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의 실체적 책임과 진실규명 - 제11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미군정의 실체적 책임과 진실규명 - 제11화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 고완순 할머니는 제주4.3북촌희생자유족회 회장 자격으로 2019년 유엔과 미국 국회의사당, 백악관을 방문하여 4.3 학살에 대해 증언하였고, 미국의 책임을 따졌다. 그렇다. 미군정은 1947년 3.1절 행사에서 경찰의 민간인 총격 때부터 제주도민 90%가 좌익 사상에 물들었다고 여겼고, 서북청년단을 제주에 파견하였으며 온건파 부대장을 극우 강경파 지휘관으로 교체하였다. 1945년부터 1949년 6월까지 미군정과 미국은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 통제하였다. 그러므로 4.3 학살에 실제적 책임이 있음에도 8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비록 미소 패권 경쟁에서 동북아 저지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남한을 지켰다지만, 북한의 남침에서 남한을 구해주었기에 고마움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죄상을 덮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제가 2019년에 미국 두 번 갔지 않습니까? 유엔에 가서 증언을 했어요. 그때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죽다 살아난 거 하며 내가 보고 겪은 이야기를 해서 울음바다가 되었어. 4월 28일에는 워싱턴 가서 국회의사당도 가고, 백악관도 가서 미국은 사죄하라고 진실을 말해달라고 막 소리 지르고 왔어요. 4.3은 미국이 조정을 다 한거잖아요.”
<진실규명과 갈등>
이승만 집권 시기에서 4.3은 금기어였지만, 4.19혁명 후 제주도민은 위령비를 세웠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부는 이 위령비를 산산조각내어 부수었고, 진상 규명 활동을 하던 언론인과 제주대 학생들을 구속하였다. 오랜 세월 군부독재는 4.3의 진상을 부당한 권력으로 억눌렀지만,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다.
1978년 북촌 학살을 배경으로 소설가 현기영은 단편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하였다. 역시 그도 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4.3희생자유족회와 시민사회단체의 노력으로 2000년 1월 제주4.3특별법이 제정 공포되었다. 2006년부터 희생자 유해발굴이 시작되어 그 진상이 알려지게 되었고, 2021년 3월 특별법 개정안이 공포되었다. 북촌의 고완순 할머니가 죽기 직전에 살아나온 그 옴팡밭에는 <현기영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그 밭에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쓰러진 시체처럼 소설 본문을 새긴 기념비가 지금 그 옴팡밭에 널려있다.
제주4.3특별법에 따라 희생자 가족에게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지만, 제주 전역에서는 어린아이까지 온 가족이 몰살당한 ‘씨멸족’으로 보상받을 남은 가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제주 전역이 피해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