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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텐 Sep 30. 2021

파리넬리의 노래를 부르다

이탈리아 바로크 오페라의 불꽃


바로크 클래식 음악


음반명: 자루스키, 파리넬리, 포르포라의 아리아

연주자: 필립 자루스키(카운터 테너), 안드레아 마르콘(지휘), 베니스 바로크 오케스트라

레이블: 에라토 (Erato)




이 음반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 가수 파리넬리(1705~1782)를 위해 그의 스승 니콜라 포르포라(1686~1768)가 작곡한 아리아로 구성된 음반이다. 프랑스의 카운터 테너 필립 자루스키가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음반명이 <자루스키, 파리넬리, 포르포라의 아리아>이다. 음반 표지에는 청바지에 잠바를 걸친 자루스키와 18세기 복장을 한 귀족 남자가 뒤돌아 앉아있다. 아마도 뒤돌아 앉은 이가 스승 포르포라, 자루스키가 제자 파리넬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21세기 걸출한 카운터 테너가 파리넬리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주요 음반 컨셉이다. 포르포라가 작곡한 고난도 기교의 화려한 아리아를 듣노라면 당시 무대 위 파리넬리의 영광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필립 자루스키는 현재 가장 인기있는 카운터 테너 중의 한 명이다. 카운터 테너는 흉성과 두성을 이용해 여성처럼 높은 음역의 목소리를 내는 남자 가수이다. 자루스키는 훈훈한 외모에 매혹적인 음색으로 충분한 스타성을 가진 가수이자 바로크 성악곡을 중심으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가수이다. 처음에는 바이올린을 공부했지만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에 운명적 매력을 느껴 성악으로 전향하게 된다. 그의 음색은 여느 카운터 테너처럼 미성의 고운 목소리지만 디테일의 표현력, 미세하게 흐느끼는 듯한 떨림 등 대단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독일의 유명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목소리가 백합처럼 깨끗하다면, 자루스키의 목소리는 미묘한 감성을 담은 감화력이 크고 고음에서 반짝이는 색채가 매우 아름다우며 좀 더 여성적이다. 자루스키는 파리넬리 노래를 다루기 전에는 파리넬리의 라이벌이었던 또 한 명의 스타 카스트라토 카레스티니의 연주로도 많은 찬사를 빋았고 그 만큼 이탈리아 바로크 오페라에서 뛰어난 음악적 성취를 보여 주었다.   


카발리의 오페라 아리아를 녹음한 자루스키의 음반


카스트라토는 변성기 전의 남자 아이를 거세시켜 높은 미성으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남자 가수를 말한다. 교회에서 여자가 노래하는 것을 금지시켰던 17세기 후반 부터 높은 목소리의 배역을 맡기기 위해 카스트라토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당시 파리넬리 가족이 이주한 나폴리의 음악학교에서는 주로 빈민층의 소년들이 오페라 스타가 되기 위해 거세 수술을 받고 노래를 공부했다. 파리넬리의 집안은 어느 정도 재산과 사회적 지휘가 있는 집안이었고 아버지도 교회에 봉직한 음악가였기 때문에 빈민층은 아니었지만, 파리넬리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와 나폴리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가르치던 포르포라의 눈에 들어 12세부터 카스트라토 교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 유럽 전역에 걸친 그 화려한 성공에 대해서는 이미 영화 등을 통해 잘 알려진 바이다.


파리넬리가 스타로 성장하기 까지 포르포라의 역할이 매우 컸다. 그는 50편의 오페라를 남겼지만 작곡가 보다는 성악 교사로 더 유명했다. 하지만 이 음반에 실린 오페라 아리아를 들어보면 포르포라의 작곡 스타일이 대단히 화려하고 뛰어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리아 <나의  선행을 기다리며 Nell'attendere il mio bene>의 빠른 패시지의 현란한 목소리와 고음에서 펼쳐니는 화려한 광채, 아리아 <목 매인 가슴에 Nel già bramoso petto> 에서 긴 호흡으로 노래하며 꺾는 꾸밈음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감성 등 이런 기교적인 노래는 오직 파리넬리를 위해 쓰인 곡 처럼 들린다. 파리넬리의 화려한 노래를 가장 돋보이게 만드는 음악이 포르포라의 노래였던 것이다.


파리넬리와 포르포가의 관계를 말해 줄 수 있는 역사적 자료들은 없지만 자루스키가 그의 노래를 녹음하며 주목한 포인트는 사제 지간의 밀착 관계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파리넬리와 스승 사이에 어떤 밀접한 연대감 같은 것이 있지 않았을까? 당시 유럽 최대의 도시 런던으로 건너가 헨델의 오페라 사단과 경쟁하며 음악계를 평정한 일, 나폴리, 로마, 베네치아 등 이탈리아 도시를 돌며 성공적인 가수 커리어를 쌓은 일 등 이 둘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고 그런 미묘한 감정들이 포르포라가 작곡한 아리아 잘 담겨있는 것으로 자루스키는 해석했다. 예를 들면 <높으신 제우스 Alto Giove>의 구성지고 애타는 선율에서 제자를 향한 스승의 애정을 느낄 수 있고, <내 순교자의 말을 들어라 Sente del mio martir>에서는 스페인 왕실 가수로 마드리드로 떠나는 제자에게 보내는 스승의 송가와 같은 느낌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자루스키의 이런 해석은 꽤 설득력이 있다. 아리아의 느릿한 전주부에서 주선율로 들어가는 부분에서는 그리움의 정서가 묘하게 슬픔과 블렌딩되어 흐르는데 이것이 포르포라의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파리넬리의 초상


이 음반에는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도 참여했다. 아리아 <내가 느끼는 기쁨 La gioia ch'io sento>를 자루스키와 함께 불렀는데, 메조의 음색과 카운터 테너의 음색이 서로 유사하면서도 음빛깔의 미묘한 차이가 아주 세련되게 잘 어울린다. 바르톨리는 메조 소프라노의 음색으로 파리넬리의 아리아 음반을 녹음한 이력이 있는데, 두 명의 파리넬리 전문가들이 이 곡에서 서로 멋지게 하모니를 이루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메조의 목소리는 또 카운터 테너 음색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단단함과 강직함이 있어 아리아의 또 다른 매력을 알려주는데 그런 재미를 찾아보는 것이 오페라를 듣는 즐거움이 아닐까?    


바로크 오페라는 베르디, 푸치니, 바그너 등 낭만주의 오페라에 비해 덜 알려져 있고 인기도 상대적으로 덜 하다. 카운터 테너의 목소리도 취향에 따라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성악적 기교를 모두 쏟아부어 화려하게 노래하는 전통은 오직 바로크 시대 이탈리에에만 있었다. 그 이후에는 오페라 개혁이 이루어져 정극의 드라마를 중요시하는 '오페라 세리에' 시대가 오게 된다. 극의 흐름과 음악이 좀 더 긴밀하고 탄탄하게 연결되어 오페라는 진정한 무대극으로 발전하게 된다. 포르포라의 작품처럼 기교의 아리아만 강조된 오페라의 인기는 저물게 된다. 카스트라토의 시대도 그렇게 저물었다. 하지만 자루스키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 시대 카스트라토의 당당한 풍모와 나폴리의 오페라 극장 무대가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것이 음악의 힘이고, 목소리의 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JII7eC11Mk

포르포라의 아리아 <알토 지오베(높으신 제우스)>를 부르는 자루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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