얼었어. 눈뜨고 죽은 시신들 보니까 무서웠어. 땅을 보다가 뭔가 반짝 반사되는 거에요. 그것이 뭐였었느냐 하니까 피가 얼었는데 구름이 걷히고 잠깐 해가 나면서 반짝거렸나 봐. 얼굴 쳐들고 보면 그 반짝거리는 것이 형체가 없어져 버리잖아. 그러고 있는데 등에서 총알을 재는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철거덕 철거덕 쇠소리가 났고.”
북촌 주민들은 이곳 북촌국민학교에 끌려나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어야 했다.
제주4.3을 세상에 알린 소설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삼촌> 문학비... 이 글의 주인공이 이 옴팡밭에서 죽기 직전 살아났다.
'널브러지고 포개어지고' 어린 완순의 눈에 이 옹팡밭에서 죽어간 이웃 사람들의 시신이 이처럼 널려 있었다.
널부러진 비석마다 소설 <순이삼촌>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