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영태의 죽음과 불타는 마을 - 제6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 군인의 몽둥이에 머리를 맞은 세 살배기 영태는 끝내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갔다.
“아까 동생이 군인 몽둥이로 머리통 맞았다고 했잖아요. 그때까지는 우리 동생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런 거 신경 쓸 여력도 없었어요. 숨은 쉬니까. 너분숭이(옴팡밭) 가서 살아서 오니까 엄마가 완순아 외할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가보라 하셨어요. 어머니는 아까 친할아버지 형제분이 당팟으로 끌려가는 거 보았으니까 죽었을 거다 하면서 어머니 등에 업혔던 동생을 저한테 업혀주려는데 그때야 동생 얼굴을 봤어요. 남동생 머리가 움푹 들어가서 함몰이 됐더라고. 숨은 쉬었고. 근데 우리 동생이 아니고 찐빵이야. 이렇게 시커멓게 막 부어버렸어요. 몇 시간 죽으러 갔다 왔다 하는 동안에. 등에 업으니까 좀 숨 쉬는 거 느껴지더라고. 그때 내가 소리를 지르지 않았으면 내 동생이 울지 않았지. 동생이 머리를 맞고 죽는 일이 없었을 건데, 치료 한 번 받지 못했어요. 세상에 와서 꽃 한 번 피워보지 못하고 네 살에 죽어버리니까 사망 신고도 굉장히 늦게 했어요. 그때는 사망 신고할 정신이 안 나고 먹고 사는 것이 우선 바빴잖아요. (*고완순 할머니는 칠십여 년이 지났지만 동생 말씀을 하시면서 울먹이셨다)”
- 완순 가족은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
“초등학교로 끌려갈 때 초가집이 타는데 바람도 불어서 불똥이 날아와 검은 재로 변하고 그랬어요. 죽지 않고 올 때 북촌에 한 300호 집들이 다 타서 불바다가 되어서 걸어올 수가 없었어. 땀을 줄줄 흘리면서 걸어왔어. 언니네도 그때 같이 왔지(이영자 할머니). 학교로 돌아와서 모여 앉으니까 그 대장인지 뭐 하는 사람이 그러는 거야. 여러분들 집이 다 타서 없으니까 안 탄 집이 있으면 거기서 자고, 그렇지 않으면 오늘 학교에서라도 자고 내일은 대대본부(함덕) 있는 곳으로 피난 오라고. 그러고 이제 군인 차들이 돌아가는데 보니까 트럭이 하나가 있어. 거기에 남자 5명 여자 3명이 포승줄에 묶여 있는데 거기에 우리 이모가 있더라 이 말이야. 이모 시신을 3일 만에 찾았어요. 우리는 이튿날 피난을 가게 된 거죠.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학교 옆길로 오다 보니까 하늘은 벌겋고 뜨거워. 군인들이 마을에 불을 놓았으니까. 마구간에서 소가 타서 우는데, 소 울음소리가 그렇게 큰 거를 몰랐어요. 한 마리는 타서 죽었고 한 마리는 나 대고. 길거리에는 돼지가 나와서 꿀꿀거리면서 뜨거우니까 난리가 난 거야. 그리고 닭이 닭장에서 뛰쳐나와서 그냥 이러 날아갔다 저리 날아갔다 하더라고. 할머니 한 분은 갈옷을 입었어요. 은비녀 쪽을 쪘는데 쭈그려서 앉아서 총 맞아 죽었어. 초가집이 타면서 서까래가 머리 쪽진 어깻죽지에 걸리면서 같이 타고 있는 거 봤어요.
그리고 외할머니 집에 가보니까 불이 이글거리고 있고요. 우리 어머니가 소창 뜯어다가 할아버지 두 형제분을 둘둘 말아서 염했어. 시신을 그냥 놔두면 밤중에 산짐승들이 내려와서 눈 같은 거 파먹어버린다고. 그거 해놓고 나니까 밤 10시쯤 된 거 같아. 열 시인지는 모르는데 하여튼 밤이 늦으니까 졸려서 못 견뎌서 잤나 봐. 그러다가 숨었던 마을 사람들이 밤중 되니까 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