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 제12화(끝)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제주4.3 북촌 생존자들의 증언 – 제12화
(계간 수필미학 수록)
필자는 제주4.3 생존자 할머니 두 분과 인터뷰를 하였고, 분 연재는 두 분의 증언록임을 알립니다.
제주 지역 토벌대 9연대장 송요찬은 “해안선에서 5km 이상 지역은 적성지역이므로 그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사살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물론 이 포고령이 국정 최고 책임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승인 없이 연대장 단독으로 내릴 수는 없었다. 이와 함께 제주 중산간 마을 95%가 불타 사라졌다.
무장대는 경찰과 군인, 우익단체를 공격하여 여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군경의 초토화 작전이 벌어지자 중산간 지역에서 무장대에 협조하지 않은 마을을 습격하였다. 이것은 일부 주민들과 무장대가 갈라지는지는 계기가 되었다. 군경이 지역 주민을 길잡이로 삼아 토벌에 나서면 본인과 가족을 보복하였다. 또한, 4.3이 길어지며 토벌대에 쫓기던 산사람들은 규율과 질서가 약해지며 일부는 폭도로 변하여 마을에 불을 지르고, 식량 약탈과 살상으로 피해주민들은 무장대에 원한을 품었다. 주민들도 ‘산부대’를 ‘폭도’로 부르기 시작하였다.
제주인들 사이에서는 4.3에 대해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대다수는 군인과 경찰에 의해 희생되었지만, 경찰, 군인과 그 가족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산사람들에 의해 희생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가며>
지금도 북촌마을 희생자 유족들은 매년 음력 12월 19일에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씨멸족되어 자손이 없는 경우도 많다. 북촌 주민 중 희생자 유족이 아닌 사람은 없다. 국가에서 보상금을 준다고 하지만 참극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을까. 해원(解冤)에는 3단계가 필요하다. 진상 규명이 먼저이고, 책임자 처벌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고 죽은 이가 살아나지 못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포괄적인 공식 사과를 하였다. 학살 가해자들은 모두 사망하였다. 그러나 당시 국정 최고 책임자와 경찰 수뇌부, 국방경비대 책임자들과 서북청년단 책임자 및 실질적 가해자들에 대한 책임이 규명되지 않았다. 또한, 제주4.3의 진상은 얼마간 규명되고 있지만, 아직도 ‘빨갱이들의 준동’으로 일어난 사태라고 주장하는 무리가 존재한다. 학살의 책임이 있는 미국은 아직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제주4.3 해원의 완결은 미국에게 있다.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은 한민족 최대 비극인 동족상잔과 이후의 분단 고착화를 가져왔다. 이를 막고자 했던 제주도민들에 대한 재평가가 나와야 한다.
전범국 독일에서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나치가 사용하던 문양을 배포하거나 나치가 외치던 구호를 외치면 법적 처벌을 받는다. 이것은 반국가행위로 간주하는 것일 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명백히 진실이 규명된 제주4.3과 일제의 위안부 강제동원, 광주5.18민주화운동 등 반인륜적 범죄의 부정을 처벌하는 법 조항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 법안의 통과도 제주4.3 해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국내 최고의 관광지 제주. 5분 간격으로 관광객을 태운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제주공항 활주로 밑에는 아직도 수많은 희생자들이 묻혀 있다.
제주4.3북촌희생자유족회 고완순 회장님은 여섯 살 무렵부터 북촌 학살과 이후의 기억을 소환하여 수십 장 그림을 그렸다. 그녀도 85세의 고령이다. 당시의 참극을 증언한 영상과 기록이 남아 있지만, 생존자들은 대부분 돌아가셨다. 고완순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유족회 회장으로서 유족들의 국가 보상과 제주4.3의 진실을 위해 지금도 노구를 아끼지 않으신다.
외세에 의해 남북이 갈라지고 외세의 지배로 인해 벌어진 제주4.3은 남북이 화해하고 손을 잡을 때 비로소 상처가 치유될 것이다.
제주4.3평화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