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으로 살아나다 - 제5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by 조성현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 죽음 앞에서 사격중지 소리에 완순네 가족은 극적으로 살았다. 완순의 가족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다음 줄에서 죽음의 순서를 기다리던 열네 살 이영자의 가족은 살았다는 기쁨을 누릴 수도 없었다.

“그러는데 갑자기 사격중지 소리가 들렸어요. 그 한마디에 우리가 살아나게 됐어요. 군인들이 이 간나새끼들 파리 목숨보다 질기네 그러더라고. 함덕 쪽에서 찝차가 오면서 사격중지를 명령한 거야. 군인들이 너무 많이 죽인다고 미국 사람들이 사격 중지하라고 했나 보더라고. 나중에 역사책에서 보니까. 그래서 이제 살아서 돌아오게 됐어요. 우리 줄이 죽으면 이 언니네(이영자 할머니)가 다음에 죽을 차례라서 대기조로 서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밭에까지 갔는데 언니네는 그 뒤에까지 와서 기다리는 중이었어. 엄마 언니 나 동생까지 네 식구는 옴팡밭 안에 들어갔고요.

우리 나이 또래라도 나처럼 죽으러 갔다가 살아난 경험은 없어요. 앞에 끌려간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니까. 이 얼마나 두려운 줄 압니까. 총으로 철거덕 철거덕 소리 날 때 깜짝 놀라고. 이 순간에 쏘는 건가 하다가 안 쏘고 또 쏘는 건가 하면 또 안 쏘고. 한 1~2초 사이에도 얼마나 가슴이 철렁이는지, 그거 안 당해본 사람 몰라. 그러니까 앞에는 시체가 죽어서 널부러져 있고, 눈 번쩍 뜬 사람도 있는데 우리를 앉혀놓고, 뒤에서 총 철거덕 소리 들리니까 이제 죽는구나, 아플 건가 그런 상상. 그거는 겪지 않는 사람은 모르잖아요. 아무 생각도 없어. 그때는 아무 생각도 없어. 신도 다 벗어지고.”

- 완순의 가족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죽다 살아난 그 옴팡밭이 깊었어. 지금은 길이 나면서 잘려나가고 대부분 매립되었어요. 그날 하루에 죽은 사람들은 300~400명이 미처 안 되고, 그 후에 몇 명씩 몇십 명씩 죽고 죽어서 한 500명 될 거예요. 옴팡밭에 죽으러 갔다가 살아서 초등학교로 돌아왔는데, 운동장에 시체들이 여기저기 있더라고. 아까 기관총을 쏴서 10여 명이 죽었다고 했잖아요.


우리 마을에 도가집이라고 보관 창고가 있었어요. 상여도 보관하고, 상여에 꽂는 꽃 같은 거, 말 안장, 결혼식 때 쓰는 가마, 역사책도 보관하고 그랬어요. 우리 마을에는 옛날부터 도가집 일 봐주는 하인이 있었어. 우리 어릴 때 그 사람이 조 서방이야. 조 서방 각시가 만삭이었는데 기관총 쏠 때 총에 맞아 죽었어. 운동장에서. 다른 임신한 사람도 죽었고. 젖 찾던 아기 엄마도 죽고. 남자들도 몇 명 죽었어. 학교 옆으로 오는데 보니까 남자들 몇 명이 남아서 시신을 학교 옆 밭으로 손과 발을 잡아서 하나둘셋 해서 울타리로 던지고 있었어요. 거기에 지금 북촌초등학교 서쪽으로 체육관 짓고 있어요. 죽은 조 서방 각시가 임신해서 배가 이만큼 나오고 무거웠나 봐. 체격도 좋았어. 무거워서 둘이 못 던졌어. 그래서 한 명 더 와서 집어던지고. 시신을 그렇게 던지는 거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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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0_144653.jpg 북촌 앞바다의 평온한 모습
20180710_162314.jpg 북촌국민학교에서 끌려나온 수많은 주민들이 이곳에서도 학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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