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로 공차기 하는 아이들 - 제8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해골로 공차기 하는 아이들 - 제8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 북촌 마을이 전소되면서 북촌초등학교도 폐교가 되어 살아남은 아이들은 함덕초등학교에 다녀야 했다. 지금은 안쪽으로 이전했지만 당시 함덕초등학교는 바다와 가까웠다. 어린 완순은 북촌 학살 2~3년 지나 학교 앞 놀이터인 모래사장에서 육탈된 사람 뼈를 많이 보았다.
“군인 순경들이 함덕에서도 많이 죽였다고 했잖아요. 모래를 파서 시신들을 모래구덩이에 다 파묻었어요. 바람이 불면 모래가 산이 됐다가 구덩이가 됐다가 이런단 말이에요. 몇 년 지나니까 바람이 불면 모래사장에서 해골이 나와. 내가 보니까 눈과 코가 푹 들어가 버리고 광대뼈만 남았는데, 이빨은 안 없어지더라고. 그러면 남학생들이 그걸 축구공처럼 막 찼어. 또 여자 학생들을 놀렸어요. 모래니까 잘 파지잖아요. 구덩이를 파서 거기다 해골을 집어넣어서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그 위에다 살짝 덮어놔요. 그럼 우리 여자애들은 책보자기 둘러메고 막 까불면서 뛰거든. 뛰다가 구덩이 파놓은 데 가서 푹 들어가잖아. 빠져서 나오려다가 해골바가지가 발에도 걸리고. 그러면 막 소리 지르고. 그렇게 해골 가지고 장난을 쳤어요.”
- 남한 사회에서 빨갱이로 지목되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제주에서는 아이들까지 그 빨갱이 광풍에 휘말렸다.
“함덕에 학생들이 많으니까 오전 오후로 1,2,3반과 4,5,6반 나눠서 공부했어. 그러다 연필이 없어져 버려. 누가 도둑질한 거야. 어떻게 하다가 연필 훔친 아이를 찾아내잖아. 그러면 싸워. 싸우다가 한 아이가 너네 아방 산에 올라간 빨갱이잖아 라고 말해. 그러다 한 방 쥐어맞아. 한 대 맞은 아이가 울면서 엄마나 할머니한테 얘기해. 그때는 어머니 죽은 사람도 많았고 할머니하고 사는 사람도 있고 막 이러잖아. 엄마나 할머니가 함덕주재소 가서 신고해 버려. 저번에 저 아방 산에 올라간 빨갱이라고. 경찰은 그아이 아방을 잡아가. 고기를 잡든지 농사짓다가 잡혀가면 뒈지게 맞고 오든지 아니면 주정공장으로 보내버려.(*제주시내 주정공장이 4·3 때 도민을 가둔 형무소로 사용되었다).”
<방치된 주검들>
- 군인들은 장례는커녕 시신 수습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유족들과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두 달여까지 가족들의 시신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 11명이 희생된 열네 살 이영자 소녀는 3월에 가서야 썩어들어가는 시체를 맨손으로 수습해야 했다.
“그런데 이 언니는 시신의 벌레 낀 것도 다 파내면서 눈이고 코고 귀고 파내면서 묻었어. 돌아가신 지 며칠 되다 보니까 겨울이라도 시신에 뭐 안 덮어놓으면 산짐승들이 먹어버리잖아. 그러니까 멍석을 덮어놨어. 계엄령이 선포돼서 장례도 지내지 못했어. 3월에 죽은 시신 파묻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져서 와보니까 시신이 썩으면서 눈과 콧구멍마다 벌레가 막 괴어 있었어. 그대로 염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나뭇가지로 파내면서 이 언니는(이영자 할머니) 직접 손으로 했어. 장갑도 안 끼고. 마 눈물도 안 나야(이영자 할머니 말씀).
이 언니 아버지 사촌의 부인은 총에 배를 맞아서 창자가 쏟아졌는데, 이 언니가 손으로 창자를 넣었대. 비탈진 곳에 죽어 있는데 창자가 쏟아져 있었어. 내장을 안으로 집어넣어야 염을 하잖아. 우리가 지금 말로 하니까 눈물도 나왔다가 웃음도 웃었다가 하잖아. 그때는 이런 정신 저런 생각이 아무것도 없어요.”
아름다운 함덕해수욕장. 이 모래사장에 육탈된 희생자 시신이 묻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