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공항 노숙과 함께 시작하는 볼리비아

2023 미대륙 여행기

by 엔케이티

리마에서 출발해 볼리비아 라파즈로 향했다. 원래대로였다면 리마에서 쿠스코 그리고 페루여행을 하다가 육로로 라파즈로 들어오려고 했지만 시위 때문에 급하게 일정이 변경되었다. 리마에서 라파즈에 도착해서는 두 번 정도 짐 검사를 받고 입국심사를 받았다. 미리 볼리비아 비자를 받아와서인지 입국심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심사장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했겠지만 라파즈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3시였다. 리마에서부터 여러 숙소들을 찾아봤지만 3시에 체크인을 해주는 곳이 있을 리 만무했고, 어쩔 수 없는 선택 해야 했다.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겠다


사실 우리나라였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를 잡고 충전기를 꽂고 핸드폰 좀 하다가 구석에서 자다 일어나면 그만이었겠지만 여기는 남미였다. 불안한 게 당연했다. 거기에 조금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있는 건지 공항에 노숙을 할 만한 좋은 자리들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서 조금 마음이 급해졌다. 가만히 있다가는 앉아서 밤을 지새워야 될 수도 있었다. 물론 평소였다면 불안해서라도 앉아서 가방들을 꼭 끌어안고 밤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낮에 돌아다니다 와서였을까 너무 피곤했다. 불편하더라도 잠깐 누워서 눈을 붙이고 싶었다.


공항을 한 번 스캔했다. 최대한 편히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을 찾았고 얼른 달려가 자리를 잡았다. 제일 먼저 가방에 자물쇠를 채우고 의자 아래에 넣었다. 그다음 끈하나를 한쪽팔에 걸고 나머지 가방을 베개 삼아 잠을 청했다. 엄청 불편했지만 피곤해서였는지 금방 잠에 들었다.


잠시 잠을 자다 보니 어디선가 계속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이제껏 여행을 해왔던 지역과는 다르게 새벽에는 매우 추웠다. 거기에 급하게 자리를 잡느라 출입문 앞쪽에 자리를 잡아서 사람들이 들락날락할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물론 가방 한 구석에 긴팔옷들이 있어서 갈아입거나 꺼내서 덮고 잘 수 있었지만 옷들을 꺼냈다가 다시 정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참고 자기로 결정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전보다 따뜻한 느낌에 눈을 떴다. 9시였다. 중간에 몇 번 깨기는 했지만 생각보다는 잘 잔 느낌이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려고 움직였을 때 바로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몸이 아파왔다. 조금이라도 빨리 숙소로 가고 싶었다.


보통 엘알토 국제공항에서 라파즈 시내까지 가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택시를 타거나 미니밴을 타는 방법이었다. 둘 다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미니밴은 사람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있는 방면에 가격이 저렴했고, 택시는 가격이 비싼 대신 내가 원하는 곳까지 바로 갈 수 있었다. 평소대로였다면 조금 기다렸다가 미니밴을 이용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조금도 기다리기 싫었다. 나중에 아끼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택시를 잡았다.


그렇게 길게 느껴졌던 공항 노숙을 끝내고 볼리비아에 한 발짝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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