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 학살 - 제7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by 조성현

이어진 학살 - 제7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 400여 명 학살 다음 날에도 죽음의 행진은 계속 이어졌다. 남자들이 죽음을 피해 산으로 피신했을 뿐인데, 그 가족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몰려 재판도 없이 처참하게 목숨을 빼앗겼다.


“우리는 이튿날 함덕으로 피난을 가게 된 거죠. 경찰(서북청년단)들이 피난 온 사람들을 앉혀놓고 산으로 피신한 사람들 가족을 찾는 거야. 경찰 편에 선 북촌 사람 김모씨라고 있었어. 이 사람이 산에 올라간 사람들 가족들을 색출해 냈어. 한 70명 넘게 모래구덩이에서 또 학살을 당했죠. 남편이 산에 올라가면 빨갱이 가족이라고 죽인 거에요.

함덕에서, 지금 같으면 경로당 같은데 뭐라 그랬나, 이제는 오래돼 가니까 경로당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거기 가니까 함덕 사람들이 메좁쌀을 가지고 허벅에다 물을 끓여서 엽차처럼 공기에 퍼 주더라고. 그거를 먹으니까 창자가 좀 따뜻해져. 그다음부터 피난살이 시작했지요. 살 데가 없으니까 마구간 같은 데서 자고.”


- 비참하게 몰살당한 완순의 외가는 4.3의 광풍이 지나간 후에도 연좌제에 시달려야 했다. 교편 잡았던 큰외삼촌 아들인 이종사촌 동생이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하였으나, 빨갱이 자식으로 몰려 입학이 취소되었다. 4.3 당시 토벌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거나 처벌받은 사람들의 가족은 오랫동안 취직, 승진, 입학시험, 해외여행 등 불이익을 당했다.

“이모도 잡혀가 죽었다고 했잖아요? 군인들이 남자들 잡으러 다니니까 이모부가 산으로 몸을 피했어. 남자 다섯, 여자 셋도 굴에 숨었어. 빨갱이 각시도 잡아간다고 해서 이모도 거기 있었어. 바로 그날 북촌에서 400명 죽던 날이었어. 윤대영이라고 우리 언니와 이 언니(이영자 할머니) 동창이 있었어. 대영이가 6학년이었어. 군인들이 사탕 주면서 마을 사람 어디 숨었는지 가리키라니까 그 굴로 가서 알려줬어. 그래서 여덟 명이 붙잡힌 거야. 이모가 포승줄로 묶여서 트럭에 실려 가는 걸 나와 엄마가 본 거고. 우리가 함덕에 피난 가서 엄마가 미친 듯이 이모를 찾아다녔어. 노란 저고리를 입었거든요. 3일 만에 이모 시신을 찾았는데 얼굴이고 귀고 이런 데도 막 찔렸고, 목도 막 찌르고 유방도 국부도 다 대창으로 막 찔렸어.


작은 외삼촌은 일본에 있는 와이프 찾아가려고 하다가 돈 없어서 돌아왔어. 그러다 산에 가서 숨었다가 총에 맞았는데 목을 맞았어. 죽지는 않았는데 2연대에 끌려 와서 마포형무소 갔어요. 거기서 행방불명 돼버렸잖아.(*무고하게 육지 형무소로 끌려간 제주인들은 6.25가 나자 대부분 남한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우리 큰외삼촌은 일본 동경대학교를 나와 제주중학교 수학 선생을 했어요. 한번은 북촌국민학교에 헬리콥터가 내렸어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큰외삼촌이 미군과 대화를 하는 거에요. 그리고 상자를 내려주고 갔는데, 초콜릿과 돼지고기 통조림, 빨랫비누 같은 게 들어있었어요. 그런 큰 외삼촌이 출근했다가 아이들 가르치는 중에 잡혀가서 행방불명됐는데 바다에 빠뜨려서 죽였다는 말도 있고 행방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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