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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Feb 15. 2023

이른 아침, 베네치아의 류트 선율

16세기 베네치아의 류트 독주곡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 이른 아침에 bright and early

연주자 : 홉킨슨 스미스 Hopkinson Smith  / 6현 류트 Lute

레이블 : 나이브 naive

 



음반의 제목 Bright and Early는 아침 일찍, 이른 아침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음반을 녹음한 미국의 류트 연주자 홉킨스 스미스(Hopkins Smith)는 음악의 어둡고 격정적인 특성과 반대 밝고 맑은 분위기의 류트곡에 주목해 이른 아침의 햇살같은 서정적인 류트 선율을 음반 한 가득 담았다. 단조롭지만 류트의 고졸하고 차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류트는 기타처럼 품에 안고 현을 튕기는 악기인데 르네상스 시대부터 18세기까지 주요 악기로 사용되었지만, 이후에는 작은 음량의 단점으로 인해 현대적인 악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고음악 연주회장에서는 류트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류트 음악의 진수라고 하면 17세기 영국의 음악가 존 다울런드가 남긴 90여곡의 류트 독주곡, 그리고 류트 반주로 부르는 '에어'라는 노래집 4권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다울런드는 엘리자베스 1세 시대 가장 유명한 류트 연주자였으며 독주 및 반주악기로서 류트가 낼 수 있는 예술성을 최고의 완성도로 다듬은 음악가이다. 근세 유럽에서 류트는 매우 대중적인 악기였고 궁정에서부터 선술집까지 애용되었던 친숙한 악기였기에 미술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천사들이 류트를 연주하기도 하고, 떠들썩한 술집에서 연주하기도 하며, 류트 레슨을 그린 그림들도 많이 그려졌다.


에바리스토 바쉐니스, <악기와 조각상이 있는 정물화>, c.1660


특히 바로크 시대 네덜란드 정물화와 장르화에 등장하는 류트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류트는 인간의 오감 중 청각을 나타냈으며, 음악의 화음이 그렇듯 조화와 비례로서의 세계를 유비하는 악기이기도 했다. 류트의 조현이 완벽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류트를 통해 상징되는 음악은 사랑의 감정을 의미하기도 했다. 음악의 감각적 즐거움은 사랑의 달콤함과 같아서 '음악 수업'을 주제로 삼은 장르화에는 류트를 연주하는 남녀가 함께 등장한다. 아래 그림 게르하르트 테르보르흐의 <음악 수업>에서 레슨을 받고 있는 여자와 남자는 음악이 흥을 타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베르미어의 그에서 류트를 연주하는 연인은 창 밖을 바라보며 연인을 기다리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뒷벽에 지도가 있는 것을 보니 그 연인은 뱃사람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에서는 비너스가 큐피드와 함께 류트를 연주하는 도상이 있는데 이것도 사랑의 노래를 암시한다. 다울런드의 수많은 노래들이 보여주었듯이, 류트는 독창의 반주악기로 많이 활용되었기에 사랑의 발라드를 부르기에도 적당한 악기였다.


한편으로 류트는 매춘, 불륜, 욕정의 뜻을 내포하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술집에서 류트를 들고 있는 매춘부가 묘사되고 음악 레슨이 불륜의 장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류트 부정한 욕망, 청각을 비롯해 인간의 감각이 지니는 욕정의 측면을 강조하며 올바른 삶에 대한 교훈적 의미를 내포한 모티브가 된다.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에서 이러한 류트(음악)의 모티브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류트는 바로크 시대 음악과 미술 모두에서 등장하는 주요 예술 모티브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베르미어 <류트를 연주하는 여인> c. 1662-1663  (좌)

게르하르트 테르보르흐 <음악 수업> c. 1670 (우)




이 음반에 실린 류트곡은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인쇄된 류트 작품들이다. 따라서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중요한 작품들이다. 연주자 스미스는 어떤 내용으로 이 음반을 구성하고 녹음했을까?  이 음반의 류트곡들은 모두 1507-1508년에 베네치아에서 출판된 곡으로 3명의 음악가들 프란체스코 스피나치오, 조안 암브로시오 달짜, 마르께토 카라의 작품이다. 인쇄술의 발달로 1501년 최초의 악보 안쇄출판이 이탈리에서 시작되었고 스피나치오는 2권의 류트 악보집을 냈다. 음반에 실린 그의 곡들은 그 당시 최초로 악보로 인쇄된 류트 음악이었다. 당연히 악보 제작에 많은 실수가 있었고 유통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어 류트 음악사의 중요한 작품임에도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 연주자 스미스는 이들의 악보가 인쇄 과정에서 발생한 오탈자 및 오류, 탈락된 부분을 복원하고 또 조현 방식 등을 학술적으로 고증해 잃어버린 음악을 완전하게 복원해 냈다. 사실상 최초 레코딩인 셈이다. 또한 조안 암브로시오 달짜의 경우 그는 같은 곡의 두 가지 버전을 출판했는데 첫 번째는 쉬운 악보를 두 번째는 숙련자를 위해 더 기교적으로 개량한 악보를 출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첫 번째 버전만 존재하며 스미스는 이 악보를 연구하다가 상상력을 통해 일부 2번째 버전을 학술적으로 추정 보완해 연주했다. 류트도 그 당시 사용된 6현 방식을 썼으며 조율도 당시 문헌을 참고해 고증했다.


이런 지난한 고증 과정을 거쳐 역사의 한 켠에 묻힐 뻔한 곡들이 오늘날에 재현되었다. 스미스는 음반 내지에 이 작업을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 벽화 <최후의 심판> 복원 과정에 비유했다. 복원과정을 거쳐 공개된 <최후의 심판>은 "대담하고 밝고 깨끗한 bold, bright and clear" 나타나 그 선명함이 환희에 가까웠는데, 본인도 그런 작업을 거쳐 베네치아 류트 독주곡을 복원했다고 밝혔다.  


작자 미상의 베네치아 화가 <류트를 연주하는 비너스와 큐피드>, 16세기말



음반은 3-4분 내외의 짧은 류트 독주곡 21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안 암브로시오 달짜는 카페와 술집의 류트 연주자였고 이름으로 보아 스페인 출신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다. 그는 춤곡을 많이 남겼고 흥겨운 리듬이 매우 대중적인 감성과도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춤곡인 피바(piva), 파반느(pavane), 살타렐로(saltarello)는 달짜의 대표작인데 이중 파반느 작품은 이 양식의 가장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프란체스코 스피나치노는 달짜와 함께 초기 류트 음악 발전에 기여한 주요 음악가로 그 당시 오르페우스에 비유될 정도의 뛰어난 연주자였다. 그는 27곡의 리체르카레(recercare)를 남겼는데 리체르카레는 그 당시 유행한 음악양식으로 한 주제를 모방하며 진행하는 음악 형식이다. 마지막으로 마르께도 까라의 곡은 단 1곡만 실려있는데 <Io non compro più speranza  더 이상 희망을 사지 않으리>는 그의 가장 유명한 노래였으며 15-16세기에 대중적으로 유행한 세속 음악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스미스는 이 노래를 가창없이 류트 독주로만 연주했다. 음악이 악보로 출판되고 유통되었다는 사실은 상류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이나 서민적 공간에서 연주되던 음악이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당시 베네치아의 음악적 분위기를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600년전 지구 저편의 사람들이 연주했던 음악이 베네치아의 풍경화가 카날레토의 그림처럼 나의 눈앞에서 되살아났다.


스미스의 류트 연주는 매우 고즈넉하고 단아하다. 21곡 모두 비슷한 느낌이라 듣는 이의 취향에 따라 단조울 수도 있을 것 같다. 음반의 제목인 '브라이트 엔 어얼리'라는 점을 떠올려 보면 류트 독주곡이 가진 신선하고 조용한 아침의 분위기를 담은, 그런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새 아침을 여는 클래식, 이른 아침의 햇살과 같은 음악. 그 분위기에 젖어 베네치아의 운하를 따라 걷는 상상에 젖어본다.

                   

카날레토, 베네치아 대운하의 입구, 1730년경






https://www.youtube.com/watch?v=oXBWWSIhvAo


 

https://www.youtube.com/watch?v=RDJLmmvQJ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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